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May 22. 2023

감정 이야기 3

나는 왜 내 감정을 잘 모르는 사람이 되었던 걸까?




1. 나에게 집은 쉼터가 아니라  가장 위험한 곳이었다.


어린 시절 나는 쉴 곳이 없었다. 집에 있으면 늘 조마조마했고 몸은 저절로 긴장되었다. 에게 집은 언제 어디서 총알이 날아들고 포탄이 터질지 모르는 전쟁터였다. 

아버지는 언제 화를 낼지 없고, 언제 매를 들지 없는 시한폭탄 같았다. 아버지가 화를 내고 매를 들면 누구도 말릴 없었다. 그래서 아무도 말리지 않았다. 안에 편은 없었다. 


아버지의 화는 예측할 수 없었으므로 나는 아버지가 화를 낼까 두려워서 그에게 말을 붙이는 것조차 어려웠다. 나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아버지의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은 나에게 가장 중요한 일이 되었다. 내 모든 감각과 주의는 아버지에게 집중되었고 나에게 집중할 수 있는 나는 남아 있지 않았다. 내 감정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전쟁터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살아남는 것이다.





2. 내 감정은 존중받지 못했다.


아버지를 비롯해 누구도 나의 감정에 관심이 없었다. 우리는 감정을 '나'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감정을 존중받지 못하면 내가 존중받지 못한 것으로 여긴다. 

감정이 존중받지 못하는 경험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내 감정은 가치 없고 쓸모없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래서 자신의 감정을 스스로 비난하고 가치 없게 여기며 부정하게 된다. 


아버지의 집에서 엄마는 금지된 단어였으므로 나는 그리움과 슬픔을 드러낼 수 없었다. 내 감정은 어른들을 불편하게 만들었다. 나의 그리움과 슬픔은 나를 위험하게 만드는 감정이었고, 나는 나의 감정을 미워하고 부정하는 아이가 되었다. 


관심받지 못하고 존중받지 못하는 나의 감정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사람들은 내 감정을 싫어할게 분명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내 감정을 숨겨야만 했다.





3. 사랑받고 싶어서 욕구를 버렸다. 욕구를 버리면 감정도 함께 버려진다. 



감정은 욕구와 직결되어 있다. 우리는 욕구가 충족되었을 때 사랑받는다고 느끼고 욕구가 좌절되었을 때 버려짐의 고통을 느낀다. 아이는 욕구가 지속적으로 좌절되는 고통스러운 감정을 오래 견디지 못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존과 안전을 위해 아이는 자신의 욕구를 억압하고 부정한다. 고통을 원천 봉쇄하는 것이다.


한 인간이 전 생애에 걸쳐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며 살 수 있기 위해서는 어린 시절의 기본적인 욕구들이 반드시 채워져야 한다. 

생존, 안전, 지지, 피부 접촉, 인정, 소속감, 즐거움 등과 같은 기본적인 욕구들은 대부분 양육자의 양육 태도와 연관되어 있다. 아이의 욕구가 얼마나 충분히 충족되느냐는 양육자의 심리 상태에 따라 결정되는 것이다. 


정서적인 결핍을 가진 양육자는 자신의 문제 때문에 아이의 욕구에 집중하기가 어렵다. 설사 욕구를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그 욕구를 건강하게 충족시키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채워진 적이 없어서 채워줄 수 없는 것이다. 


나는 떼쓰지 않고 울지 않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아이였다. 나의 욕구는 아버지의 집에서 살아남기에는 부적절했다. 내 욕구를 드러내면 미움받고 버려질 것이 분명했다. 미움받지 않기 위해 버려지지 않기 위해 나는 나의 욕구를 억압하고 부정하며 드러내지 않았다. 엄마가 그리웠지만 그리워하지 않았고 아버지의 사랑을 받고 싶었지만 사랑을 구하지 않았다. 


엄마에 대한 그리움도, 혼자라는 외로움도, 버려짐에 버려진 분노와 슬픔도, 버려짐에 대한 두려움도 다 무의식 속에 묻어 버렸다. 욕구가 희미해지면서 감정도 희미해졌다. 


