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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나무 Aug 29. 2024

3. 걷고 걸어 일본의 시골 마을로 (3)

나홀로 간사이 (나라 - 오사카 - 한국)

나라 사슴 공원에서 만난 귀여운 녀석




- 2024년 4월 12일 토요일, 오후 3시.  나라현, 야마토코리야마시 (Yamatokoriyama, Nara-ken)



2편에서 말한 김형이 살고 있다는 곳, 이곳은 나라현이다.

오늘은 김형의 집으로 놀러 간다.


돈키호테에서 산 헤네시 한 병을 포장지에 싸들고,

차가 다니지 않는 왕복 2차선 논두렁 길을 걸어간다.


나라현, 이곳은 야마토 코리야마시.


이 지역을 기대하고 온 것이 아니라서, 이곳이 어떤 곳인지 모르겠다.

다만 귀를 스치는 바람과 아이들 웃음소리, 짙은 풀냄새는 나를 반기는 듯했다.


''

"분명 이 쪽인데.."

''


구글맵이 알려주는 방향으로 고개를 들자, 논두렁이 나왔다.

논두렁 사이로 흙길이 길게 뻗어있고, 아무리 봐도 이 길은 아니었다.


''

"와! 나무야!!"

''


더벅머리 샤기컷을 한 잘생긴 일본인이 내 이름을 부른다.

어디서 본 듯한 익숙한 얼굴, 김형이었다.


논두렁 사잇길에서, 자전거를 끌며 걸어온다.

'허!'  헛웃음이 절로 나온다.

8년을 돌아 이 사람을 일본에서 만나다니. 믿기지가 않는다.


김형과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걷다 보니,

회색 빌라가 보인다. 김형이 사는 곳이다.


분명 빌라인데, 1층 건물 입구가 집 입구였고,

문을 여니 계단이 나온다. 이 계단까지 김형의 집이다.

한국은 건물 입구를 들어가면 세대가 나오는데, 참 신기하다.


''

"안녕하세요"

''


준비하고 뱉은 듯한 어색한 한국말.

계단을 걸어 들어간 집에서 어떤 예쁜 여성분이 나를 반겨줬다.


나는 동그란 눈을 하고 김형을 쳐다봤다.


''

"내 와이프 미호야, 인사해"

''


김형이 결혼한 것을 이때 처음 알았다.

미호는 7개월 차 임산부였다.


이 사람.. 성공했다.


어쩌다 보니 땀에 절어 신혼집에 쳐들어온 외국인이 되어버렸다.

양해를 구하고는 발과 손을 씻고, 거실에 앉았다.

잘 정리된 거실과 방, 그리고 어딘가 이질적인 집 구조.


내 앞에 앉은 김형의 세상은 이렇게 다르구나.

8년 전 같은 공간에서 서로 다른 감정을 느낀 그 순간이,

가까운 미래를 이렇게 바꿔놓을 수 있다니.


미호는 방에서 쉬기로 하고, 거실에서 김형과 헤네시의 코르크를 땄다.


일본에 살다 보니 한국인 친구가 사라져서 아쉽다는 얘기.

공부해서 오사카의 명문대학교에 입학한 얘기.

재직 중인 일본 회사 얘기, 와이프 얘기 등등. 혀가 아프도록 얘기를 나눴다.




그리고 기억나는 건, 어두컴컴한 버스 정류장.




''

"우욱.. 허.. 죽겠다.."

"우리 집에서 자고 가도 된다니깐, 들어가자"

"아니에요, 우욱.. 역 근처에 숙소 잡고 잘게요"

''



그렇다. 마른 쥐포에 꼬냑 한 병을 싹 비워버렸으니

알코올에 내성이 약한 나는 완전히 가버렸다.

듬성듬성한 기억 속에, 필사적으로 신혼집을 뛰쳐나온 기억이 있다.


사경을 헤매고 있을 때, 마을버스가 내 앞에 섰다.

김형은 나를 버스에 올려 태우고는, 기사님에게 뭐라 말을 건넨 것 같다.


나는 버스 좌석에 늘어져 기절을 했고, 얼마의 시간이 흘렀을까.

누군가 내 손을 잡고 조심스레 날 깨웠다. 기사님이었다.


''

"나라에키, 나라에키"

''


나라역에 도착했다고, 기사님이 나를 깨워주셨다.

