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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여름 May 03. 2022

비포 선라이즈와 장미를 바라보는 기쁨

작은  선물을 받았다. 비포 선라이즈와 선셋의 대사가 담긴 원서. 살짝 펼쳐서 읽어보는데도 장면 하나 하나가 생생하게 그려지는 기분이었다.



-나 이 영화 진짜 10번 넘게 봤거든!


누군가 인생 영화를 묻는다면 망설임없이 이 영화를 꼽는 나에게는 그 선물이 무척이나 고마운 선물이었다.



나는 셀린이 좋았다. 그녀처럼 똑부러지고 따뜻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셀린, 셀린. 그녀를 생각하면 갈색이 떠오르고, 그녀가 튕기는 기타가 떠오른다. 선라이즈에서는 머리를 아무렇게나 풀어헤친 그녀였다면 , 선셋에서는 깔끔하게 묶은 정장의 모습, 더 차분해진 그녀의 모습이고.. 미드나잇에서는 세상 풍파를 다 겪은 듯한 자연스러움과 포근함이 있지.




그리고 Lp들도.


-영국이랑 파리는 Lp가 싸. 한국이랑 비교할 수 없이. 가끔 그런 부분에 화가 날 때가 있어. 한국은 너무 터무니 없이 비싸게 팔거든.Lp 뿐만 아니라 많은 것들을.



S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사운드 트랙, 비틀즈 Lp, 그리고 S자신이 좋아하는 Lp를 건네줬다. 이 곳에 오고난 뒤로 나는 자꾸만 받는 사람이 된 것 같아 미안하다는 생각이 든다. 파리가 익숙치 않은 나는 사소한 부분에서부터 중요한 부분까지 필연적으로 타인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고, 그것은 여간 쉬운 일은 아니었다. 결국 인간은 타인 없이 살아갈 수 없다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지만.


작은 발견에 즐거움을 느껴야 한다. 작은 발견의 즐거움을 위해   먼길로 둘러갈 . 빠른 속도로 직선의 길을 가는 것이 아니라 돌아서  . 완만한 둥근선으로. 어느 곳이든 멈추고 싶은 곳에 멈추어 서서 호기심을 채우고, 스쳐 지나가는 분위기에 취할  있을 . 도시를 걸으며 숨은 그림 찾기의 즐거움을 느끼고 작은 발견을 통한 놀라움, 즐거움, 경이감, 신선함으로 하루를 채울 . 하루를 찬란하게 채울  아는 . 그들이라면 분명 파리를 사랑하리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정수복/ 파리를 걷는다


파리에 오고나서는 작은 것을 발견하는 재미가 커졌다. 어디든 오케스트라 무대로 만드는 길거리 연주자들과 수많은 공원들, 모래 놀이를 하는 아이들과 호수를 거니는 오리. 테라스에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과 벤치에 앉아 빵을 먹는 여자.   그대로인  곳이 나는 무척 좋았다. 나는 최선을 다해 느리고 싶었고 걷고 싶었다. 산보를 뜻하는 프랑스어 플라느리답게 서두르지 않고 순간순간  앞에 나타나는 풍경과 구경거리들에 정신을 팔며 걷기. 호기심을 갇고 우연한 발견의 즐거움을 느끼고 여유와 느림의 미학을 향유하기. 그것이 내게는  기쁨이었다.



살짝 열어놓은 대문 틈 사이로 피어있는 장미를 오래도록 바라보는 일, 길을 걷다가 마주한 아이들이 가득 찬 공원에  머물기, 센느강이 빛나는 걸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동자들.



한 프랑스인 아저씨가 통화를 하다가 길을 멈추고 나에게 “굿 이브닝. ” 이라고 외쳤고, 나는 파리지앵도 사랑하는 파리라고 생각했다.



편지를 썼다.









많은 사람들이 파리의 화려함에 이끌려 파리를 찾아. 세련된 사치와 감각적인 도시. 하지만 파리는 화려함만 있는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거기에는 어디서 오는지   없는,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는 적당한 정도의 슬픔이 스며들어 있어.파리의 화려함 뒤에는 알게 모르게 옷을 적시는 가랑비처럼 천천히스며드는 달콤한 슬픔이 있어. 그런 분위기는 힘차게 앞으로 나가는 느낌을 주는 신도시에서는 느낄  없어.파리에서는 아직도 빛을 발하고 있지만 점차 희미해지는 과거의 영광, 아련한 노스탤지어, 이루어지지 않은 , 무너져버린 환상의 허무함, 무언지 모를 결핍감, 안타까운 상실감을 느낄  있어.



저돌적으로 앞으로 돌진하는 도시 분위기에서는 내면을 들여다보는 분위기가 형성되기 힘들어. 그런 도시에서는 무언가 새로운 것, 이익이 될만한 것을 찾아 부리나케 빠른 속도로 움직여야 할 것 같은 느낌을 줘. 그렇지 않으면 뒤처지는 낙오자가 될 것만 같고. 하지만 파리는 그렇지 않아. 오래된 세월을 가진 곳곳의 기념비적 건물과 센 강변의 공원의 산책로, 골목길 속에는 적당한 양의 슬픔과 약간의 소외감 속에서 자기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 볼 수 있어. 그런 파리의 분위기는 상처받은 사람에게 위안을 줘.



파리에서의 슬픔은 행복한 고독감을 주는 달콤한 우울이야. 파리의 우울은 마음의 상처를 입은 사람을 우울증으로 빠지게 해서 무기력한 상태로 만드는 병적 우울이 아니라, 내면을 들여다보고 세상을 다른 눈으로 보게 하는 창조적 우울이라는 생각이 들어. 꺼지지 않은 불꽃을 다시 살려내고 새로운 상상력을 불러일으키는 창조의 원동력. 세계 도처에서 예술가와 작가와 지식인이 파리로 몰려드는 이유는 바로 그런 슬픔이 스며들었기 때문이 아닐까.



외로워도 외로움을 즐기도록 만드는 도시가 바로 파리야. 혼자와의 여행도, 누군가와 함께 하는 것도 좋게 만드는 도시. 외로움을 예술적 영감으로 변형 하는 도시. 그래서 그렇게 예술가들과 미술가가 사랑했나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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