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로 Sep 22. 2023

더, 더, 더

해변 아래에도 해변이 있고 파도는 위아래로 두 번을 친다. 지구공동설 같은 거. 지상의 백사장을 바닥까지 파면 나오는 섬에 사는 사람들은 모든 대화를 거꾸로 진행시킨다. 말꼬리에는 저마다 붉은 실이 달려 있어서, 중구난방으로 말해도 결국엔 제자리를 찾아가는 거라고, 이들은 굳게 믿고 있다. 그러므로 먼저 말하는 사람은 독심술사이며 나중에 말하는 사람은 귀머거리라는 생각은 제삼자의 섣부른 판단이다. 가령

사막에서 양보하는 일은 있을 수 없다, 는 말에 거긴 마실 물 좀 남았던가? 로 답하는 등. 포도가 알알이 아주 잘 영글었소, 라고 말하면 오늘 오시기로 한 날이에요, 로 답하기로 한다. <인간은 불완전한 사서다>라는 보르헤스의 문장이 섬의 오래된 예언이며, 배달실수로 발문發問이 오역된 유일한 낱말사전은 퇴고만을 거듭했다고 한다. 여기서 ‘퇴고만을 거듭했다’라 함은 다만 사랑의 노동적 면모이자 마음의 형상을 보전하는 일일 것이다. 하여

엎치락뒤치락 할 겁니다

라던가

그야, 같은 걸 봤으니까

혹은

걸어서 올라가자 허리까지 잠기게

라고 말한다면 어떤가. 중력이 거꾸로 쏠리는 이곳에서 결미는 시작점에서 닫히며 너는 이 사실이 즐겁거나 수상쩍다.

작가의 이전글 오늘 본 하늘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