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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ug 29. 2024

1. 걷고 걸어 일본의 시골 마을로 (1)

나홀로 간사이 ( 코하타 - 우지 - 교토 )

아마노 하시다테 - 미조지리 마을의 전통 행사. 0411








- 2024년 4월 4일 목요일, 저녁 9시 -




"아~ 긴 하루였다"

..


퇴근 후. 맥주 한 캔 사들고 망원 한강 공원에 앉아

여의도를 바라보며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주말에 오토바이 타고 파주에 갈까.." 하며

주말을 계획하던 찰나.


"해외를 가볼까"



그래, 파주보다는 해외가 좀 더 낭만이라.

두 달, 세 달 못 버티겠으니

생각난 김에 떠나야 했고, 엔화도 쟁여놓은 김에

일본으로 떠나자 싶었다.


서울에 살다보니, 복작복작한 것이 힘들었다.

아무래도 사람이 없는 시골로 가야지.


다음 날 아침, 비행기 티켓을 예매했다.

4월 9일 - 4월 14일


나흘뒤, 일본 간사이 공항으로 떠나는 여정이었다.


급박한 그날의 흔적


예매하고 나서 보니, 내 여권 기한이 만료됐더라.

급하게 알아보니 '긴급 여권'이라는 빛이 있었다.


회사를 다니고 있어서 출국 당일에 발급을 해야 했다.

16시 비행기였고, 10시에 마포구청에서 발급을 완료했다.


역시 방법은 있어


근데 발급 비용 5만 원이더라.

갈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해서 괜찮았지만,

민감하신 분들은 참고하기 바란다.






- 2024년 4월 9일 화요일, 저녁 6시 -


나는 간사이 공항에 도착했다.


저녁인데 사람이 꽤 많았던 간사이 공항


"아.  숙소"


육성으로 말이 튀어나왔다.

세세한 일정을 짜는 성격이 아니라,

큼직하게 가고 싶은 곳만 정하고 왔다.


우지 > 아마노 하시다테 > 나라


다음날 우지에 갈 계획이었기에,

기차 타기 편한 곳에 숙소를 잡아야지. 싶었다.


사람들이 하도 'JR 패스'를 끊으래서

5일짜리 패스를 사 왔는데, 모두 갈 수 있더라.


역무원에게 몸짓 발짓 혓바닥 굴려가며

오늘 어디서 묵어야 우지를 쉽게 갈 수 있나 물어봤다.

'난바'라고 하셨다.

찰떡같이 믿고 아고다를 켰고, 남은 호텔을 잡았다.


어찌어찌 도움을 받아 키티가 그려진 기차를 타고

난바로 와서, 바로 체크인을 하고 난 딥슬립을 했다.






- 2024년 4월 10일 수요일 -


일찍 일어나, 체크아웃 전에 바깥으로 나왔다.

가끔 도쿄로 연휴를 보내러 가는데,

항상 그 지역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보고 왔다.


와이셔츠에 브리프 케이스를 든 샐러리맨

긴 치마와 헐렁한 와이셔츠를 입은 학생들


"음 - 이거지"


일본에 와있다는 것이 실감이 나기 시작했다.


이날은 근교의 '우지' 마을을 가는 일정이었다.

가서 뭘 할 것이란 계획은 없었다.


블로그에서 본 고즈넉한 이미지에 끌려 일단 가보는 거지.

숙소는 저녁에 내가 서있는 곳에서

에어비엔비로 잡겠다. 하고 신경 쓰지 않았다.


체크아웃 - 12시, 나는 우지행 열차를 탔다.


-


난바에서 출발한 우지행 열차, 맨 앞이었다.



우지로 가던 중, 창 밖에 마을이 너무 예뻐 보였다.

30분 쯤 지났나, 지하철 방송이 역 이름을 알려줬다.


' 코하타 '


-


갑자기 들렀던 마을. 코하타



목적지는 아니었지만, 홀린 듯 내렸고

코하타에서 두 시간을 머물렀다.


조용한 단독 주택 마을과 대나무 숲, 작은 신사.

너무 예쁘게 핀 벚꽃이 길을 따라 핀 마을이었다.


아무도 없는 신사로 걸어 들어갔고,

자갈밭에 앉아 바람 소리를 들었다.


코하타 역 신사, 저 나무 아래서 1시간을 앉아있었다.




마을 사람들이 걸어두고 간 나무 조각이라더라.


조그만 신사의 자갈밭에 앉아

조용한 마을 풍경과 대나무 숲을 보며 일기를 썼다.

아무도 없었고, 온전히 나만 그 공간에 있었다.


펼쳐든 일기장이 이렇게 평화롭기는 처음이었다.


어지간히 좋았다.



