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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원 Jun 16. 2023

내 몸은 왜 그토록 음식과 초콜릿을 탐닉했을까

의지로 멈출 수 없는 몸의 집요한 탐닉에 관하여




목구멍까지 음식을 채워 넣어야 평온해지는 아이


어린 시절엔 밤마다 배가 고팠다. 고봉으로 담긴 저녁밥을 남김없이 다 비우고도, 집 안의 불이 모두 꺼지고 적막이 찾아오면 견디기 힘든 허기가 밀려왔다.

허기는 언제나 온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것 같은 공허함과 알 수 없는 불안과 함께 찾아왔다. 아버지와 새어머니 몰래 부엌에서 가져온 찬 밥과 김치, 생무와 생 고구마 등으로 목구멍 아래까지 배를 채우면 숭숭 뚫렸던 몸의 구멍들이 꽉 채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가득 찬 몸의 느낌 때문에 불안과 공허함이 잠시 잊히면 스르르 얕은 잠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밤이 깊어지면 불편한 속을 견디지 못하고 일어나 캄캄한 수채구멍 앞에 쪼그려 앉아 먹은 것을 다 토해내고서야 잠이 들었다. 


대학에 입학하면서 낯선 서울 생활이 시작되었을 때 음식에 대한 탐닉이 폭발적으로 일어났다. 나는 학교 생활에 잘 적응하지 못했고 결석을 밥 먹듯이 했다. 룸 메이트가 학교에 가고 없는 기숙사 방에서 커튼을 닫고, 목구멍까지 차오르도록 마요네즈를 바른 식빵을 꾸역꾸역 구멍 뚫린 몸속에 쟁여 넣었다. 몸이 빵으로 가득 차면 낯선 도시의 두려움도, 버려진 두려움도 , 혼자라는 외로움도, 미래가 없는 절망도 다 잊혔다.




인적 없는 곳에 숨어 초콜릿을 녹여 먹으며 외로움을 달래는 아이 


어린 시절부터 나는 초콜릿에 집착했었다. 용돈을 모아 초콜릿을 사는데 모두 썼고 용돈이 떨어지면 아버지 가게의 돈통에서 돈을 훔쳐서 초콜릿을 샀다. 초콜릿을 손에 쥐면 날아갈 듯한 걸음으로 나만 아는 인적 없는 골목으로 찾아들어갔다. 그리고 동그랗게 몸을 말고 앉아 의식을 치르듯 오래도록 초콜릿을 먹었다.  나는 언제나 초콜릿을 혀 위에 놓고 젖을 빨듯 천천히 녹여 먹었다. 한 번도 씹어 먹은 적이 없었다. 


'입천장과 혓바닥 사이에서 몽글한 살점이 부드럽게 녹아내리고, 언젠가 잔뜩 머금은 적이 있을 법한 그리운 살의 감촉이 입안을 가득 채웠다. 잠에서 문득 깨어나 자지러지게 울다가 입 안 가득 물리는 엄마의 부드러운 가슴과 달큼한 젖에  평온해지는 아기의 몸처럼 내 몸도 초콜릿의 육즙을 따라 평온해졌다.'

                                                   - <엄마 나의 엄마 부디 잘 가요> 중 '초콜릿'에서 발췌-






무의식적 습관을 의식하기 시작하다


나는 어른이 되어서도 오랫동안 음식과 초콜릿을 향한 탐닉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없고. 온전히 채워지지도 않고, 끝나는 법도 없는 탐닉이었으니 음식이나 초콜릿과는 거의 중독적인 관계를 맺고 있었다. 


불안이나 두려움, 공허함이나 무력감 같은 부정적인 감정이 올라올 때마다 내 몸은 음식이나 초콜릿을 찾아 움직였다. 목마를 때 물을 찾는 것처럼 괴로우면 음식과 초콜릿을 찾았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뭐든 닥치는 대로 음식을 몸속에 욱여넣었고 비상식량처럼 초콜릿 도시락을 언제나 가방에 넣어 다녔다. 가방 속에는 허기를 달래 줄 음식도 초콜릿과 나란히 들어 있었다. 그것들이 손 닿는 곳에 없으면 불안하고 초조했다.