비틀거리며 요금을 지불하고 버스에서 내렸다.

기사님은 나를 반쯤 업고는, 정류장에 앉혀주셨다.


벤치에 앉아 상황을 돌아보니,

김형이 "이 한국인을 나라역에 내려주세요"라고 부탁했던 것 같다.


속이 안 좋아 화장실에서 한 번 더 게워내고 밖으로 나오니,

멀리서 김형이 자전거를 타고 오고 있었다. 버스를 따라왔나 보다.


김형.. 기사님..


아. 뷰리풀 일본.

이때 잠시 이민을 올까. 진지하게 고민했었다.


김형은 나를 부축해서 근처 호텔에 데려갔고, 체크인을 도와줬다.

방문을 어떻게 열었는지는 기억나지 않는다.






- 2024년 4월 13일 일요일, 오전 10시.  나라에키 앞 아파 호텔.


잔뜩 무거워진 몸이 느껴진다.

천근만근, 눈을 떠 주위를 둘러보니 이곳은 호텔방이다.


"APA Hotel"


베개에 큼직하게 호텔 브랜드가 프린팅 되어있다.

핸드폰에는 간밤에 김형이 보낸 카톡이 쌓여있다.


''

'나무야, 자고 있어?  속은 괜찮아?'

'일어나면 나라 공원 가서 좀 둘러보고, 오후엔 형이랑 오사카 가서 놀자'

''


쌓인 카톡을 읽으며 문득 생각난 어젯밤 기억에 머리를 쥐어뜯었다.

난 물 두병을 원샷하고, 가방을 챙겨 호텔을 나섰다.


--


3시에 김형과 만나기 전까지 내가 가 볼 곳은 나라 공원.


사슴 공원으로 유명한 바로 그 공원이다.

호텔에서 30분 정도 걸었나, 커다란 공원의 입구가 보인다.


입구부터 사슴이 돌아다니는 참 신기한 공원이다.

사람이 모여있는 중앙 광장은 빠르게 지나치고, 난 안으로 들어갔다.

길을 끝까지 따라가니, 높은 언덕과 등산로가 보인다.


200엔에 등산로 입장권을 끊고, 나는 등산로를 올라갔다.

미친 짓이었지, 그 날씨에 등산로에는 아무도 없었고

매표소 직원은 청바지와 니트를 입고 등산 티켓을 구매하는 나를 이상하게 보더라.


등산로의 중턱, 나는 나무 밑에 쓰러져 20분을 쉬었다.

아마 그즈음, 내 숙취가 다 풀렸던 것 같다.


1시간 정도 가파른 등산로와 계단을 오르니

땀과 힘듦이 깨끗하게 사라지는 황홀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


나라 공원을 끝까지 걸어가면 만날 수 있는 높은 언덕.

---



적어도 이 지역에서 가장 높은 곳이 이곳인 것 같았고,

1시간 정도, 도시를 한눈에 내려다보며 잔디 위를 뒹굴었다.



졸졸 따라오던 사슴. 엄청 귀엽다.





어느덧 오후 4시,

사슴 공원을 충분히 만끽하고 - 김형과 오사카에 가기 위해 역으로 출발했다.

간사이 공항에 내리고 나흘 만에 오사카를 가다니.


우리는 도톤보리에 도착했고, 역에서 내렸을 때

이곳이 서울인지 일본인지 도통 분간이 어려웠다.

한국 사람들이 정말 많았다.



사진에서도 느껴지는 혼란스러움






우리는 오사카에 살고 있는 장형을 만났다. (편의상 장형이라 하겠다)


장형은 3년 전 오사카로 여행을 왔다가, 여기서 IT 창업에 도전했다.

눈을 반짝이며 인사를 했고,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진 바(bar)로 들어갔다.


자리에 앉은 장형은, 일본 입국을 위한 영업 활동을 펼쳤다.

결론은 넘어갔고, 내용은 이러했다.


일본은 IT 서비스업이 활성화되지 않은 국가라는 것.

한국에서 당연하다고 생각한 서비스가 여기서는 당연하지 않다는 것.


이 사람들의 생활 패턴을 이해하고, 서비스를 만들어 내놓으면

IT 인력이 부족한 현지 기업에서 제품을 사거나, 회사 매각 제안을 한다고 했다.


