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이여름 Mar 05. 2022

오래된 엽서와 비에 젖은 장미


과외를 위한 새벽 기상. 뉴스 창에서는 뉴스들이 마구 새어나오고 있었다. 닫아 버렸다.  회피하고 싶은 마음인걸까. 억지로 수업을 위해 뉴스를 들여다 보는 일도 이제는 싫다. 알아야 하는 일인 걸 알지만 그게 가끔은 토나오게 싫어.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알게 된다는 것이 얼마나 피곤한 일인지 아니까. 파리에서만큼은 모든 걸 잊어버리고 싶다. 도망쳐온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모든 관계, 날 억죄고 있던 속박들에서. 그래서 한없이 자유로운데, 한편으로는 위태하고. 매일이 행복한데 이게 사라질 것처럼 불안하고 모든 게 꿈만 같다.



오늘은 J와 함께 하루종일 비오는 파리를 거닐었다. 한남동이 생각나는 세련된 이 카페에는 사람이 없었다. 이렇게 근사한 카페에 사람이 없는 게 이상해서 자꾸만 두리번 거렸다. 서울은 이런 카페에 사람이 너무 많은데. 기이할 정도로 높은 서울의 인구 밀집은 언제나 날 토나오게 한다. 좀 괜찮다 싶은 곳이면 벌떼 같이 사람이 몰려들고 그게 이제는 , 질려버리고 짜증난다. 도저히 상대에게 집중할 수 없다.  도망가고 싶다. 어디든 제발 사람이 없었으면 좋겠다. 알아듣는 언어가 어디서든 들려오는 건 정말 고통스러운 일이다.



많은 잡지들과 세련된 인테리어 속 잔잔하게 흘러나오는 음악. 그리고 비 내리는 창문 밖을 바라보는 일은 참 좋았다. 거리에는 우산을 쓰지 않은 채로 쿨하게 지나가는 사람들이 있었다.특별히 무언가를 하지 않아도 좋은 날이라는 생각을 했다.












J가 자신은 이제 쓰지 않는 것들이라며 필름 8개와 낡은 레어 엽서들을 가져왔다. 정말 좋았다. 너무 귀한 선물이잖아. 내가 써도 되는 건지 싶은 마음이 들었고 , 고맙지만 기분이 이상했다. 이런 걸 내어주는 그의 마음은 어떤 마음일까? 저번 만남에서도 나를 주겠다고 낡은 시집을 가져온 그였는데.  어차피 곧 떠날 사람에게 이렇게 잘해주는 그의 마음이 이상하다 생각해서 자꾸만 마음이 울컥했다. 파리를 떠나더라도 우리가 우리를 잊지 않았으면. 그리고 빠른 시일내로 내가 다시 파리로 돌아올 수 있었으면. 그런 마음이 들어 마음이 복잡해졌고 택시 안에서 여러 생각에 잠겼다. 그게 눈에 보였는지 J는 내게 무슨 생각을 하고 있냐고 물었고 나는 아무것도. 라고 말하며 들킨 마음을 황급히 숨겼다.





​J는  그동안 수없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떠나 보낸걸까? 그는 파리에 계속 머물러있지만, 그가 마음을 준  사람들은 자꾸만 파리를 떠난다. 난 그게 얼마나 슬프고 쓸쓸한 일인지 알아.  그와 함께 파리를 거닐면 익숙하지 않은 파리가 쉬워진다. 그는 몇 년이나 이 곳에서 살았으니까.어느 곳을 지나도 어디가 어딘지 잘 알고 있는 그가 너무 신기했다. 나도 파리를 몇 년 넘게 살면 그처럼 될 수 있는 걸까?

​​


오늘은 저녁에 집에 들어와서 펑펑 울었다. 그러니까 파리에도 정이 들고 사람에게도 정이 드는 것 같은데 그게 무섭고. 떠날 때 감정을 어떻게 해야하나 싶고.  그게 너무 복잡하고 어려워서 엉엉 울었더니 속이 조금 나아졌다. 문득 오늘 근사한 카페에서 쇼콜라쇼를 먹다가 내가 한 말이 생각났다. ​


“난 눈물이 많아. 이렇게 자주 펑펑 울어. 근데 이게 당연해. 내게는. 무슨 달래줘야 하는 큰 일이 아니고, 그냥 원래 이런거. 그냥 나는 이렇게 자주 울고 원래 그래.  나는 그냥 감정에 무척 솔직해. 감정을 잘 참지 못하고 있는 그대로 표현해. “


​​

돌아오고 나서 가만히 그 말들을 생각했다. 정말 그러네. 앞으로 더 많은 눈물을 흘릴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진 몇 장들



1. 이 곳은 카페라떼가 맛있다. 그리고 파리의 야경을 함께한 J에게 보낸 감사의 엽서.

“파리 정말 예쁘다. 그 모든 것을 이겨버릴만큼 아름다워. 고흐가 왜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알 것 같아. 에펠의 은은한 빛이 비친 센느강, 작게 반짝이는 별들, 에펠 정중앙 위에 떠오른 달을 본 것은 고흐의 그림보다 아름답게 느껴졌어. 한 밤 중 루브르 속 텅빈 광장에서는 레오 카락스의 <퐁네프의 연인들> 속 미셸이 초를 켜고 몰래 명화를 보러 온 기분이 이런 기분이겠구나를 상상할 수 있었어. 언젠가 내게도 파리가 익숙해질 날이 오겠지? 아직도 이 곳은 가도 가도 궁금한 곳이 많고 길을 걷다가도 자주 멈추게 해. 시집 선물 고마워. 잘 읽을게. “

​​


왜 그때 화가들이 이런 그림을 그렸는지 이제야 이해가 간다. 왜냐하면, 실제 풍경이 그러니까. 감히 그림으로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아름답다.





2. 굳이 룩상부르를 오고 싶다고 우겨서 비오는 날 이 곳을 왔고 .. 앞 사람 우산이 보이듯이 우산 망가지기 딱 좋은 강한 바람이 불었다. 걸을 수 없어서 결국 5분도 못 있고 나왔다. 새로이 알게 된 사실은 이 곳 사람들은 우산 없어도 쿨하게 비를 맞는다는 것. 다들 어쩜 이럴까. 길거리에 아무렇게나 널브러져서 샌드위치를 먹고 담배를 피고 비도 그냥 맞는 게 참 멋있다는 생각이 든다.


3. 쇼콜라쇼 좋아하는 사람. 결국 다시 카페를 왔다. 1일 2카페 하는 사람.. 안젤리나! 오래 기다려서 들어온 곳. 여기 쇼콜라쇼 엄청 진하고 달다.






나는 에끌레어, J는 바닐라

인테리어 참 예쁘지








4. 팔레 루아얄 정원. 조경이 어쩜 이렇게 잘 되어 있는지. 나무들도 참 예쁘게 잘라두었다.


“여기 기둥 위에 올라가봐. 쿵쿵 뛰는 만큼 기둥 높이가 내려가. “


나는 그 말을 듣고 기둥 위를 쿵쿵 뛰었고 기둥이 내려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런 허무맹랑한 말도 잘 믿는다.)





5. 작년에 구매한 장미 원피스와 캘빈 클라인의 조합이 내심 잘 어울려서 셀카를 가득 찍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넘 잘 샀어. 나는 모든 꽃중에 장미를 가장 좋아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거꾸로 흐르는 시간과 느린 별의 편지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