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무역은 점점 공허해진다
페루의 농부는 평균 밭을 17개씩 가지고 있다. 밭이 너무 많아서, 10시간 일하면 7시간은 밭 사이를 오가는 데에 시간을 버린다. 그들은 선택과 집중, 그리고 분업이라는 현대사회의 가르침에 도달하지 못해서 하루에 7시간씩 걷는 게 아니다. 이 농부는 밭을 모으고, 3시간 일하고 노는 방법을 모르지 않는다. 오히려 이동하는 7시간은 치열한 고민의 결과에 가깝다. 만약 밭이 하나뿐이면 병충해가, 가뭄이, 홍수가, 도둑질이 한 번만 일어나도 농부는 굶어 죽는다. 때문에 이들은 1개의 큰 밭 대신, 17개의 멀리 떨어진 밭을 택했다. 살아남기 위한 선택이다. 작년 노벨 경제학상은 이런 가난한 사람들의 경제적 합리성을 연구한 뒤플로와 크레이머가 받았다. 페루의 농부는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라는 재무관리 이론에 충실하다.
한편, 경제를 처음 배우면, 비교우위에 대해 배운다. 비교우위는 선택과 집중이 얼마나 효율적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니까 바나나와 마스크가 있을 때, 한쪽은 바나나만, 한쪽은 마스크만 생산해서 바꾸면, 모두가 웃는다는 그런 얘기다. 비교우위랑 자유무역은, 20세기 후반과 21세기 초반을 지배하는 패러다임이다. 수많은 FTA가 채결되었고, 무슨 권역으로 만들어 그 내에서 자유롭게 바꾸자는 이야기가 돌기도 했다. 마스크를 잘 만드는 나라가 마스크를, 바나나를 잘 만드는 다른 나라가 바나나를 만들어 서로 바꾸는 일은 당연한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마스크와 바나나를 만들다가, 바나나만 만들어 마스크와 바꾸는 결정은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다. 비교우위와 자유무역의 세계에서는 “왜 안하지?”라는 질문이 나오겠지만 말이다. 바나나만 만들게 하려면 단순히 돈을 더 벌 수 있다는 논리 외에 몇 가지 약속이 더 필요하다. 이 약속은 17개의 밭을 오가는 농부가 큰 밭 한 곳에서만 일하는 일과 같은 약속이다. 아마 17개 밭을 오가는 농부는, 내 밭에 병충해가, 가뭄이, 홍수가 일어나더라도, 내가 원래 일했던 17개의 밭에서 나를 도와준다고 약속해야 17개 밭을 포기할 수 있다. 마스크 포기도 똑같다. 나중에 내가 마스크가 필요해졌을 때 마스크를 구할 수 있다는 약속이 필요하다.
문명은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하는 자급자족 생활에서, 각자 역할을 맡고, 기능을 교환하며 효율적이게 변해왔다. 국가 단위에서도 똑같다. 많은 국가들은 비교우위를 통해 더 많고 잘하는 가치를 창출해낸다. 핵심은 신뢰다. 이 모든 교환은 내가 가장 잘하는 일에 집중하는 게 더 효율적일 때에도 일어나지만, 그 집중에 내 생명이 위협받지 않는다는 확신이 들었을 때만 일어난다. 뒤플로의 연구도 같은 맥락이다. 가난한 사람은 한 직업의 전문성보다 여러 직업을 전전한다. 같은 품종으로 도배하는 일은 위험한 일이다. 경제학에서는 효용의 극대화만 가르치지만, 변화가 조금만 일어나도 죽는 사람에게는 극대화보다 내가 살아갈 수 있다는 확신이 더 중요하다.
요 몇 달 새 마스크는 무기가 됐다. 아시아에서 유럽으로 보내는 마스크를 미국에서 가로챘다는 기사가 있다. 대기업 3M은 인도적 차원에서 생산 마스크의 10%를 라틴아메리카에 보내지만, 이 역시 트럼프가 수출금지를 검토하기도 했다. 마스크를 포기하고 바나나만 만드는 나라는 이제 안다. 바나나만 만드는 나라들은, 바나나만 만들면 더 풍족하지만 내가 마스크를 만들지 않으면, 진짜 마스크가 필요할 때 죽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마스크만 만드는 나라는 여차하면 마스크를 무기화해, 내 삶을 위협할 수 있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다시 말하지만 효율과 신뢰의 문제다. 자유무역은 당연히 모두에게 더 많은 돈을 가져다주지만, 약간의 변화에도 죽지 않는다는 신뢰가 보장되었을 때 일어난다. 변화는 모두에게 나쁘긴 하지만, 가난한 나라나 사람에게는 특히 더 나쁘다. 코로나가 그렇다. 한국과 미국에서도 죽어나가지만, 브라질과 인도에서는 상승세가 꺾일 기미가 없다. 물론 많은 차이에서 기인했겠지만, 내가 포기한 마스크 생산도 그 차이에 기여했다고 생각한다면, 문제는 커진다. 신뢰는 복구하기 힘든 문제이기 때문이다.
바나나와 마스크로 간단히 이야기했지만, 현실에서는 독점과 민영화, 관세와 기간산업의 문제로 번진다. 우리는 생존을 보장하며 효율을 극대화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이 생존의 보장은 시스템과 시스템을 운영하는 신뢰에서 기인한다. 신뢰를 부수고 힘의 논리를 들이밀면, 단기적으로 기분이 좋을 수는 있다. 합의한 룰을 어기고 마스크를 전부 가져간다면 트럼프 본인의 인기는 증가한다. 하지만 장기적으로는 틀렸다. 수많은 사람들이 어렵게 이룬 신뢰를 부수는 일이기 때문이다. 신뢰는 얻기는 어렵지만 잃기는 쉬운 종류의 가치다. 이제 우리는 미국이 자유무역하자고 하는 말을 그대로 믿기 어렵다.
한국은 WTO에서 농업 분야의 보조금 한도를 제한받는다. 작년에는 개발도상국 지위를 포기해 관세 부과 품목과 비율이 줄었다. 식량도 없으면 살 수 없는 종류의 재화다. 생산하지 않았을 때, 전 세계적 가뭄으로 생산이 줄었을 때, 우리는 맘 편히 밥 먹을 수 있을까? 보전한다는 약속은 이제 공허해졌다.
배부를 때 약속 지키기는 쉽다. 배고픈데 약속 지키기는 어렵다. 하지만 약속은 처지와 상관없이 지켜져야 약속으로서 의미를 가진다. 코로나는 위기다. 위기에서는 민낯이 드러나기 마련이지만, 그 민낯은 신뢰를 박살냈다. 자유무역이 가져오는 엄청난 효용은, 신뢰 아래에서만 가능했다. 따라서 부서진 신뢰는 영구적 상처다. 이렇게 박살난 신뢰를 다시 회복하는 데에는 당장의 이득보다 더 큰 비용이 발생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트럼프가 하나를 알고 둘을 몰라서 싫다. 단기적 이득은 장기적 손해를 가져온다. 경영학에서는 이를 당장 좋은 선택이 가져오는 부채라고 부른다. 이 부채가 내 눈에만 많이 커 보였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