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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로 Dec 10. 2023

D-30!

지속가능성.


다시 학교로 온 건 자격증 때문이다. 자격증을 가지려는 건, 마음이 조금 여유로워질 거 같아서. 여유로운 마음은 중요하다. 영업사원 할 때는 하루치 불안을 벌어다 어찌하지를 못해 묵히고 썩히는 일을 3년을 꼬박 했다. 그걸 계속하니까 정신이 아프더니 나중엔 몸까지 아팠다. 영업을 잘하려면 독해야 한다. 아니면 좀 무디던가. 그때는 마음의 준비가 덜 돼 있었다. 하던 일이 안 돼서 오기로 한 번 지원한 회사였는데, 덜컥 붙어서 그냥 다녔다. 입사는 첫 관문일 뿐인데도 그게 다인 줄만 알았다. 마치 퀘스트 깨는 게임처럼. 그 뒤로 이어진 일상은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이었다. 뭔지도 모르는 서버를 팔고 고객사랑 협력처 아저씨들 상대하는 게 싫었다. 그 아저씨들 진짜 싫어…. 불편한 술자리를 다니고, 어울리지도 않게 넉살 흉내 내고, 숫자에 쫓기며 둘러대는 것도 싫었고. 대학생 때 옷가게 점원으로 일할 적에는 옷걸이에 간격 맞춰 옷 거는 일이 너무 쓸데없이 느껴져 화가 나곤 했었는데, 회사일이 그랬다. 나 같은 애가 회사를 다니면 요령만 늘고 뻔뻔해진다. 직장인으로 정년퇴임 하는 사람들은 정말 대단하다. 나는 도망치지 않는 이들이 부럽다.


관두는 날에 상무님이랑 면담을 했었다. 거기 가서는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끝까지 해. 뭐든 10년 이상은 이 악물고 버텨야지 뭐가 되는 거야. 사람 잘 보는 분이라 내가 마의 3년 차를 못 넘기고 째는 걸 안 것 같다. 너 원래 변호사 하려고 했었냐? 네… 아니, 뭐…. 하면… 좋겠죠…. 기자 하다 관두고. 영업하다 관두고. 그래도 시험은 무조건 붙어서 명함 돌리러 와라. 잔소리를 들으면서 문득 속으로 그분의 경력을 세어 보는데 또 대단하다는 생각을 했다. 같은 일을 수 십 년씩 한다는 건 아직도 잘 상상이 안 된다.


꾸준히 하기. 이것은 내내 관건이다. 공부하려고 짐 싸고 촌동네로 내려오면서 내심 좋았다. 마침내, 라고 까지 생각한 것 같다. 일이든 관계든 미친 변수들로 허덕이던 곳에서 그냥 나만 잘하면 되는 곳으로 건너오기. 통제력을 잘 쥐면 혼자서도 재밌게 살 수 있다. 매일이 지겹도록 똑같다는 데서 나는 안도한다. 작년 이맘때에 별 개 같은 이별을 겪고 추스를 때쯤 나를 깨운 말이 지속가능성이다. 끝도 없이 퍼부어야만 유지되는 관계에 몸도 마음도 지쳐 있었다. 그렇게 하면 뭐가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너무 아프니까, 어떻게 하면 덜 아플지 궁리를 했다. 한 선배가 내게 말했다. 그러니까 지속가능성을 봐. 도파민 쫓지 말고. 충동이 들면 그것을 인지하고, 곧장 반대로 달릴 것. 사랑은 눈이 막 돌아서 하는 게 아니야. 뜸 들이고 노력을 해야지. 노력하는 법을 모른거야. 지나고 보니 일리 있는 말이다. 다는 아니어도 반 정도는 지키려고 하고 있다. 아니, 덕분에 배웠다는 게 맞을지도. 금방 타오른 것들은 금방 사라질까 봐 무섭다. 그것만이 나를 무섭게 한다.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면 오로지 그 한 가지 열망에만 집중해야 한다고 한다. 죽을병에 걸린 환자가 세상만사 제쳐두고 치료에만 전념하듯이. 뭔가를 너무 갖고 싶으면, 그 마음이 감당이 안 돼서 운다. 내가 자꾸 울면 그게 잘 무르익어 간다는 증거다. 시험을 한 달 남겼는데 아직 눈물이 안 난다. 오히려 다른 일 때문에 많이 울었다. 마음이라는 건 참 초라하고도 위대해. 충동을 삼키는 일에는 에너지가 많이 든다. 그것을 노력으로 바꾸는 연습을 꽤 오래 했는데도, 내 것은 영 어설프고 이상하다. 그러니 기다림은 나의 몫으로 여긴다. 원하는 바를 얻는 것과 그것을 지속하는 삶에는 갖출 것들이 많다. 허나 이 모든 것이 그저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조금 괜찮아진다. 그러면 끝장 나게 슬플 일도 없고, 자책하며 괴로울 일도 아니게 된다. 마음이 기억하는 한 아무것도 사라지지 않으니. 침착해! 그래서 끝까지 끝까지 가 보면, 또 뭔가 있겠지. 까마득히 먼 길을 왔다. 이제 한 달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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