나는 내가 왜 그렇게 음식과 초콜릿을 탐닉하는지 몰랐다. 친구들에 비해 음식을 많이 먹고, 먹는 것을 유난히 좋아하며, 초콜릿을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다. 삼 심대 중반의 세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도 나는 음식과 초콜릿을 향한 내 욕망을 이해하지 못했다.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 자신을 탐구하면서 음식과 초콜릿을 향한 나의 추구가 내 일상의 평온을 방해한다는 것을 조금씩 알아차리기 시작했고 그 욕망뒤에 감춰진 내 이야기가 궁금해졌다.


무의식적으로 일어나는 나의 탐닉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나의 생각이나 지식에 질문을 던지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부정적 감정으로부터 도피하려고 음식과 초콜릿에 빠져드는 습관은 나의 생각과 의지에 의해 형성되거나 사라지는 것이 아니었다. 내가 의지로는 통재할 수 없는 탐닉의 습관은 내 몸이 여러 사건들을 경험하면서 고통은 줄이고 긍정적인 느낌과 감정을 추구하면서 고착된 것이었다.


내 머리가 아닌 내 몸에 집중하고 내 몸에게 물어야만 했다. 몸만이 답을 알고 있었다.




우리의 의식은 오만가지 생각에 머물러 있느라 몸을 떠나 있다


나의 의식은 하루의 대부분을 몸을 떠나 있었다. 과거의 상처와 미래의 불안이 만들어내는 오만가지 생각에 머물러 있느라 몸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었다. 

무의식 속에 내버려 두었던 몸을 의식하고, 의식이 몸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나 자신을 관리하는 것이 수월해졌다. 나 자신과 더 연결되고 친밀해진 느낌이 들고 감정에 압도되거나 매몰되는 경우도 조금씩  줄어들었다. 

의식이 습관적으로 생각을 쫓아갈 때마다 다시 몸에 집중하는 연습을 멈추지 않으면서 음식과 초콜릿의 의미를 묻는 질문을 몸 어딘가에 늘 품고 다녔다. 




우리 몸은 과거의 고통이 저장된 창고이다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몸으로 살아간다. 우리의 정체성은 생각이나 지식이나 의지가 아닌 몸의 경험에 의해 형성된다.  우리 몸에는 어린 시절 겪은 충격적인 사건의 기억이나 상처가 된 경험들이 저장되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몸을 피해 생각을 좇아 다니고 의지로 몸을 극복하려고 한다. 


우리 몸은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들이 쌓여 있는 기억의 저장고이다. 그래서 몸에 집중하고 몸을 의식하는 것이 어렵다. 우리는 아픈 과거를 느끼게 하는 자신의 몸을 혐오하고 폄하하고 불신하고 방치하고 학대한다. 수치스럽고 괴로운 과거의 기억들이 폐기물처럼 쌓여 있는 몸으로부터 우리는 자주 도망치고 싶어 한다. 몸속에 저장된 상처를 건드리는 자극이 외부로부터 주어지면 부정적인 느낌을 감소시키고 잊게 만드는 무언가를 찾아간다.




탐닉은 결핍의 반작용이다


한 아이가 자신의 타고난 잠재력을 충분히 펼치며 살아가는 건강한 어른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충족되어야 하는 여러 가지 욕구들이 있다. 인생 초기에 삶에서 필수적인 것들이 충분히 채워지지 않을 때 우리는 결핍된 것을 평생 무의식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그렇다면 나의 어린 시절에 충분히 채워지지 않은 것은 무엇이었을까? 음식과 초콜릿이 결핍되어서 그것들을 탐닉하게 된 것일까? 나에게 음식과 초콜릿은 무엇이었을까?


 내가 갈망한 것은 음식과 초콜릿이 아니라 그것들이 제공하는 기분 좋은 느낌이었다. 나는 고통스러운 느낌을 회피하기 위해 음식으로 가득 찬 몸의 감각. 혓바닥과 입천장 사이에서 녹아내리고 목으로 넘어가는 초콜릿의 느낌 속으로 도망친 것이었다.


