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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호태윤 May 16. 2021

나의 한정승인 연대기 3

한정승인 청산 절차_세금은 내셔야 합니다.

Q. 한정승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제 다 끝난 건가요?

A. 아니오. 이제 시작입니다. 청산 절차 진행하셔야죠.


 우리가 상속 관련해서 상담을 받은 법무사는 시부모님이 아시던 분으로 부동산 관련해서 종종 업무 처리를 도와주시던 분이었다. 상속을 어찌 처리하면 좋을지 물어봤을 때 '한 분은 한정 승인하고 나머지분들은 상속포기를 하면 됩니다', '저는 한정승인 심판청구절차만 해드립니다. 청산은 은행에서 알아서 경매로 다 가져갈 거예요'라는 설명이 전부였고 그 말만 듣고 한정승인을 진행했다. 필요하다는 서류를 열심히 준비해 와서 드렸고 시간이 지나 한정승인 심판이 완료되었다고 전달받았다. 


 그러면 이제 경매가 되길 기다리면 되나 했더니 아니란다. 신문공고도 해야 하고 채권신고서도 발송해야 한다고 하셨다. 그게 뭐죠? 그것도 해주시면 안 되나요? 청산절차는 안 해준단다. 심판 나면 우리가 딱히 할 일이 없는 줄 알았는데 이것저것 해야 한다니 당황스러웠지만 청구절차까지만 해주시기로 했으니 우리는 새로운 법무사를 알아봐야 했다. 이왕이면 서울 쪽 법무사가 좋을 것 같아서 알아봤는데 친절하게 상담을 시작하다가 우리의 심판 본을 보면 다들 '왜 한정승인을 했어요?'라는 반응이 돌아왔다. 


 우리는 일부 예금과 보험 해지 환급금을 제외하고 재산의 대부분이 땅이었는데 이런 시골 땅들은 경매로 잘 나가지도 않고 경매로 처리하면 경매비용도 들고 양도세, 가산세 등등 처리에 드는 세금들도 고스란히 나온다는 것이다. 게다가 우리가 가진 토지는 대부분 일부 지분으로 들어가 있어서 더더욱 경매로 나갔을 때 잘 팔릴지 모르겠다며 이런 경우는 보통 일가친척이 다 같이 한 번에 상속포기를 하는 데 왜 한정승인을 진행했냐며 걱정(?)과 함께 수임을 포기하는 분도 계시고 상속재산 파산을 추천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Q. 한정승인 심판을 받았습니다. 취소하고 상속 포기하면 안 되나요?

 A. 아니오. 취소할 수 없습니다. 청산 절차 진행하시던지 상속재산 파산 신청하세요.


 아니, 내가 땅 팔아서 쓰겠단 게 아니라 빚 갚는 건데 세금을 떼가? 환장할 노릇이었다. 그래서 찾아보니 20년 1월에 관련 기사가 떡 있었다. 한 할머니가 동생이 사망 후 한정승인을 했다가 동생 명의 5개의 부동산에 대해 경매가 진행돼 부동산이 낙찰되어 채권자들이 낙찰 대금을 나눠 가졌는데, 그 뒤 관할 세무서에서 할머니에게 3억 3천에 달하는 양도소득세를 내라고 납부 고지를 하였고, 양도세 고지 사실을 모르는 상태에서 1년 이상 양도세를 체납한 할머니의 주택과 토지를 압류해버렸단 거다. 맙소사! 세상에 이런 일이! 


 할머니 측은 당연히 주택과 토지에 대한 압류처분을 취소하라는 소송과 함께 조세심판원에 압류 처분을 취소해달라는 행정심판을 청구했고, 조세심판원은 할머니 재산에 압류 등 체납처분을 한 것은 위법 또는 부당하다고 판단했고 이에 따라 관할 세무서는 압류등기를 말소했다. “상속인이 한정승인을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실질적으로 상속받은 재산의 범위를 초과하여 상속으로 인한 채무를 부담하게 되는 결과가 발생하게 되어 한정승인의 취지에 반한다”는 것이 조세심판원 판단이었다.


 놀랍게도 그동안 양도세 같은 세금은 채무와 별개라며 한정승인받은 상속인들에게 관행적으로 압류 등 체납절차를 밟았다고 한다. 성실하게 빚 갚겠다는 사람들에게 너무한 거 아닙니까!?라는 소리가 절로 나왔다. 그래도 할머니의 사례가 우리에게 작은 희망이 되었다. 우리도 양도세가 나오면 행정심판 청구를 해야겠구나 하는 작은 희망. 그렇지만 그렇게 심판 청구를 하는 것도 우리에게는 큰 부담이었다. 일종의 소송 아니야? 만에 하나 지면? 그러면 우리 원래 재산들 다 압류당하는 거야? 우리는 양도세를 납부할 재산이 없는데 그러면 신용불량자 되는 건가? 법이라는 것은 우리에게 너무 어렵고 먼 존재였기에 덜컥 겁부터 났고 이런 설명을 자세히 해주지 않은 법무사에 대한 원망이 무럭무럭 샘솟았다. 하루에도 몇 번씩 울컥울컥 치밀어 오르는 갈 곳 없는 분노에 우리 모두 피폐해져 갔다. 


 다행히 청산절차를 도와주기로 한 새로운 법무사를 만나서 일단 신문공고와 채권신고 최고서 발송부터 하기로 했다. 먼저 신문공고란 심판 결정문을 받으면 5일 이내로 관할 지원장이 지정한 신문에 공고를 하는 절차이다. 쉽게 말하면 '우리 한정승인받아서 빚 청산합니다! 우리에게 채무가 있으시면 나오세요!'라는 광고를 하는 것이다. 이것을 왜 해야 하냐면 우리가 채무를 다 갚고 이제 돈이 안 남은 상태에서 뒤늦게 나도 너희에게 받을 게 있는데 왜 나는 안 줘? 하며 청산절차에 참여하지 못한 채권자가 나타나 배상 소송을 청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내 생전 처음 하는 광고가 이런 광고라니. 물론 당연히 신문공고 비용도 발생했다. 그리고 채권신고 최고서는 우리가 아는 채권자들에게 내용증명을 보내는 것이다. 개별적으로 채권을 신고하라고 독촉하기 위한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문제가 생겼을 때 상속인의 고유재산으로 발생된 손해에 대하여 배상해 주어야 한다고 한다. 


 한정승인 청산을 진행하기 위한 첫 발자국부터 '양도세 폭탄 맞을 수 있다', '제대로 안 하면 고유재산으로 손해 배상할 수 있다'라는 두 가지 정보를 알게 되었다. 시작부터 암울했지만 이제 와서 포기할 수도 없다 하니 한정승인을 선택한 스스로를 원망할 수밖에 없었다. 


* '한정승인'의 과정이나 절차는 상속 재산이나 상황에 따라서 기간이나 비용이 다 다릅니다. 제 글은 저의 경우에 초점을 맞춰 작성되었습니다.


* 심적으로 지친 상태에서 상속문제를 처리하면서 겪은 일과 감정을 작성했기에 관련 기관이나 전문가분들에 대한 불평이 다소 포함되어 있습니다. 현재는 그분들은 절차대로 했으며 제가 삐뚤게 생각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으나 제 심정의 변화들을 솔직히 표현하기 위해 당시 심정을 그대로 작성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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