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파트 정자에 이른 아침부터 자리 잡고 있는 할머니들. 아 저렇게 늙고 싶다. 내 인생의 롤모델이다. 출근할 때 그 앞에서 마을버스를 기다리고 있노라면, 정자에서 옥수수를 나눠먹는 할머니들이 퍽 부럽다. 나도 얼른 늙어 저 틈에 끼어서 손주 자랑 하는 할머니가 되고 싶다.
도심 속 할머니들의 아지트, 아파트 정자. 그 공간은 바쁘고 치열한 도시와는 이상하게 동떨어진 동화같은 공간이다. 바빠서 보통 그냥 지나치는 정자에 앉아, 하루종일 사람 구경 하고 시시콜콜한 얘기를 나누시는 할머니들. 아 내게도 저런 평화의 시간이 올까. 내 노년도 저리 행복할 수 있을까.
이 동네 사시면 의식주 걱정은 없으신 분들이고, 자가면 퍼펙트한 노년이고, 자식과 함께 살아도 성공한 인생이다. 요즘 너도 나도 같이 살기 싫어하는 세상이니. 생활비 걱정없이 정자에서 여가 시간을 보내려면 노후자금은 얼마가 필요할까. 내 처지와 퍽 비교가 된다.
‘우리 늙어서 폐지는 줍지 말자’
치솟는 집값에, 쥐꼬리만한 월급에 문득 세상이 두려워 친구와 이런 얘기를 주고 받은 적 있다. 가족 드라마에 나오는 할머니처럼, 그저 안방에서 티비나 보고 친구들과 한과나 나눠먹는 노후가 얼마나 이루기 힘든것인가.
물론 노년에도 자의로 일을 하면 즐겁다. 자의로 폐지를 줍는다면 것도 즐거울거다. 폐지 줍는 분들 비하 의도가 전혀없다. 하지만 타의로 그 나이까지 일을 해야한다면 얼마나 인생이 고될까 싶다.
자금적 풍요도 풍요지만, 할머니들의 단단한 상처가 부럽다. 내가 저 나이까지 가려면 얼마나 많은 상처를 받아야 완성이 될까, 얼마나 많은 포기를, 타인에게 얼마나 더 상처를 받아야 인생의 노년에 도달할 수 있을까. 노년에 도달하면 적어도 젊은 시절보단 상처 받는 일이 덜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하면 너무 풋내어린 시선인가.
멀리서보면 희극, 가까이보면 삶은 전쟁이라고 했던가, 물론 할머니들의 현재 삶에도 고난이 있으시겠지. 며느리 눈치 보여 더운 날에도 굳이 정자에 나와 시간을 때우시는 할머니도, 연락 한 통도 없는 자식이 보고싶어, 외로움에 정자에서 시간을 때우시는 분들도 계시겠지.
할머니에게도 고난이 있단 걸 알면서도 왜 난 빨리 할머니가 되고 싶은걸까. 차라리 기회가 더 많은 교복 입은 고등학생을 부러워 해야 하는 게 정상 아닐까. 아마 요즘 세상에 젊다는 건 기회가 아닌, 상처 받을 일이 더 많다는 걸 알기 때문이겠지.
34세, 앞으로 얼마나 더 상처받고 무너질 일이 있을까, 그냥 지금처럼 대단하지 않게 평온하게만 살았으면 좋겠다, 이것도 너무 대단한 사치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