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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이지 Oct 22. 2024

나는 치매 의사입니다

하세가와 가즈오/이노쿠마 리쓰코, 김윤경, 라이팅하우스, 2023

“100에서 7을 빼 보세요.”

“제가 세 개의 단어를 말씀드릴 건데요, 기억해 두었다가 나중에 알려주세요.”


장기요양등급 심사를 위해 방문한 직원이 질문을 던진다.

엄마는 소파 정면에 걸려 있는 디지털 벽시계를 커닝하며 몇 년 몇 월 며칠인지 묻는 기본질문은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지만 위 질문에선 멈칫했다. 100에서 7을 뺀 값은 겨우 말씀하신 것 같은데 93에서 다시 7을 빼는 건 어려워했다. 당신으로선 정신을 바짝 차렸지만 단어 세 개를 모두 기억하는 건 힘든 일이었다. 2020년, 엄마는 장기요양등급 4급 판정을 받았다.


건강보험관리공단 직원이 던진 질문들은 하세가와 치매 척도에 근거한 것이었음을 이 책을 읽으면서 알았다.


하세가와 가즈오는 1974년에 처음으로 치매 진단법을 개발하고, 노망 혹은 망령이라 불리던 치매 질환을 ‘인지증’으로 고쳐 부르는 운동을 전개한 의사이다. 가능한 한 치매 환자가 익숙한 환경에서 지낼 수 있도록 개호보험(2000년)과

역포괄 케어 시스템 등을 설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야말로 치매환자를 위해 평생을 바친 의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그가 치매에 걸렸다. 88세가 되던 해였다. 그는 자신의 병을 숨기지 않았고, 자신이 치매 당사자가 됨으로써 오히려 치매에 대해 더 잘 알 수 있게 되었다고 낙관했다. 그가 걸린 치매는 ‘은친화 과립성’ 치매였다. 인지 기능 저하가 두드러지지는 않으나 화를 잘 내고 고집이 세지는 경향이 있고 불안, 초조, 울병 등의 증상이 있다고 다. 투병 기간 동안 그는 강연을 멈추지 않았고, 가족의 수고를 덜어주기 위해 지역케어 시스템의 한 축인 요양원 체험도 해 본다. 그리고 의사로서가 아니라 치매 환자로서 당부하고 싶은 말을 남기기 위해 집필에 들어간다.


나 자신이 치매에 걸리고서야 비로소 알게 된 사실이 몇 가지 있습니다. … 가장 먼저 말하고 싶은 것은 치매에 걸려도 ‘삶은 계속된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제가 직접 경험한 확실한 사실입니다. 인간은 태어난 순간부터 연속되는 시간 속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이어져 있는 같은 존재입니다. 치매에 걸렸다고 해서 갑자기 다른 사람으로 바뀌지는 않습니다. -75쪽


정말 그렇게 믿고 싶다. 그러나 동생과 함께 요양원에 갈 때마다 낯선 엄마를 만난다. 우릴 보고도 엄마는 미소 대신 면회실만 두리번거다. 수다쟁이 우리 엄마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게 여전히 적응되지 않는다. 캐나다에 있는 오빠, 전화기 속 큰아들의 얼굴을 보고도 엄마의 표정이 달라지지 않을 때 조금씩 절망한다.


하지만 어쩌면 엄마의 오늘은 안간힘의 결정체가 아닐까. 언제나 그렇듯 최선을 다하고자 하는 당신 모습이 아닐까. 면회 주기인 2주 엄마에게 한없이 긴 시간으로 느껴지는 건 아닐까. 그래서 매일매일 딸들을 기억하려고 애쓰는데 마음대로 안 되는 게 아닐까. 분명히 당신 발로 걸어 다녔는데 꼼짝없이 침대와 휠체어 사이를 왔다 갔다 해야 하는 현실이 믿어지지 않아 매일 당혹하시는 건 아닐까. 그럼에도 이만하기 다행이라고 가슴을 쓸어내리며 하루를 살아내시는 게 아닐까. 그렇게 믿고 싶다.


치매에 걸린 후 새삼 깨닫게 된 게 있습니다. 체험에 온도 차가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당신이 오늘 여기에 와 주었다면 그것은 제게 ‘따뜻하다’는 느낌을 줍니다. 마음은 기쁘고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마냥 즐겁지요. 그리고 헤어질 시간이 다가와 ‘안녕’하는 인사를 들으면 낙담합니다. 온도가 내려가는 것을 느낍니다. 사람과 만나면 온도가 올라가고 사람과 헤어져 쓸쓸함을 느끼면 내려갑니다. 그렇기에 따뜻한 체험과 따듯한 인연을 가능한 한 많이 맺었으면 좋겠습니다. -206쪽


이 문장을 읽고 마음을 고쳐먹었다. 면회할 때 엄마, 점심 맛있게 드셨어요? 어디 아프신 덴 없으세요? 먹고 싶은 건요? 같은 하나마나한 질문은 던지지 않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동안 우린 엄마의 대답이 시원치 않으리라는 것을 알면서도 습관처럼 묻곤 했다. 그 대신 앞으론 우리 기억 속 엄마의 모습, 따뜻한 추억들을 하나씩 꺼내기로 했다.


“엄마, 글쎄 얼마 전에 고등학교 동창들을 만났는데 엄마가 도시락 반찬으로 싸준 멸치볶음 얘기를 하는 거야. 아직도 그 맛을 잊지 못한다고, 얼마나 맛있었는지 모른다고. 그게 40년도 더 된 옛날인데 아직도 기억하는 게 신기하지? 근데  예전에 엄마가 가르쳐 준 레시피대로 멸치볶음을 만들려고 해도 잘 안돼. 그 맛이 아니야.”

엄마가 웃는다. 성공이다. 엄마가 멸치볶음을 떠올린 게 분명하다.


길어야 30분. 엄마를 만나고 요양원을 나선다. 조금 전까지도 지루해하던 엄마의 표정이 달라진다. 원장이 잘 가라고 인사하시라 해도 손을 들지 않는다. 섭섭해하는 것도 같고 슬퍼 보이기도 한다. 우린 2주 후에 다시 오겠다고 애써 웃음을 건넨다. 엄마의 오늘이 따뜻하게 기억되길 바라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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