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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n 09. 2023

나는 무엇을 '나'라고 정의하는가 1

'나'는 기억의 합이다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감정을 분명히 알수록 지금 여기에 있는 것을 더 사랑하게 된다                                                                                 -스피노자




내가 '나'라고 정의하는 '자아'는 내 몸이 경험한 기억들로 만들어져 있다.

'나는 ~한 사람이야.'라는 자아정체성은 내가 과거에 경험한 주요한 사건들에 의해 형성되는 것이다.

특히 7세 이전에 일어난 사건들은 나의 정체성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나의 정체성을 형성한 주요 사건들



사건 1. 부모의 불화와 언니의 죽음 가운데에서 잉태되다.


나는 연년생 언니가 생후 8개월 만에 죽고, 부모의 심각한 불화 가운데에서 잉태되었다. 환영받지 못하는 아이였고 어쩌면 이혼을 생각하고 있었을 부모의 발목을 잡은 아이였다. 첫 아이를 잃은 엄마는 깊은 슬픔에 빠져 있었고 나는 엄마의 자궁 속에서 방치되었다.


아이가 잉태될 때 부모의 정서적 상태가 어떠했느냐는 아이의 평생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다. 모두가 기다린 아이였는지, 부모의 삶에 방해가 되는 아이였는지, 누구도 원치 않은 아이였는지를 탐구하는 것은 나 자신을 이해하는데 중요하다.


아이를 잉태한 엄마가 아이에게 줄 수 있는 것은 그녀의 남편에게서 받는 것이 전부이다. 나는 엄마의 슬픔과 분노와 외로움을 자궁 속에서부터 물려받았다.


태중에서 죽음의 충격과 슬픔을 겪고, 자궁 속에서도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고 방치되면서 내 몸에는 죽음과 버려짐의 공포와 슬픔이 장착되었다.




사건 2. "곧 죽을 것 같은 개구리 만한" 아이로 태어나다.


나는 누구의 축복도 기대도 없이, 상처투성이의 부모가 혈투를 벌이고 있는 전쟁터 속에서, 존재의 시작부터 환영받지 못한 '수치심'을 장기처럼 갖고 태어났다.

호흡조차 힘겨운 '개구리 만한' 아이로 태어났을 때도 나는 관심받지 못했다.

어쩌면 그 아이가 죽는 것이 어른들에게는 더 다행스러운 일이었을지도 모른다.

내 몸속에는 죽음과 버려짐의 공포, 그리고 슬픔이 피처럼 온몸을 흘러 다니고 있었다.



사건 3. 내가 가장 사랑하는 이들이 서로를 공격하고 미워하다


어린 시절부터 내 의지로 통제되지 않고 반복적으로 떠오르는 두 가지 이미지가 있었다. 그중 하나는 서너 살쯤으로 보이는 작은 아이의 등 뒤로 엄마와 아버지가 서로를 향해 악다구니를 지르며 싸우고 있는 장면이다. 아이는 버려질까 매달리듯 마루 끝의 차가운 쇠기둥을 붙잡은 채 알 수 없는 감정에 압도되어 있다.


어른이 되어서도 이 장면이 떠오를 때마다 나는 바람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결혼을 하고 세 아이의 엄마가 되었지만 나는 늘 쇠기둥에 묶여있는 아이 같았다.

수시로 바람처럼 연기처럼 소리 없이 사라지고 싶었다.

나는 뿌리 깊은 나무처럼 아이들 곁을 지켜주는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

다 버리고 홀로 사라지고 싶은 욕망과 싸우는 나쁜 엄마였다.




사건 4. 두 돌 무렵 엄마가 나를 떠나다.


아이들은 부모와의 이별을 자신의 잘못으로 버려졌다고 믿는다.

너무 어린 나이여서 엄마에 관한 어떤 기억도 나의 의식에는 남아 있지 않지만 내 몸과 무의식에는 '엄마에게도 사랑받지 못하는 나' '엄마에게조차 버려진 나'가 주홍 글씨처럼 새겨졌다.


