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해원 Aug 21. 2023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게 되는 어떤 여정 1

서사적 자아 구성하기-우리는 이야기로 자신을 이해한다






내가 누구인지 모르겠어요나를 잃어버린 것 같아요내 안에 내가 없는 것 같아요.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고통을 겪고 있을 때 우리는 결코 "나는 내가 좋아, 나는 내 인생을 사랑해."라고 말할 수 없다. 나를 잃어버렸고 내가 없는데 어떻게 나를 좋아하고 사랑할 수 있겠는가.     


우리는 무엇을 나라고 생각하고 느끼는 걸까? 

우리가 '나'라고 부르는 자아정체성은 무엇으로 만들어지는 것일까?

자아정체성의 내용을 알아야 그것을 찾을 수도 있을 것이다.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모른다면 그것을 찾을 방법도 없다.

  

우리의 자아 정체성은 나에 대한 인식과 나에 대한 느낌으로 구성된다.     

자아정체성=나에 대한 이야기 + 나에 대한 감각(느낌, 감정)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싶다면, 내 안에 내가 없는 것 같은 고통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내 이야기를 찾고 내 감각을 탐구하는 여정을 시작해야 한다.


  




나를 찾으려면 우선 내 이야기가 필요하다. 


우리는 언어로 자신과 세상을 이해하는 존재들이다.          

언어는 단순한 의사소통의 도구를 넘어서서 우리의 생각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며 우리의 존재 형태를 규정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나를 이야기로 표현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자신의 과거를 필연적으로 대면하게 된다. 깊고 세심하게 내 과거를 바라보고 나면 이전과는 다른 시선으로 자신을 보게 된다. 어느 시인이 노래했듯이 우리의 인생도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나의 이야기는 고립되었던 나의 현재를 과거와 연결시켜 준다. 나의 이야기를 찾고 표현하다 보면 지금의 내가 고립된 하나의 점이 아닌 강물처럼 흐르는 거대한 이야기의 일부분임을 알게 된다.   

        

나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내가 어떻게 살아왔고 지금 어디에 있는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어디서 왔고 어떻게 여기까지 왔는지를 알게 되면 어디로 가야 할지도 알게 된다.    

 

내가 누구인지 알 수 없는 혼란을 경험하고 있다면  나는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스스로 이해할 수 있는 자신만의 이야기가 나에게 있는가를 확인해 볼 일이다.   



                            


이야기는 사건으로 구성된다 

         

나의 이야기를 구성하는 재료는 과거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에 대한 기억이다. 

위인전이나 누군가의 일대기를 읽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를 설명하고 그를 이해하기 위해 쓰인 이야기는 그 사람이 경험했던 중요한 사건들의 모음이다. 한 사람이 경험한 충격적이고 중요한 사건들이 그의 정체성을 구성하는 것이다.


당신은 어떤 기억들을 가지고 있는가? 원하지 않았는데 수시로  떠올라 나를 괴롭히는 장면들이 있는가?

당신이 가진 기억들이 당신의 현재와 이어지는가?


만약 지금 내가 가진 기억들로는 내가 이해되지 않는다면 기억들이 파편처럼 흩어져서 하나의 이야기로 만들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방에 흩어진 구슬을 하나씩 주워 순서대로 나란히 실에 꿰기 전까지 우리는 온전한 모양의 목걸이를 가질 수 없다.    

      



나의 기억은 왜 파편처럼 흩어졌을까?


우리의 뇌는 우리를 보호하기 위해 감당하기 힘든 고통스러운 기억을 의식에서 지워버린다. 그러나 의식에서 지워진다고 기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의식에서 지워질 뿐 사건 속에서 일어난 감정과 느낌은 우리의 몸과 무의식에 고스란히 남는다. 이야기는 사라지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증상(불안, 우울 등과 같은 감정과 불편한 몸의 느낌)만 남게 되는 것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내가 경험한 사건들을 이분법적으로 구분하여 버리거나 집착하기 때문이다. 나의 에고는 내 삶을 완전하게 만들고 싶어 한다. 그래서 좋은 기억은 내 것으로 붙잡으려 하고 부정적 기억은 차단하거나 지워버리고 싶어 한다.  


