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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루나 Mar 22. 2021

여름같은 연애와 겨울같은 연애


가끔 센치해지면 쓰는 연애 에세이 #01

여름같은 연애와 겨울같은 연애






원래도 눈물이 많은 편이라 조금만 서운하거나 억울한 상황이 되면 금세 눈가가 시큰해지곤 한다. 어릴 적인 그 눈물을 내심 이용하며 스스로를 영리하다며 생각한 적도 있었지만, 다 커서는 때와 장소를 가리지 못하고 흐르는 눈물샘이 원망스럽고 분했다. 스스로를 약하디 약한 사람이라고 인정하는 것 같아, 오히려 내가 울고 있다는 사실에 더 열이 받아 더 울기도 했다.


안그래도 툭하면 우는데, '이별'이라는 어마어마한 일을 겪고나면 한동안은 내 몸 속의 수분이 얼마나 줄었을까 궁금해질만큼 울었다. 엉엉 소리내어 서럽게 울 때도 있었고, 조용히 하지만 쉬지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을 한참이나 방치하며 멍하니 천장을 바라보고 있다가 코가 막혀 컹 일어나는 때도 있었다. 이별을 하고나면 최소 며칠 간은 평생 쏟아낼 눈물을 다 쏟아낸 듯 매일매일 울었다. 그래서 나는 이별은 하늘이 무너지는 것 같은 아픔을 동반하는 것이고, 영영 이별에 적응하지 못할 것이라고 믿었다.


그런데 그렇게 서러운 이별을 한 지도 어언 2년이 지났다. 이번 이별에는 거의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헤어진 당일 침대에 누워 멍하니 있다가 잠시 운 것이 다였다. 응당 울어야할 내가 울지 않으니 이상했고, 어떻게든 조금 울어야하지 않을까 하는 의무감마저 느낄 정도였다. 전남친을 사랑하지 않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런데 헤어지고 며칠 후 물건을 보내겠다는 연락을 받았을 때조차 눈물이 나지 않자 너무 이상했다. 원래의 나라면 카톡창에 그 이름이 뜨는걸 본 순간 벌써 한바가지는 눈물을 흘렸어야 했는데 도대체 이게 무슨 일이람. 진작에 그렇게 많이 울어버린 덕에 이제는 눈물샘이 말라버린걸까. 눈물에도 총량이라는 것이 있는걸까.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여름같은 연애

내가 몇날며칠을 울고 다시 만나면 안되냐고 엉엉 울며 전화하고 그도 울고 다시 만나고 또 헤어지고를 반복했던 '그 연애'는 여름같은 연애였다. 그 연애의 상대방은 정이 많고, 여린 마음의 소유자였다. 부끄러워하면서도 솔직하게 표현하는 것을 좋아하는 남자였다. 뭘 하든 함께하고 싶어했고, 연락이 뜸하거나 내가 개인의 시간을 원하면 서운해해서 남녀가 바뀌었다는 소리도 많이 들었다.


자주 만났고, 많이 놀러다녔다. 행복했지만 그 외의 다른 부분들은 뒷전일 수 밖에 없었다. 시간도 체력도 마음도 연애에만 쓰기에도 부족했으니까.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았다. 작은 거 하나에 서운했고 질투했고 기싸움을 했다. 때로는 나도 다른 걸 하고 다른 사람과 만나고 싶은데 눈치가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보니 내가 나의 다른 관계를 희생한 대가를 원했다. 나는 너가 싫다고 해서 이것도 안 했는데 너는 왜 저걸 해주지 않느냐는 식의 보상심리도 종종 작용했다. 뜨겁게 좋아하며 붙어다녔지만 결국 서로의 열기를 감당하지 못하고 헤어졌다.


겨울같은 연애

이번 연애는 겨울같은 연애였다. '이 연애'의 상대방은 천성적으로 효율을 생각하는 이과 남자였다. 분명히 좋아했고 함께하는 시간이 행복했지만, 연애와 별개로 개인의 시간도 중요했다. 덕분에 서로를 구속하지 않는 정도의 거리감을 유지하며 알맞게 좋아했다. 연애에 다 바치는 것이 아니라, 연애를 하면서 나의 일상도 유지하는 정도의 평정심을 지켰다.


처음에는 그 반응이 이상했다. 그 전에는 어디 술자리에 간다는 말을 하려면 한참을 눈치보며 내가 안 갈 수 없는 이유를 붙여 설명해야 했다. 그런데 이번에는 흔쾌히 잘 다녀오라고 한다. 친구들이랑 있을 때 폰 보지 말고 들어갈 때 연락하라고 한다. 나는 너를 구속하지 않으니 너도 나를 구속하지 말라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을까. 다행히 그는 성실하게 운동이나 공부 등 자신의 생활을 해나가는 사람이었기에, 나도 상대방이 자신의 생활을 챙기는 것에 서운해하거나 질투하지 않고 그냥 내 생활을 해나갔다. 처음에는 상대방이 날 덜 좋아해서 그런가, 하는 의심도 당연히 했다. 그렇지 않다는 사실은 만나면 알 수 있었다. 이 겨울같은 연애는 나에게 충분한 자유를 주었기에 내심 편하기도 했고, 둘 모두에게 효율적이었다. 하지만 어느순간 나는 자유로운 연애에 추위를 느꼈다. 그래서 결국 헤어졌다.



겨울같은 연애는 이별의 후유증이 적을 수 밖에 없다. 그래서 좋으냐고 하면 딱히 그렇지도 않다. 이제 겨울같은 연애도 여름같은 연애도 싫다. 세상에 중간만 가는 게 제일 어려운 거라지만, 다음엔 여름과 겨울의 그 중간, 봄같거나 가을같은 그런 연애가 찾아오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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