욕구와 감정이 사라지는 것이 싫지 않았다. 나의 욕구와 감정이 사라지자 아버지의 욕구와 감정에 맞추며 살기가 쉬워졌다. 나는 더 안전해졌다.




3. 나는 감정을 다루는 법을 아버지로부터 배웠다.


아버지는 자신의 부정적인 감정으로부터 전력을 다해 도망치는 사람이었다. 그는 도망치면 그 감정들로부터 벗어날 수 있다고 믿었다. 그것이 그가 알고 있는 감정에 대한 전부였다. 


외로움이나 슬픔,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감정들이 올라올 때 그는 자신의 감정을 습관적으로 회피하고 억압하고 부정했다. 그리고 분노 속으로 도망쳤다. 화를 내면 자신이 인생의 고통을 이겨내는 강한 사람처럼 느껴졌던 것일까. 아니면 화를 내면 그 감정들로부터 자신을 지킬 수 있다고 믿었던 걸까.


나도 아버지와 같은 어른으로 자랐다. 불편하고 아픈 감정들이 올라오면 화를 내고 때때로 불의에 대한 저항을 핑계 삼아 분노로 도망쳤다. 그리고 스스로를 정의로운 자라고 믿었다. 몸에 밴 그 방법 말고는 아는 것이 없었다.


아버지는 말이 없는 사람이었다. 엄마와의 결혼이 비극적으로 끝났을 때도, 인부 두어 명과 함께 텅 빈 산기슭에서 홀로 엄마의 시신을 묻고 나서도 그는 침묵했다. 누구에게도 자신의 고통스러운 속내를 털어놓지 않았다. 


아버지는 감정을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외로움이나 슬픔, 두려움이나 불안 같은 감정을 느끼면 그 감정이 '나'가 되는 것이니 그것들로부터 도망쳐야만 했다. 

나는 엄마 없는 집에서 아버지에게 충성을 맹세한 아이였다. 아버지를 존경했고 아버지를 닮고 싶었다. 나는 감정을 대하는 방법을 아버지로부터 배웠고 아버지처럼 전력을 다해 도망쳤다. 감정은 억압하고 부정하면 사라지는 것인 알았다


아버지가 세상을 떠나고 묻어두었던 감정이 쓰나미처럼 나를 덮쳐왔을 때, 나는 아버지의 방법이 실패했음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4. 우리는 부모로부터 감정을 물려받는다


우리의 무의식 속에는 조상들의 감정이 저장되어 있다. 우리 모두의 무의식 심층에는 인류의 축적된 경험과 한국인으로서의 경험과 내가 태어난 가계의 조상들의 경험이 저장되어 있다. 


외세의 지배와 동족 간의 전쟁을 경험한 한국인의 무의식에 저장된 감정들과 전쟁과 외세 지배를 겪지 않은 나라의 국민들의 무의식적 감정은 다르다. 

그리고 내가 조상들로부터 물려받은 무의식적 감정과 내 친구의 그것은 다르다. 


가장 가깝게는 우리는 부모로부터 감정을 물려받았다. 그래서 내 부모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조사하고 탐구하는 것은 나의 감정을 이해하는데 아주 중요한 작업이다.


어려서부터 내 아랫배에는 늘 슬픔이 찰랑거렸다. 몸 안에 지닌 채로 태어난 것 같은 그 슬픔은 나를 떠나는 법이 없었다. 아이들과 놀 때도 내 몸은 온전히 즐거움을 누리지 못했다. 내 몸 한 구석은 언제나 젖어 있었고, 나는 내가 이상한 아이라고 생각했었다. 


마흔이 넘어 엄마의 생애를 탐구하고 엄마의 고통을 알고 나서야 내 슬픔을 이해할 수 있었다. 나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자식을 잃은 그녀의 슬픔과 남편으로부터 버림받은 그녀의 외롭고 서러운 감정들과 함께 살았다. 내 몸은 엄마의 감정들 속에서 만들어졌다.



painted by Haewon





5. 세상은 나에게 말했다. 얘야, '캔디'처럼 살아야 사랑받는단다.


