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봄날 Aug 03. 2023

엄마 인터뷰 3편 : 삶을 사는 방법을 알려주고 싶었어

나는 8살부터 14살까지 같은 학원을 다녔다. 너무 어릴 때부터 학원을 다녀서인지 언제 어떻게 학원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는지 잘 기억나지 않는다. 그저 엄마나 이모처럼 가까운 사람과 매일 공부하는 것이 내 루틴이었다. 특히 공간이 집이었던지라 나는 그곳을 학원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던 것 같다.

내가 13살쯤 되었을 무렵 학원 선생님이 나를 처음 본 날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자기는 그날의 나를 절대 잊을 수 없다는 말을 덧붙이면서.


그날, 초인종 소리에 문을 열었을 때 선생님은 당연히 앞을 봤다고 한다. 보통 어른들의 눈높이는 그녀와 같기 때문이다. 즉, 그녀는 문 앞에 어린아이 혼자 있을 리 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러나 거기에는 선생님 허리정도 오는 눈망울이 또렷한, 머리를 질끈 묶은 어린아이만 있었다.


당황해 멈춰있는 선생님을 사이로 아이는 씩씩하게 학원 안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너무나 자연스럽게 책상에 앉아 선생님을 쳐다봤다고 한다. ‘얼른 와서 앉지 않고 뭐해요?’ 아이의 눈빛에서 선생님은 이 문장을 읽어냈다. 그리고 처음으로 학생과의 학원 상담을 시작했다.


나는 이 이야기를 처음 듣고 이렇게 생각했다. ‘학생 혼자 학원에 가서 상담받는 게 뭐가 이상하지? 부모님이 학원을 다니는 것도 아닌데 왜 부모님이 가야 하지?’


그리고 지금도 그 상황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다만 흔하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은 알게 되었다. 대부분의 부모들은 직접 학원 상담을 가고, 아이가 해야 할 일을 대신해 주니까.


신지민의 교육은 달랐다. 신지민의 교육관은 1. 직접 해주는 대신 방법을 알려주는 것. 2. 스스로선택할 기회를 주고, 책임지게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신지민은 학원 상담을 같이 가는 대신 어떤 학원을 가고 싶은지 물어봤다. 그리고 몇몇 학원을 추려 직접 가보라고 했다.


일기를 쓰기 시작했을 무렵도 기억에 남는다. 어린 나는 일기 쓰기가 너무 귀찮아서 엄마에게 일기를 쓰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그러자 엄마는 일기가 나중에 어떻게 추억이 되는지, 일기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자기 경험을 토대로 알려주었다.


그런 다음 이렇게 말했다. ‘너는 일기를 쓸지 말지 선택할 수 있어. 하지만 엄마는 우리 딸이 소중한 기억을 가지고 살았으면 좋겠어.’ 신지민 말에 의하면 그날 나는 일기장을 무척 소중하게 쳐다보며 앞으로 일기를 반드시 쓰겠다고 다짐했다고 한다.


신지민의 교육은 잘 통했다. 선생님의 기억처럼 나는 이미 8살 때부터 씩씩하게 살 준비를 마쳤다. 그리고 그 순간들이 모여 자율적이고 자유로운 내가 되었다.


인생에는 선택의 순간이 많다. 그리고 나이가 들수록 선택에 대한 책임감과 막중함이 커지는 듯하다. 어떤 대학을 갈까 고민하던 내가 삶의 형태나 가치를 고민하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나는 이렇게 선택의 순간이 찾아올 때면 자연스럽게 신지민에게 전화를 건다. 물론 그녀의 대답에는 정답이 없다. 사실 나는 그녀의 대답을 이미 알고 있다. ‘잘 고민해 봐.’ ‘나보다 우리 딸이 더 잘 알 테니까.’, ‘어휴 어려워. 너무 고민된다~.’ 늘 반복되는 패턴이다.


그러고 나서 꼭 몇 시간 뒤 전화가 온다. ‘엄마가 생각을 해봤는데 말이야. 이건 A 해서 좋고, 저건 B 해서 좋은 거 같아. 잘 생각해 봤어? 선택은 네가 하는 거니까 엄마는 그냥 열심히 응원할게.’


신지민의 전화에는 선택을 강요하는 문장이 없다. 그녀는 그저 사랑과 응원을 묵묵히 보내줄 뿐이다. 그래서 나는 선택의 순간이 되면 늘 그녀에게 전화를 건다. 어차피 내 인생이니 내가 알아서 잘 선택할 테지만 그럼에도 나누고 싶은 감정들이 있고, 필요한 사랑과 응원이 있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 나는 엄마가 너무하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우리에게 큰 관심이 없나? 이건 자율이 아니라 방생이 아닌가?’ 그러다 나이가 들면서 그녀의 의도를 알게 됐고, 참 고마웠다. 그리고 이번 인터뷰를 하면서 그녀의 진심을 알게 됐다. 신지민은 늘 단단한 응원자로 우리를 안아주고 있었다.


신지민은 항상 이렇게 말한다. ‘나는 한 게 없지. 우리 딸이 잘해준 거지.’ 나는 이제 이렇게 말하고 싶다. 신지민은 해야 할 것과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잘 구분했고, 그 덕분에 나는 자율적이면서 남에게 구애받지 않은 내 인생을 만들 수 있었다고.


역시나 신지민이 나에게 남긴 것은 삶을 살아가는 태도였다.


매거진의 이전글 엄마를 인터뷰하다 (2)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