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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무 Nov 20. 2020

기억하기 어려운 일들

할머니의 뒤꽁무니만 기억하는 음식

'과줄'- 한과의 북한말. 강정, 다식, 약과, 정과 따위를 통틀어 이르는 말

네이버에 나오는 정의다.

나는 어려서 과줄이라는 음식을 해마다 먹었다.

문맹이시던 할머니의 손을 따라 빚어진 그 음식에 레시피 따윈 존재하지 않는다.

정월 명절이 다가오면 내 덩치의 몇 배가 되는 무쇠솟앞에서 내키 만한 주걱을 저으며 조청을 만드시던 할머니의 모습이 떠오른다. 달디 단내가 온 집안을 뒤덮고도 한나절 이상 되어야 조청 만들기는 끝이 난다.

그러면 이튿날 할머니는 꿀과 밀가루와 기름을 들고 분주히 오가시다가 반죽을 하여 있는 힘껏 밀며 방바닥에 깨끗한 한지를 깔고, 지금 말로 하자면 숙성을 시키신 듯하다.

아무튼 어린 내 기억 속의 그 일들은 꽤 여러 날에 걸친 작업이다. 작은 마름모 모양도 있었고 가운데 줄을 그어 자른 다음 꽈배기 식으로 만들기도 했는데, 그 작업만큼은 오로지 할머니 혼자서 다하셨다.

그 맛난 과줄이 다되면, 이미 만들어 놓은 조청을 발라 차곡차곡 찬합 같은데 넣어 마지막으로 한 공기 조청을 맨 위에 부어 꼭 닫았다.

그 닫힌 그릇 안의 음식은 우리 중 누구도 먹지 못했다. 오직 할머니의 우주이신 할아버지의 겨우내 간식이었다. 물론 그릇에 담기기 전의 상태에서는 가족이 모두 먹었다.

그 긴 작업이 끝나고 명절이 지나고... 기억에서 그 음식의 존재를 잃어버릴 때쯤이면, 우리 형제들이 다 잠에 들고, 달그락거리는 소리와 함께 할아버지께서 무언가 드신다. 바로 과줄한두 개다.

귀를 간지럽히는 숟가락 소리가 잠을 자야 우리 형제들도 잠에 들었다.

언젠가, 엄마에게 과줄 한번 안 하냐고 묻고 싶다. 그 힘든 작업을 즐거워했을 리 만무한 엄마의 대답이 궁금하지는 않다. 요즘과 같이 먹을 것이 지천인 세상에 사실 그 물건은 맛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단지 키가 150cm도 채 되지 않으면서 그 거대한 집안 대소사를 해내신 할머니를 기억하고 싶을 뿐일 거다.

사실 나는 할머니가 사랑한 손녀는 아니었다. 귀한 아들 손주보다 잘 먹고, 잘 커서 더 건강하고 더 덩치가 커서인지 내가 마치 오빠의 먹을거리를 빼앗는 것 같은 죄의식을 느끼게 한 사람이 할머니이기 때문이다.

내가 할머니의 뒤꽁무니에 매달려 기억하는 음식과 할머니를 기억하는 마음은 같은 여성으로서의 안타까움일 거다. 그런 면에서 나는 할머니를 사랑하고 그리워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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