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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Feb 08. 2024

Lost in Translation (2003)

사랑도 통역이 되나요?





아직 어리고 고독한 여자가 역시 고독하지만 인생을 더 오래 산 남자에게 묻는다. "사는 게 힘들어요. 점점 나아지나요?” 그녀의 물음에 그는 이렇게 답한다. "그래, 나아져.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주변 상황에 흔들리는 일이 적어지지.“

고독해야 자신에 대해서 알게 된다. 타인의 마음도 헤아리게 된다. 화려한 곳에서 느끼는 고독은 남다르다. 그러니 가끔은 예의와 매너로 빈틈없이 화려한 곳에서 홀로 고독을 맛보자. 화려한 듯 초라한 듯 미묘하게 섞이는 감정들 사이에서 자신을 더 깊이 바라보는 순간을 맞게 된다.




/ 모네는 런던의 겨울을 좋아한다는데, 조민진









내가 도쿄를 더욱 사랑하게 해준 영화. Lost in Translation. 그리고 이제 갓 성인이 된 나에게 자신이 좋아하는 영화라며 사진집 스캔을 떠준 그의 모습을 나는 아직도 눈에 선하게 기억하고 있다. 나는 영화를 보지도 않고서 이미 이 영화와 사랑에 빠졌다. 혼자 그가 정성스레 스캔기에 책을 누르며 스캔을 뜨는 모습을 상상하며, 내가 받는 마음이 얼마나 귀한 마음인지도 모르면서 그렇게 나는 이 영화를 흘려보냈다. 그도 함께.



그가 직접 스캔한 사진들 


시간이 흘러 이 영화를 보게 된 것은 내가 파크하얏트 도쿄를 다녀온 후였다. 도쿄에 있을 때는 이 영화의 존재조차 완전히 잊은 채였는데, 이상하게 파크 하얏트의 라운지에서 자꾸만 지금 이 장소를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이 계속 들었다. 서울에 돌아오고 나서야 나는 그게 단순한 느낌만이 아니었다는 걸 알았다. 도쿄의 분위기가 그리워 이리저리 찾아 헤매다 드디어 다시 만난 영화. 나는 이미 누군가에게 이 풍경을 선사받은 적이 있었지. 그건 바로 그가 스캔해준 lost in translation의 도쿄 속 풍경들이었다. 엘리베이터를 두 번이나 갈아타야만 갈 수 있는 파크하얏트 도쿄 52층의 뉴욕 재즈바. 늘 라이브 공연이 이루어지고, 일본인들보다 외국인으로 더 가득차있어 정말로 translation을 잃은 채 재즈 하나와 근사한 야경, 호텔의 우아한 분위기 하나만으로 모두가 통합될 수 있던 곳.


 급하게 그를 찾으려 수소문했지만 찾을 수 없었다. 하지만 세상은 어찌나 좁던지. 약 2주동안의 수소문 끝의 그의 연락처를 받아낼 수 있었지만 그에게 있어서는 별로 달갑지 않은 연락이었다. 타이밍이 훌쩍 지난 뒤의 연락은 찌질한 것이로구나. 사실 알고 있었다. 사람 보는 눈은 나의 경험치와 숙련도에 따라 이루어지게 된다는 것을. 좋은 사람을 알아보지 못했다면 그건 내가 거기까지였기 때문이다. 이제 막 스물이 되어 한껏 경계를 세우고, 내게 해가 될 사람을 골라내기에만 급급했던 나는 좋은 연이 찾아와도 그게 좋은 건지도 모르고 살았다. 정말로 길을 잃어버린 건 나였다. 그때의 나를 한 단어로 표현할 수 있다면 Lost in Seoul. 방황하고 울고 서툴고 아팠던 시기, 수많은 사람들을 만나고 집에 돌아오면 공허함에 어쩔 줄 몰라 잠 못 이루던 밤들. 이제는 웬만한 일들에 쉽게 눈물 흘리지 않는다. 자신이 어떤 사람인지 뭘 원하는지 더 많이 알게 될수록, 주변 상황에 흔들리는 일이 적어진다는 영화 속 남자주인공의 말처럼. 나는 점점 중심을 잡아가고 있다.


소주보다는 온더락 한 잔. 같은 값이라면 컨벤셔널 와인보다는 내추럴 와인. 술을 마실 것이라면 모두가 아는 곳보다는 섬세하게 곡들을 선곡하기로 입소문 난 작은 바. 가방을 살때는 아무리 저렴한 가방이라도 절대로 유행을 타지 않는 디자인을 고르는 것. 생각이 많은 아침에는 가사가 없는 음악. 기분이 땅끝까지 떨어져 아무것도 못하겠는 날에는 일단 샤워부터. 푹 빠진 감독은 필모그래피를 돌파하기. 가방에는 꼭 책 한 권과 편지지, 혹은 엽서를 챙겨다니기.


취향이 견고해질 수록 삶은 점점 나아진다고 믿는다. 나를 더 깊이 알아가는 시간과 비례해 좋은 사람을 알아보는 눈 또한 깊어지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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