산책로를 걷는 노부부

책가방을 돌리며 집으로 오는 아이들

골목길 벚꽃을 쓸어주는 집 주인들


한국을 사랑하지만,

눈이 아프도록 평화로운 그림을

내가 언제 봤던가.


여유로운 내 마을의 모습과 소리,

배려가 피부로 와닿는 이웃과 자란 아이는

본인의 나라와 고향을 사랑할 수 밖에 없겠다.


생각이 많아지는 마을이었다.




기분 좋은 발걸음을 옮겼고,

우지에 도착했다.


우지는 녹차로 유명하고, '뵤도인'이란 명소가 있다.

관광지라길래 안 가려했지만..

근처에 있길래 걸어가 봤다.


사실 뵤도인은 기억 안 나고, 녹차 아이스크림 맛있었다.

온천지에 앉아서 멍 때리고픈 정자와 못가가 있었지만,

많은 관광객으로 그러지 못했다.


4월의 뵤도인


한 30분 돌아보다가, 뵤도인을 나왔다.

그러고는 구글맵을 켜지 않고 20분 정도 걸었다.

걷다 보니 폭이 넓은 강이 나오더라.


이거지!

분명 이 근처에 걸터앉을 강둔치가 있으리라.

바위에 걸터앉아 청승 떨 생각에 설레어왔다.


강으로 내려갈 수 있는 경사는 둑을 쌓아 막아놨었고,

둑을 따라 걷다보니 완만한 경사가 보였다.


그 곳에 낡은 표지판이 뒤집혀있었고,

뒤집힌 표지판을 돌려보니,


"내려가지 않는 것을 권장합니다"


나는 뒤집힌 표지판을 원래대로 돌려놓고,

오히려 경사를 따라 강둑으로 내려갔다.


''

"이렇게 하면 아무도 안 내려오겠지"

''


어글리 코리안이었습니다.


다만.. 아무도 없었고

이 멋진 강에 걸터앉는 것을 포기할 수 없었기에


미안합니다 일본.


내려와 버린 강 둔치. 무슨 강인지 모르겠다.


이 강 둔치에 걸터앉아 한 시간 정도.

지난 하루를 갈무리하고 일어섰다.


지독하게 평화롭고 깨끗한 그 모습을 담고왔다.


강둑에 걸터앉은 내 다리. 신났다.


지난날부터 비행기 - 기차 - 도보로

긴 거리를 이동했더니 피곤이 쏟아지더라.


지도를 켜보니 역까지는 40분.

걸어서 출발했다.


역으로 가는 길, 앉을 수 있는 포인트가 많아서 좋았다.


..


다음 날은 '아마노 하시다테'로 이동해서

'이네노 후나야'라는 마을로 이동할 계획이었다.


찾아보니 교토역에서 수월하게 갈 수 있었고,

나는 교토역 인근 맨션을 에어비엔비로 예약했다.


그러고 열차에서 사진을 보다가,

인스타그램 스토리에 코하타역 사진을 올리니,

누군가 DM을 보냈다.


-


"나무야! 너 지금 일본이야?"


..


잠깐, 8년 전으로 돌아가보자.





..



2016년 12월 24일   도쿄 신오쿠보 -





2016년, 크리스마스 직후의 도쿄 근교





8년 전, 첫 해외여행으로 혼자 도쿄에 갔다.

게스트 하우스 2층 침대에서 누군가 말을 걸더니,


"한국인이죠?"


무슨 얼짱시대에 나올 것 같은 미남이 말을 걸었다.


그게 김형과의 첫 만남이었다.

김형은 대학을 가지 않고 바로 군대를 다녀온 후,
모은 돈으로 일본에 놀러 온 상황이었다.

"일본 좋아요! 시험봐서 일본 대학 입학할까 싶네요"

"저 일본 사람이랑 결혼하고 살까 싶어요"


그에게 나는 그저 - 지나가는 사람이지않나.

무슨 말을 못 하리..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


김형은 2년 뒤,

일본어를 독학하고 시험을 봐서

일본 명문대에 합격했고, 현재 일본에서 회사를 다닌다.

지난해 일본인과 결혼하여 신혼집을 꾸렸다.


이후 가끔 SNS를 통해 일본에 있다는 건 알았지만,

이렇게 멋지게 이루어냈다니.


..


김형은 지금 관서 지방의 나라현에 있다고 했다.

이게 무슨 일인가!

우리는 3일 뒤 나라현에서 보기로 했다.






교토의 숙소에 도착했고,

근처 식당에서 장어 덮밥과 맥주를 먹고는

나는 다시 딥슬립에 빠졌다.


맛있었다. 그런데 이름은 기억이 안 난다..



"푹 자두자"


사각거리는 이불에 몸을 던지고

눈을 감았다.



이제 다음 날이면, 가장 기억에 남았던

아마노 하시다테로 떠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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