괴로운 느낌과 감정이 올라올 때 사람들은 각자 도망치는 곳이 있다. 음식이나 초콜릿, 책이나 일, 사람이나 운동, 기도나 봉사, 공부나 잠, 게임이나 쇼핑 등 수많은 도피처들이 존재한다. 당신은 어디로 도망치는가? 




우리가 끈질기게 도망치는 이유


도망치는 곳이 다를 뿐 우리를 도망치게 하는 이유는 모두 같다.

부정적인 느낌이나 감정들(외로움, 불안, 공허함, 무료함, 막막함, 우울, 무기력함 등등)을 느낄 때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떠올리는 것은  '단절과 버려짐'의 기억이다. 

우리의 몸속에 저장된 단절되고 버려졌던 고통스러운 사건의 느낌들이 무의식적으로 소환되는 것이다. 


부정적인 느낌과 감정 = 단절과 버려짐

긍정적인 느낌과 감정 = 연결과 사랑받음

이라는 공식이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다.


우리를 그토록 고통스럽게 했던 과거가 부정적 느낌이나 감정으로 소환되면 우리는 과거에 그랬던 것처럼 전력을 다해 도망친다. 내 몸은 무의식적으로 '연결과 사랑'의 느낌을 주는 나만의 피난처로 달려간다.


내가 음식과 초콜릿을 통해 추구한 것은 단절과 버려짐의 느낌을 둔화시키고 연결과 사랑의 느낌으로 몸을 채우는 것이었다. 배를 가득 채우면서 느껴지는 만족스럽고 든든하고 충분한 느낌과 초콜릿이 주는 입안을 가득 채우는 몽글몽글하고 부드러운 느낌이 연결되고 사랑받는 존재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결핍을 채우려는 무의식적인 시도는 의식의 수면 위로 끌어올려지기 전에는 절대 성공하지 못한다. 무의식적인 도피는 끝없이 반복될 뿐 결코 끝나지 않는다. 그래서 의식화되지 않은 무의식적 결핍과 탐닉은 팔자와 운명이 되기도 하다. 


내가 현실 속에서 반복하던 무의식적 습관들을 햇볕아래 내어놓고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기 시작하면서 구멍 숭숭 뚫린 나의 몸은 외부가 아닌 나로부터의 사랑으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새로운 관계를 시작하다


무위식의 내용을 의식의 수준으로 끌어올려 이해하는 것만으로도 무의식적 탐닉을 조절하기가 수월해진다. 초콜릿에 대한 나의 탐닉이 단절과 버려짐의 감정으로부터 도망치는 내 존재의 몸부림이라는 것을 이해하는 순간 나는 더 이상 초콜릿 도시락이 필요 없게 되었다. 초콜릿 없이 외출을 해도 전혀 불안하지 않았다. 그리고 초콜릿을 의식적 욕구에 따라 씹어먹기도 하고 녹여먹기도 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침내 엄마젖으로서의 초콜릿과 분리된 것이다. 나는 초콜릿의 족쇄로부터 벗어났다. 


음식과 완전히 새로운 관계를 맺는 데는 조금 더 긴 시간이 필요했다. 수년의 노력 끝에 나는 음식의 감옥으로부터도 걸어 나왔다. 이제는 배고픔과 공허함을 구분하고 각각을 적절하고 충분하게 채울 수 있는 힘을 가지게 되었다. 수년의 시간 동안 나는 몸의 이야기에 온전히 귀 기울이고 신뢰하며 몸의 의사를 무엇보다 존중하며 살았다. 그리고 여전히 나에게 말을 건네는 사랑스러운 몸과 함께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우리는 몸으로 살아간다. 그래서 우리가 경험한 충격적인 사건이나 쓰라린 상처들은 모두 몸에 저장된다. 몸을 혐오하고 몸을 방치하고 몸의 이야기에 귀를 막고서는 나의 상처도 나의 고통도 이해할 수 없다. 

몸을 껴안는 것은 나의 아픈 과거를 껴안는 것이다. 이제 나의 몸에 귀를 기울여보자. 내 몸의 감각, 호흡, 움직임-그 모든 것에 나의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들어있다. 과거를 사랑하게 되면 현재와 미래는 저절로 사랑스러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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