엄마에게조차 버려진 나를 세상은 환영하지 않을 것이다. 나의 정체를 알면 누구도 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다. 나를 드러내면 안 돼. 나는 나의 수치심과 두려움을 감추기 위해 발랄함과 유능함, 그리고 강인함의 가면을 썼고 그 가면은 나의 정체성이 되었다.




사건 5. 모두 엄마에 관해 함구했다. 나도 묻지 못했다.


아버지의 집에서 엄마는 금기어였다. 어른들은 엄마의 흔적과 존재를 지우고 싶어했다. 엄마의 사진을 모두 없앴고 엄마에 대해 일절 함구했다. 엄마는 세상에 존재한 적 없는 사람이 되었다. 어른들은 엄마가 출생의 비밀과 병을 숨기고 아버지와 결혼을 했다고 생각했다. 엄마는 모두를 속이고 씻을 수 없는 상처를 남겨 불행으로 몰아 넣은 가해자였고 괴물이었다. 


나도 엄마를 지우며 살았다. 엄마의 얼굴도 이름도 몰랐지만 엄마에 대해 물을수도 없었다. 나는 엄마에 대해 아는 것이 없었다. 나는 나의 탄생 이야기를 잃어버렸다.


 '엄마'는 어떻게 아이에게 남겨져 아이의 일부가 되는가?

엄마는 그녀만의 고유한 이야기와 그녀가 남긴 감각으로 아이에게 전해진다.


엄마는 아무런 이야기도 내게 남기지 못했고 그녀를 기억하는 어른들도 엄마의 이야기를 내게 해주지 않았다.

인간은 이야기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한다. 엄마에 대해 아무런 이야기도 갖지 못한 나는 내가 누구인지 이해 할수 없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나를 설명할 수 없었다. 


충분히 좋은 '엄마'는 따뜻하게 안아주던 감촉, 나를 부르던 목소리, 엄마가 만들던 음식 냄새 같은 감각으로 아이의 몸에 남아 평생 아이를 지켜준다. 나의 엄마는 천둥치는 밤 달려가 안길 품이 없는 두려움, 얼굴도 없이 내 안을 떠도는 오싹함, 나를 불러줄 목소리도 없는 초라함과 외로움, 엄마밥을 먹어 본 적 없는 허전함으로 내 몸에 남았다. 




사건 6. 아버지의 불행을 돌보다.


엄마가 떠나고 아버지는 깊은 충격으로 일 년이 넘도록 일상을 회복하지 못했다.

새벽에 배낭을 메고 집을 나가서 하루종일 산속을 헤매다 해가 저물면 버려진 나무들을 배낭에 잔뜩 지고 집으로 돌아왔다. 아이들은 말보다 분위기로 상황을 읽어내고 부모의 감정에 책임을 느낀다. 나는 아버지의 불행에 책임감을 느끼는 아이가 되어갔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까지 내 삶의 중심은 아버지의 감정이었다. 나는 아버지의 행복과 가정의 평화를 위해 나의 욕구와 감정을 버리는 기특한 맏딸이 되어야만 했다.

나의 욕구와 감정은 쓸모없는 불필요한 것이었다. 나는 누가 봐도 '기특하고 대견한 아이'였고 '어른스러운 맏딸'이었지만 정작 나 자신이 누구인지는 알 수 없는 사람이 되어갔다.



사건 7. 홀로 불구덩이에 빠지다


부모가 없는 집에서 나는 할머니와 어린 고모에게 생존을 의지했다.

4살 무렵 고모를 따라갔던 어느 집에서 심각한 화상을 입었다.

혼자 낯선 집 안을 돌아다니다가 부엌 연탄아궁이에 다리가 빠졌고 뼈가 드러나도록 살이 녹아내렸다. 의사는 걸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진단했지만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다리의 절반이 흉터로 뒤덮였고 나는 버려진 아이의 상징 같은 커다란 흉터를 가지게 되었다. 나는 수치스러운 내 정체를 감추듯 한여름에도 다리를 다 덮는 길고 두꺼운 타이즈를 신고 다녔다. 흉터로 뒤덮인 무릎을 누구에게도 들키고 싶지 않았다. 내가 얼마나 보잘것없고 비참한 존재인지는 깊숙이 덮어두어야만 했다.