선과 악, 옳고 그름, 성공과 실패 같은 이분법으로 나에게 일어난 일들에 집착하거나 밀어낸다면 우리는 결코 자신을 온전히 긍정하고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부정적 기억들을 회피하고 밀어낼수록 고통은 커진다. 


내가 어떻게 지금의 내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를 가지기 위해서는 내 기억에 대한 이분법적 분류를 내려놓고 사건을 새롭게 보아야 한다. 좋은 기억에만 집착하고 부정적인 기억은 버린다면 우리는 빈 구멍으로 가득해서 어떤 그림인지 알 수 없는 퍼즐판을 가지게 될 것이다.  


                             


내 인생의 모든 순간을 사랑하기 위해서 좋은 일로만 가득 찬 인생이 필요한 것은 아니다.  

        

내가 나를 온전히 사랑하기 위해서는 나의 모든 과거를 긍정해야 한다. 

내 과거의 모든 순간을 긍정한다는 것은 과거의 모든 순간을 미화하자는 것이 아니며, 다 좋은 일이었고 다 선한 일이었다고 자신을 속이자는 것도 아니다.    

       

그때의 나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그래, 그래서 내가 그랬구나. 그것이 나의 최선이었구나. 그때의 나로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구나.

그렇게 진심으로 과거 모든 순간의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남들이 과거의 나를 비난해도 나 자신은 그럴 수밖에 없었던 그때의 나를 이해하고 수용하는 것이다.  

         



형사가 사건을 탐구하듯 나의 이야기를 탐구하라


탄생부터 현재까지 나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을 하나씩 깊이 탐구하다 보면 그때 내가 그럴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자연스럽게 이해하게 된다. 과거의 나를 비난하고 수치스러워하는 것은, 보이는 것 아래의 진짜 내 이야기를 외면하고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으로 판결해 버리기 때문이다. 


내 내면의 이야기에는 귀를 막고 '나는 죄인이다. 나는 버려졌다. 나는 실패했다. 나는 수치스런 존재다. 나는 멍청이다. 나는 보잘것 없다...' 그렇게 스스로 선고를 내리는 것이다.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라는 유명한 이야기가 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프로크루스테스라는 인물은 엄청나게 힘이 센 거인 악당이다. 그의 집에는 철로 만든 침대가 있는데 지나가는 행인을 잡아다가 침대에 눕히고 행인의 키가 침대보다 크면 큰 만큼 잘라서 죽이고 작으면 침대에 맞춰 억지로 늘려서 죽였다고 한다. 타인의 시선과 세상의 기준으로 나를 평가하고 판단 하는 것은 내가 자 자신을 프로크루테스의 침대에 눕히고 자르거나 늘이는 것과 다르지 않다.  


내 삶의 어떤 순간도 단순한 흑과 백, 옳고 그름, 선함과 악함으로 판단할 수 없다. 그 순간은 아무런 사연 없이 하늘에서 뚝 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생각과 감정 그리고 선택과 행위에는 그 사람만의 고유한 이야기가 들어있다. 어쩌면 그의 할아버지 적부터 시작된 이야기가 숨어있을 수도 있다. 

    

나에게 일어난 사건을 단순한 이분법으로 판단해 버리면 그 사건은 이야기의 일부분이 되지 못하고 닫히고 분리된 점으로 남게 된다. 이야기는 이어져 흘러야 한다. 그래야 그 이야기 위로 내 자아가 유유하게 흐를 수 있다.    




자아회복여정의 시작 : 나의 이야기를 발굴하고 모아서, 탐구하고 표현하라.   


 


                                       그림 1. (굳이 그려 본) 자아정체성의 구조

작가의 이전글 모리(Mori)에게 희망을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