실제로 장형은 올해 초, 시작한 지 1년이 조금 넘은

픽업 서비스 앱을 현지 기업에 판매했다.

지금은 여유롭게 쉬면서, 다른 기회를 찾는 중이라 했다.


나는 눈이 반짝였다.


출국 직전, 현 정부와 일본의 스타트업 육성 프로젝트가 시작된다는

뉴스 기사를 본 것도 내 설렘에 한몫을 차지했다.


장형도 창업을 하러 오사카를 간 것이 아니라고 한다.

IT 서비스라 해서, 이 사람이 개발자인 것도 아니다.

그저 시도해 보려고, 이리저리 사람을 만나고 작게 시작해 본 것이라고 한다.


그래. 이거지.

내가 원하는 인생의 자극과 예측 불가능해서 아름답다는 건

이런 거거든. 여기에 있었네.



''



우리는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술잔을 부딪혔고,

난 어제의 부끄러움을 잊은 듯. 달아오른 얼굴로 형들과 도톤보리를 걸었다.


김형은 먼저 집으로 돌아갔고, 나와 장형은

꼬치가 유명한 선술집에 들어가 사케를 한 잔 더 시켰다.



''

"한국인이에요?"

"네"

"저희랑 같이 놀아요! 저희 한국말 잘해요"

''



갑자기 테이블을 붙잡고 두 명의 여자아이들이 말을 걸었다.

고등학생처럼 보이기도 하는 친구들은 한국을 좋아하는 스무 살 대학생이었다.


신나게 창업 얘기를 하던 나와 장형은 말을 멈추고,

이 상황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서로를 바라봤다.


둘 다 어린 여동생이 있는 오빠들이어서, 이 상황이 그저 웃기기만 했다.

거의 띠동갑에 가까운 호노카와 마유미는 그렇게 우리 테이블에 앉았다.


재미있게 한국인과 놀려고 말을 걸었겠지.

우리는 반짝이는 눈으로 이런 질문을 했다.



''

"대학생이에요?  무슨 학과예요?"

"꿈이 뭐예요?"

''


이 정신없는 K-아저씨들은

주말을 즐기고 있는 어린 친구들에게 거침없는 아재력을 뽐내버렸다.


간호대학을 다니며 시험을 준비 중인 호나카와 마유미.

내가 이번 관서 여행 중 가고 싶었던 시골 마을이 고향이라고 하더라.

이 친구들의 꿈은 같았는데, 고향에 돌아가서 간호사로 일하는 게 꿈이라더라.


어찌나 진지하고 자랑스럽게 얘기해 주던지!

스무 살의 꿈과 목표는 이렇게 아름답고 멋지구나. 생각을 했다.


얘기를 하던 마유미가 우리에게 제안을 했다.


''

"우리 노래방가요!"

''


위스키에 사케에, 마실대로 마신 아저씨 둘이 거절할리가 있나.

우리는 다 같이 노래방에 갔고,

나는 무슨 생각인지 모르겠지만 세븐틴, BTS 노래를 주구장창 불렀다.


장형의 말에 따르면, 내가 신청곡을 받았다고 한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호노카와 마유미는 우리에게 일본 노래를 불러줬다.

'푸른 산호초 'Blue Lagoon''라는 노래였다.


---

몇 개월 뒤, 이 노래를 뉴진스 하니가 tv에서 부르고 있더라.

---


이 영상이 왜 갤러리에 있는지 모르겠지만,

그렇게 신나게 노래를 부르고, 친구들에게 택시비를 쥐어주고는 택시를 잡아줬다.

아저씨들은 예약한 아파트로 가서 숙면을 해야 하거든.


호노카는 가기 전에 내 인스타그램 아이디를 물어보더라.

지금도 팔로우가 되어있다.


참 재미있고 개성 있던 친구. 나중에 일본 와서 놀다가 다치면 만나자고 했다.

안녕! 재밌었어.




그러고는 인천 공항.

서대문구의 내 오피스텔 앞에 도착하니, 지난 5일이 꿈같더라.


챙긴 것도 없이 휙 떠난 여행이었는데,

너무나 많은 것을 눈과 귀에 담아왔다.


다시 방문하고 싶은 관서 지방.

실타래에서 한 가닥을 잡고 돌아왔으니, 언젠가 따라가다 보면 다시 마주치겠지.


새로웠고, 따뜻했고, 즐거웠다.


다시 만나요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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