나는 내 몸이 싫었다. 관심도 돌봄도 받지 못한 내 몸은 수치스럽고 감추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나는 남편에게조차 오랫동안 다리를 감추며 살았다. 남편의 시선이 내 다리에 닿으면 수치심에 화를 냈다.


닫힌 공간에서 불구덩이에 빠진 기억은 오랫동안 내 의식에서 지워졌었다.

우리의 뇌는 생존하기 위해 감당하기 힘든 기억을 스스로 지운다.  고통스러운 불구덩이의 기억은 의식에서는 삭제되었지만 몸과 무의식에 고스란히 남아서 수시로 내 삶을 뒤흔들었다.


사고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일상의 사소한 것들이 나를 그 불구덩이 속으로 순식간에  몰아넣었다. 사고에 대한 불안 때문에 나 자신과 아이들을 과도하게 통제했고, 아무리 통제해도 불안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건 8 . 아버지가 결혼을 하다.


국민학교에 입학할 무렵 아버지가 나 몰래 결혼을 했다. 나는 아버지의 결혼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어느 날 아버지가 사라졌고 며칠간 돌아오지 않았다. 나는 아버지가 나를 버렸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불안하고 두려웠지만 내색할 수 없었다. 고통스러운 나의 감정은 한 번도 공감되거나 수용된 적이 없었다. 아무도 내 감정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내 감정이 싫었다.


아버지가 사라진 며칠 동안 나는 아버지의 방 앞에 엎드려 그림을 그렸다.

아버지가 어디 갔는지 묻지도 않고 울지도 않고 아무 일 없는 척하며 아버지를 기다렸다. 내가 착한 아이가 되면 아버지가 돌아올지도 몰라.

아버지마저 잃을까 봐 납작하게 엎드려 있었던 차가운 마룻바닥의 기억을 내 몸은 오랫동안 잊지 못했다.


나는 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와 볼 수 있도록 마루 위에 지워지지 않는 잉크로 편지를 남겼다. '아버지, 빨리 돌아오세요.'


아버지가 내 편지를 읽었는지는 알 수 없다.

아버지가 새엄마와 돌아왔을 때 나는 아무것도 묻지 못했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혼자서 조용히 엄마를 땅 속 깊이 묻고, 엄마를 기다리던 나도 묻었다.


그리고 나는 더 착하고 쓸모 있는 딸이 되었다. 없으면 안 되는 딸이 되려고 안간힘을 쓰며 살았다.

쓸모 있는 사람이 되면 버려지지 않을 거야. 어쩌면 아버지가 나를 봐줄지도 몰라. 아버지가 나를 인정해 줄지도 몰라. 열심히 노력해야 해. 쉬지 마. 놀지 마. 세상과 아버지의 기준에 맞는 가치 있는 인간이 되어야만 해.






어린 시절 나에게 일어났던 중요한 사건들은 나 자신과 세상에 대한 나의 신념과 감정과 태도를 만들었다.

내가 감당하기에 너무 고통스러운 기억들은 의식에서 지워졌지만, 그 사건들로 인해 일어난 감정과 감각들은 내 몸과 무의식에 더 선명하게 새겨졌다.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극심한 고통 속에 던져졌을 때 그 감정과 감각들은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려주는 나침반이 되었다.

내가 어디서 왔는지를 알아야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 수 있는 법이다

내가 기억을 완전히 잃어버려 나를 찾지 못하는 일이 없도록 내 몸과 무의식이 나를 돌보고 있었다.


당신은 7세 이전에 어떤 사건을 겪었는가?

7세 이전에 당신의 부모에게는 어떤 일이 있었는가?




에밀 놀데(1867-1956), 가면(Mask), 19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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