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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우투 Oct 01. 2023

어린 딸의 말을 듣게 된 아버지

고로쇠 약숫물과 생선 가시

나는 고집이 쎄고 독특한 아이였다. 어머니 말에 따르면 '키우기 어려운 아이'라는 인식이 있었다고 한다. 어머니의 어려움이 어느정도인지는 알지 못했다. 늘 어머니가 하던 말은 단 하나였다. "커서 너 같은 딸 한번 키워봐야 알지." 어머니의 말에 나는 늘 웃으며 "나랑 같은 딸이면 아주 재밌겠네~" 하며 별로 두렵지 않다는 듯 농담으로 받아쳤다. 그래도 어머니는 웃으며 "진짜 그럴지는 되어봐 안다." 라고 하셨다. 


정말 내가 커서 나와 닮은 듯 다른 딸을 키우게 되었다. 그리고 어머니의 '키우기 어려운 아이'라는 말이 뭔지도 알게 되었다. 예민하고 말대꾸 잘하고 호기심이 왕성해서 여기저기 참견도 많다. 그리고 기본적으로 체력이 너무 좋다. 갖고 싶은 욕심이나 알고 싶은 욕심이 높으니 그만큼 부모로서 체력적으로나 재정적으로 부족하고 부친다는 느낌을 받는다. 그러니깐 내가 엄마한테 이랬단 말이지? 아버지가 천재나 영재 아닌가 싶어서 여기저기 알아보고 와서 천자문 시킨 이유가 이거란 말이지? 하고. 


나는 어머니나 아버지의 장점만 따서 닮은 듯하다. 튼실한 허벅지는 아버지를 닮아 평생 잔병치레가 없다고 한다. 어머니를 닮아 관리만 잘하면 평생 충치 걱정은 없는 튼튼한 이를 갖고 태었다. 여튼 나의 모든건 부모님의 영향과 타고남이 있어서 가능한 독특한 캐릭터를 만들어 냈다. 그러니 부모님에게 내 말이 먹히거나 설득이 될 일도 없었다. 내가 고집이 쎈만큼 부모님도 고집이 쎄다는 소리였다. 


하루는 전남 나주 시골에 가 있는데, 아버지가 어디서 '건강에 좋은 물'이라며 물통을 수십개를 사오셨다. 어머니 눈에는 딱 봐도 허튼 돈 쓰고, 사기 당한 느낌도 들었나 보다. 이미 얼굴에 눈쌀이 찌푸려지고 영 못마땅하다는 눈치를 연신 아버지에게 준다. 평생 그랬던 어머니지만 할머니 댁에서 그런 눈치를 주는 것은 또 처음봐서 기억이 선명하다. 허허허 웃으면서 어머니 건강하시라고 드린다고 물을 한잔 따른다. 할머니도 못마땅한지 "쓰잘떼기 없는 돈을 쓰냐, 여기 지하수가 최고다" 하고는 아버지가 따른 물을 일절 마시지 않으셨다. 


더 민망해진 아버지는 나에게 권유했다. 사실 나는 이상황이 너무 웃기고 재미있어 세 어른의 대화를 들으며 얼굴들을 살펴보고 있었다. 각자 어른들만의 입장과 상황, 생각의 차이가 가져오는 미묘한 그 표정의 변화. 가장 재미있는 시간이기도 했다. 내가 티비보다 어른들의 대화와 표정 변화를 살피게 된것은 여기서 재미나 흥미를 느껴서 일 것이다. 


여튼 아버지가 권유한 물을 마셔볼까 하고 들었다. 호기심이 아버지가 추천한 물 그릇을 한참 살펴보고, 물통도 만져보고 있었다. 아버지는 유일하게 관심가져주는 딸이 고마웠는지 나를 보며 웃었다. 그리고 물도 한잔 마셔보라고 또 권했다. 귀한 물이니 조금만 준다면서 칠성사이다 컵에 반만 딱 따라 주었다. 아버지는 어머니랑 할머니의 잔소리가 듣기 싫어 막걸리 대신 약물을 다 마실것 같아 보였다. 


용기를 내 물컵을 잡고 코로 '킁킁' 거리는 순간, "으. 생선 썩은내.." 하고 뱉고 말았다. 엄마랑 할머니는 박장대소하며 웃기 시작했고, 아버지는 더 민망해져서 컵을 안씻었나보다 하곤 수돗가에 가서 컵을 지하수에 깨끗이 씻어 오셨다. 그리곤 다시 그 컵에 약물을 따라주셨다. "으.. 그래도 나는데.. 컵 냄새가 아니고 물 냄새인가봐." 라는 말에 아버지는 더 민망해졌다. 할머니는 이제 관심이 없다는 듯 밭에 가신다고 하곤 자리를 뜨셨다. 어머니는 "애들이 더 정확히 잘 알지. 진짜 애들보다 못하면 어쩌려고" 라고 잔소리를 얹었다. 


아버지가 한모금만 마셔보라는 말에 눈 질끔 감고 "벌컥. 켁!!! 켁! 으.. 생선가시가 진짜 나오는데?" 하곤 목에 걸린 커다라 생선 가시를 빼내서 아버지에게 보여드렸다. 동생은 놀래서 구경을 왔고, 어머니도 애 잡는 물이라며 생선가시 보러 오셨다. 아버지는 내가 잘못 삼킨 가시인데 물을 마시니 빠진거라고 핑계를 댓다. 결국 나는 물 마시기를 포기했고, "아버지 마시지마. 생선 썩은 물이야. 이거 먹으면 병걸려" 하고 말렸다. 


미리 얘기했지만 아버지는 고집이 쎄다. 결국 약물 10여통을 다 마셨다. 하나당 2리터의 사이즈니깐. 20리터의 물을 3~5일에 걸쳐 나눠 다 마신듯 하다. 일부러 더 많이 자주 마신듯 하다. 그리고 한참 시간이 지났다. 몇달의 시간이 지났을까?  '썩은 음식물을 섞은 더러운 물을 약숫물이라고 속여 판 일당이 검거'되었다는 뉴스가 나왔다. 나는 당장 아버지에게 티비를 보라고 했다. "아빠, 아빠가 산 물이 저거 아니야? 생선 썩은 물" 


아버지는 유심히 뉴스를 보시더니 아니라고 하셨지만, 내 눈치에는 맞는 것 같았다. 어머니는 그 모습을 보고는 또 박장대소 웃음이 터지셨다. 딸보다 못하다며 아버지를 계속 놀렸다. 동생도 엄마랑 같이 아버지를 놀렸다. 왜 언니보다 아빠가 더 잘 속는지 웃기다고 했다. 그날 나는 아버지가 가장 최고로 민망해하는 모습을 봤다. 무엇보다 배탈도 나지 않았던 건강한 아버지의 신체가 놀라울 뿐이었다. 


그날 이후 아버지는 내 느낌이나 생각에 대해 자주 물어보고 의견을 수렴하게 되었다. 내가 어떤 의견을 내면 그럴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한번더 하시는 듯 했다. 엄마나 동생이 아버지에게 아무리 이야기해도 먹히지 않는 말도 내가 하면 들리는 듯 했다. 바로 고집을 꺽거나 들어주시진 않았지만 생각의 시간을 얼마정도 가지신 후 내말이 맞다 싶으면 들어 주셨다. 참으로 희안하게도 그랬다. 


고로쇠 약숫물과 8세 여름방학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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