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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난나무 Jun 04. 2020

집밥, 그게 뭐?

집밥의정의에관하여

 그녀는 늘 고상한 사람이었다. 평상시 말투도 느릿느릿 속도를 조절하고, 입고 다니는 옷이 명품은 아닌 듯해도 명품인 듯... 나는 그녀를 부러워했다.

나이는 나보다서너 살 위였는데 경제적 여유로 느껴지는 왠지 모를 괴리감 같은 것도 있다고 해야 하나? 아무튼 그저 평범하다 못해 속세에 잘 젖어있는 나와는 다른 느낌의 사람이었다.

우연히 그녀와 다른 학부모들과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는데, 아들과 딸이 집에서 먹는 집밥을 그리도 좋아한다는 것이다. 아닌 게 아니라 이야기 도중 학교 기숙사에 있는 그녀의 아들이 전화를 했는데 집밥 생각나서 오겠노라 하는 것이었다. 의외였다. 손에 물도 안 묻히게 생긴 그녀의 행위들이 일상적인 주방의 사소한 일들과 매치가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연스레 이야기는 반찬거리로 이어져 요즘 대체로 무엇을 해 먹는지, 어떻게 하는지에 대한 주부 설명회가 이어졌다. 그녀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가족들이 그리 집밥을 좋아하는데 어째서 묵묵부답일까? 자신의 요리라도 자랑해야 하는 거 아닐까? 나 혼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음날 오전, 그녀에게서 전화가 왔다. 우리 집에 차 한잔 하러 와도 되느냐는 말이었다.

불과 몇 년 사이 남의 집에 차 마시러 가는 문화가 거의 없어졌다. 그때만 해도 십여 년 두 전이니 간혹 차를 마시러 다녔다. 나는 예상치 못한 그녀의 전화에 흔쾌히 오라고 했다.

그녀의 대화 목적은 전날 나눈 반찬에 관한 이야기였다. 친정엄마가 보내주는 겉절이와 오이지 이야기를 꺼내면서, 자기가 약간의 수고비를 드릴 테니 어머니가 자기네 것을 좀 해 주었으면 하는 것이었다. 나는 처음에 그녀의 이야기를 알아듣지 못했다. 이내 우리 친정엄마의 반찬을 사 먹고 싶다는 말로 정의 내리니 쉬웠다. 그리고는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갔다.

자신은 반찬을 제대로 만들어 본 적이 없단다. 그녀의 남편은 명문대 출신 회계사이고, 경제적으로는 늘 여유가 있었다고 한다. 어릴 때부터 집안일 같은 거는 시키는 사람도 없었고 본인도 하고 싶어 하지 않아 자신은 살림은 영 아니라고...

그녀의 집에서 맛깔스럽게 나오는 반찬 가지와 깔끔하고 완벽한 살림살이는 그녀의 솜씨가 아니란다.

결혼하고 친정어머님이 돌아가시기 전까지는 친정에서 모든 반찬을 공수해 왔고, 어머님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백화점 반찬코너에서 공수해 왔단다. 그녀의 가족 중 그 사실을 아는 사람은 하나도 없다고 한다. 깔끔한 살림살이 엮시 도우미 아주머니의 역량이라는 것...

나는 뒤통수를 맞은 듯하다. 저렇게 고상하고 진실되보이는 사람이 던져주는 이 공기가, 나를 속인 것도 아닌데 속았다는 배신감, 그녀가 말하지 않았을 뿐이지 나를 기만한 것이 아님에도 느끼는 이 감정은 뭐지? 이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그녀가 내가 전해준 메시지의 의도는 이거다. 꼭 내가 해야 집밥이냐? 집에서 먹으면 집밥이지. 집에서 먹는 요리를 잘 못하는 사람은 집밥 먹지 말라는 법이라도 있냐?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 가족과 맛나게 건강하게 먹을 환경을 마련해주는 게 중요하다. 그녀의 이야기는 지적할 만한 부분이 없었다.

그녀의 이야기에 내가 세뇌되고 있었으니까.

그녀와의 일화가 십 년 두 더 된 이야기인데... 갑자기 생각난다.

요즘 집에서 직접 요리를 해 먹지 않는 시대가 돌입된 건 아닐까? 아파트 단지마다 반찬가게가 있고, 그중에서도 맛집으로 소문난 곳은 대기를 해야 하고, 요일을 정해서 배달해주는 배달 반찬 전문점이 문전성시다.

나도 친정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이 생각날 때면, 바리바리 많은 양을 해서 동생에게 보내준다.

엄마가 내게 해 준 것처럼...

나는 큰 딸이라 오십이 다 되도록 엄마 반찬을 먹었지만, 막냇동생은 오십이 아직 안되었어도 엄마 반찬을 나만큼 먹지 못한다. 먹는다 해도 엄마의 젊었을 때 감각을 느끼지 못한다. 막내라는 이유로..

집에서 만들지 않았으면 어때!!!

집에서 마주 앉아 함께 먹을 가족이 있으면 되지...

사랑하는 사람들과 집에서 공유할 추억을 주는 음식이라면 집밥의 자격을 주고자 한다.

나에게 집밥의 신선한 개념을 알려준 그녀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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