'외로워도 슬퍼도 나는 안 울어 참고 참고 또 참지 울긴 왜 울어 (중략) 웃어라 웃어라 웃어라 캔디야 울면은 바보다 캔디 캔디야'

나는 어린 시절 MBC에서 방영된 '캔디 캔디'라는 애니메이션을 보고 자란 세대이다. 당시 캔디가 방영되는 시간이 되면 친구들은 놀이를 멈추고 TV가 있는 집으로 몰려가곤 했다. 


나는 친구들과 달리 캔디를 좋아하지 않았다. 캔디를 보면 마음이 불편했다.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는 사람들의 응원과 사랑을 받는데,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나는 사랑받지 못하는 아이였다. 나도 캔디처럼 사랑받고 싶었다. 나는 캔디가 부러웠다.


나는 캔디처럼 되고 싶었다. 부모 없이 자랐지만 늘 명랑한 캔디처럼 내 상처를 숨기고 명랑한 아이로 살고 싶었다. 세상은 캔디 같은 아이를 사랑한다. 

얘야, 괴로워도 슬퍼도 울지 마. 울면 바보다. 울면 약한 거야. 울면 지는 거야.


캔디의 주제가는 감정을 바라보는 당시 세상의 시선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세상은 내게 말했다.

얘야, 사랑받는 아이가 되고 싶으면 외로움도 슬픔도 절대 드러내지 마라.


그때 그 시절 캔디 주제가를 흥얼거리면서 나는 나 자신에게 안도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래. 괜찮아. 나는 나쁜 아이가 아니야. 나는 외로워도 슬퍼도 울지 않는 캔디 같은 아이야. 어쩌면 나도 언젠가 캔디처럼 사랑받을 수 있을까?




6. 내가 나라고 믿었던 내 감정은 진짜가 아니었다


내 감정을 표면적으로 인식했던 젊은 시절에 나는 종종 앞서가는 남편의 뒷모습에 화가 났었다. 왜 나를 버리고 혼자 가냐고, 배려 없는 당신 때문에 화가 난다고 감정을 쏟아내곤 했다. 나는 남편을 향한 나의 화가 나를 배려하지 않는 남편 탓이라고 철석같이 믿었다. 


나는 내 감정을 잘 안다고 생각했다. 내 감정이 진짜라고 믿었다.  


남편과의 관계에서 느끼는 감정의 뿌리가 어린 시절 아버지와의 관계에서 해결되지 않은 감정이라는 사실을 처음 인식했을 때 나는 적잖은 충격을 받았다. 

무의식 속에 과거의 상한 뿌리를 숨겨둔 채 나는 현재의 관계에서 향기로운 꽃을 피우고 싶었던 거다. 


해소되지 않은 채 내 무의식에 저장된 과거의 감정들은 내 현재의 일상에 골골샅샅이 스며들어 있었다. 


시부모를 죽도록 미워하던 내 분노의 뿌리도 시부모가 아니었다. 그들 때문에 괴로운 감정이 새로 생긴 것이 아니라 이미 내 무의식 안에 있었던 감정들이 그들로 인해 표면으로 떠오른 것이었다.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무의식으로 밀어냈던 내 부모에 대한 분노가 그 뿌리였음을 인정해야 했을 때 나의 몸과 마음은 격렬하게 저항했고 안면 마비까지 겪어야 했다.


감정의 상한 뿌리를 하나씩 도려낼 때마다 나는 조금씩 감정으로부터 자유로워졌다.

지금도 나의 감정의 상한 뿌리 발견하기와 도려내기 작업은 계속 되고 있다. 

거짓과 가짜가 사라지면 고통도 사라진다. 조금씩 커지는 나의 자유를 사랑한다.


painted by Jessie Willcox Smith, Round the Ring of Roses







작가의 이전글 감정 이야기 2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