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경영학과에 진학한 이유
왜 영재고 나와서 경영학과 갔어? 나를 소개하면 항상 따라오는 질문이다. 언제나 '누구나처럼 흥미와 적성 사이 어딘가다' 라며 넘겼지만, 당근마켓을 보며 확실해졌다. 나는 경영학과에 ‘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왔다.
당근마켓은 "당신의 근처에서 만나는 마켓"의 준말이다. 당근이라는 슬로건처럼 지역 인증이 없이는 거래할 수 없고, 택배거래보다는 직거래가 권장되는 중고거래 플랫폼이다. 당근마켓은 잘나간다. 중고나라와 번개장터가 건재하고, 심지어 기업형 샐러의 진입을 막았으며, 택배도 잘 안쓰는데 말이다. 국내 커머스 앱중에 월간 순 방문자수(MAU)로 쿠팡(1397만), 11번가(657만)에 이은 3등이다. 위매프, 지마켓, 티몬보다 사용자 수는 앞선다.
그런데 당근마켓의 수익모델은 의심스럽다. 당근마켓에서 사업자는 볼 수 없다. 권장되지 않는 수준이 아니라 머신러닝 기술까지 동원해가며 차단한다. 사업자를 유치하는 타 C2C 플랫폼과는 다르다. 거래에 수수료가 있는 것도 아니다. 단지 ‘지역기반사업자’제한이 붙은 ‘지역기반광고’로 수익을 한정적으로 얻을 뿐이다. 그럼 얘네는 도대체 뭘로 돈을 벌까?
기사에 따르면 ‘마켓’보다 “당신의 근처”가 당근마켓의 본질이다. 당근마켓은 ‘커뮤니티 서비스’ 회사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를 ‘앱 방문빈도’와 ‘체류시간’을 늘리는 수단으로 활용한다. 수많은 택배 기반 서비스와 결제대행 서비스가 소위 ‘대세’지만 당근마켓은 두 개를 다 거부한다. 직접 만남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모으고, 그들이 좋아하는 가치를 제공하는게 당근마켓이 서비스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당근마켓 김용현 대표는 말한다. “우리는 시대를 역행하고 있어요. 집을 나가지 않고도 하루종일 생활하는 것이 가능해요. 하지만 그래서 삶에 잃어버린 것도 있는 것 같아요. 우리는 사람과 사람의 만남에서 오는 무언가가 있다고 믿어요. 디지털화되어 대면이 필요 없어진 세상에서 대면하고 싶은 욕구는 존재하거든요.”
이 스타트업은 ‘동네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자기 앱에서 하기를 원한다. 그들이 확보한 ‘앱 방문빈도’와 ‘체류시간’은 시민들이 모임을 가지고 싶을 때, 강아지 산책을 누군가에게 맡기고 싶을 때 효과적이다. 또 한번 쓰고 지우는 이사와 세차 중개 서비스하고 연계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우리는 앞으로 당근마켓을 통해 과외를 구할지도, 윗집 할머니에게 뜨개질을 배울지도, 심지어 옆집 꼬마 생일파티에 초대될지도 모른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기반 커뮤니티다.
IT가 사라지게 만든 지역기반 커뮤니티를 ‘IT스타트업’이 주장하고 있다. “지역사회가 중요합니다”나, “우리는 '정'의 민족입니다”처럼 주민센터에 붙어 있을 법한 내용이 아니다. ‘지역사회 부활’이라는 태마를 위해 “중고거래”를 주장하는 그들의 방법론은 파괴적이다. 그래서 그들은 철저히 자연스럽고, 또 지극히 현실적이다.
‘이웃을 사랑하라’라는 말이 있지만 우리는 사랑할 이웃을 잃어버렸다. ‘정’, ‘이웃’ 뭐 이런 말들은 적어도 내가 사는 서울에서는 찾아보기 힘들다. 당근마켓은 ‘네이버’말고 더 이상 말하지 않는 ‘이웃’을 이야기한다. 당근마켓은 중고거래 플랫폼이 아니라 지역 기반 커뮤니티 사업자로, ‘정’을 서비스한다.
흔히 어떤 기업의 비즈니스는 숫자와 서비스로 요약된다. 경영학과라고 하면 양복과 통장에 찍히는 돈이 먼저 떠오른다. 하지만 비즈니스의 본질은 “가치의 자연스러운 전달”인 것 같다. 쉽게 숫자로 전환되지 않는 가치라도 결국 비즈니스는 가장 현실적이고 자연스럽게 해낸다. 혹자는 CEO는 차갑다고, 경영학은 비인간적이라고 말한다. 하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는 경영학은, 내가 하고 싶은 비즈니스는 인간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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