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진형 Mar 06. 2021

완벽한 지배구조

구조가 해결책이 아닐 수도




 피자를 가장 공평하게 나누는 방법은 나누는 사람이 마지막 조각을 가져가는 거다. 그러면 혼신의 힘을 다해 나눌 것이기 때문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잔여지분청구권(마지막 조각)을 가진 주주가 경영권(피자를 나눌 권리)를 갖는다. 최소 수혜자의 최대 이익이라는 롤스의 정의론과 일맥상통한다. 기업은 생각보다 도덕철학에 입각한 구성물이다.


 이 시스템은 효율적이다. 가장 많은 책임을 지는 주주가 경영권을 가지면, 최선을 다해 경영할 테니까 말이다. 기업가치, 혹은 기업이 창출할 가치의 극대화에 걸맞은 선택이, 정의로워 보이기까지 하다는 점은 놀랍다.



 하지만 모든 제도와 시스템이 그렇듯, 기업에 대한 시스템도 완벽하지는 않다. 대표적인 문제는 대주주에 의한 소액주주의 권리 침해다. 일감 몰아주기와 비자금은 잊을만 하면 나오는 뉴스지만, 그 회사의 일부를 소유한 개미는 그런 일을 지시한 적이 없다. 심지어 순환출자를 통해 가진 주식의 수를 부풀리기도 한다.


 내가 들은 수업의 황이석 교수님은 소유와 경영의 괴리에서 나오는 차이가 기업가치에 도움이 되는지 분석했다. 그 결과는 경제성장률이 가파를 때에는 소유권의 독점이 유리할 수도 있다는 점이었고, 분석에 사용된 로직을 보면 경영자의 도덕적 해이는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런 부작용을 막기 위해 다양한 제도가 검토되고 시행된다. 3% 이상의 주주에게 감사권을 주기도 하고, 5%이상의 주주에게는 공시 의무가 있다. 매년 받는 회계감사는 점점 고도화되고 선진화되며, 내부자거래는 드러나면 강력하게 처벌된다. 결론적으로 점차 가격에도 반영된다. 정의로워 보이는 원칙 아래에서도, 기업이 똑바로 작동하려면 수많은 제도와 비용이 필요하다. 이론의 영역이다.


 한편, 주주가 꼭 기업가치에 최선을 다할 거라는 생각도 의심스럽다. 주식 상당수를 확보해 경영권을 얻으면, 이익을 부풀려 다시 팔아치우거나, 회사를 조각조각 매각하는 일이 빈번한 것을 보면 말이다. 혹은 근로자를 감독하는 전문경영인의 연봉을 책정함에도, 지나치게 과도한 연봉을 지급하거나 스톡옵션의 회계처리를 하지 않는 등, 이익에 직결되지 않으면 도덕적 해이를 일으키기도 한다.



 이에 독일과 스웨덴에서는 근로자를 이사회에 30%에서 50%까지 의무적으로 참여시킨다. 주식을 팔면 그만인 주주보다, 기업에 장기근속하는 근로자가 기업가치 상승에 더욱 도움이 되며, 정의롭기까지 하다는 이유다. 미국에서도 이사회 40%를 근로자의 몫으로 배분하자는 법안(Accountable Capitalism Act)을 발의한 엘리지베스 워런이 경선에서 비중 있는 주자로 등장했다. 이처럼 가장 효율적이고 또 정의로운 기업구조에 대한 논의는 아직도 진행중이다.


  기업을 소유하며 경영하고 투자함에 있어, 기업의 구조를 이해하고 장단점을 분석하는 일은 기본이다. 더 잘 경영되는 기업을 고르고, 또 경영함에 있어 매우 중요해 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경영학과라면 들어야 하는 재무관리의 첫 장은 잔여지분청구권과 주주에 대해서 배우며, 기업지배구조와 회계에 대한 내용도 경영학과 학생이라면 들어야 하는 수업 중에 하나다.



 하지만 워렌 버핏에 대해 공부하다 보면, 더 잘 경영되는 기업을 고르고, 더 잘 경영함에 있어 꼭 기업의 구조와 역학관계, 법률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워렌 버핏은 기업을 고를 때, 30년 이상 창업자가 경영하는 기업을 고르고 인수한다. 특히 버핏은 2010년 주주서한에서 "절차가 아니라 사람을 신뢰한다"라고 밝힌다. 복잡한 법률과 통제절차가 아니라 단지 경영자의 주인의식만을 시험하며, 그리고 믿고 맡긴다. 버핏의 회사 버크셔의 기업 목록을 보면 그래서인지 가족기업이 대부분이다.


 보수를 바라고 최선의 이익을 바라는 것은 미덕처럼 여겨져 왔고, 이기심이 회개의 대상이 아니라 관리의 대상이라는 점은 자본주의와 시장경제체제를 관통하는 원칙이다. 따라서 기업에 있어서도 구조가 수없이 재설계되며, 오늘날에도 수많은 법률이 입법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결국 핵심은 기업의 가치 또는 기업이 창출할 가치의 극대화다. 해결책은 사람의 이기심을 조절한 복잡한 체계나 절차일 수도 있지만, 보수보다는 일과 사명에 관심이 많은 사람이 기업을 경영하면 단순하게 해결된다.



 버핏은 2015년 질의응답에서도 똑같이 말한다. "버크셔에서는 보수가 아니라 주주를 대신해 책무를 떠맡으려는 사람이 이사가 됩니다.", "버크셔는 수도원이 아니지만 나와 경영자들은 보수보다도 일에 관심이 많습니다."  그리고 2017년에는 덧붙인다. "우리가 올바른 문화를 확립하고, 이 문화를 바탕으로 이사와 경영자들을 고용한다면, 1000페이지짜리 규정집에 의존할 때보다 더 좋은 실적이 나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문제는 좋은 회사를 만들고 경영하고 유지하는 일이다.  좋은 회사를 찾고 투자하는 일이다. 법과 규정이 아니더라도 해결책은 많다. 학교에서 공부하다 보면 사람이 사라지고 규정과 절차, 혹은 법률만 남는다. 하지만 기업은 사람이 경영하며, 보통 최악의 경우만 이기적이다. 사람을 믿기보다는 돈과 계약을, 법과 힘을 믿으라고 한다. 많은 경우 그게 옳기도 하다.


 하지만 사람과 시간을 믿는 것도 그리 나쁘지는 않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기업을 경영하고 투자함에 있어서도 사람과 세월을 믿는 게 복잡한 규정보다는 더 끌리기도 하고 말이다. 그리고 역설적이게도, 사람을 그냥 믿어버리는 게 가장 쉽고 효율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연봉과 안정성보다는 흥미와 사명으로 직업을 고르고 일해야 한다는 생각도 든다. 연봉과 안정성을 바탕으로 일을 고르면, 결국 통제와 규정을 따라야 만 누가 나를 믿을 수 있으며, 그래야만 비로소 효율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직하고 열정적이게 일하면, 시간이 쌓여 신뢰로 변하면, 결국 더 많은 일을 더 효율적이게 해낼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정직하고 열정적이게 일하는 게, 유능하고 똑똑한 것보다 더 중요하다는 뻔한 잔소리는 다 이유가 있다.

매거진의 이전글 백종원은 요리사가 아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