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을버스 정류장 앞에 다다랐을 때 눈에 익은 물체가 보였다. 얼마 전 더이상 쓰지 않아 가구류 폐기물로 내려놓았던 우리 집 의자였다. 높낮이 조절이 가능한 어린이용 의자인데 아들이 3살 무렵 부터 6년을 사용했고 그 후로도 4년을 우리 집 여분의 의자로써 톡톡한 역할을 하다가 너무 낡은 기분이 들어 수거 요청한 가구이다.
처음에는 기분이 뜨악이었다.
아시려나? 길에서 갑자기 남동생 만난 느낌을.
한 2,3초간 정지, 어? 어! 너! 하다가 적당한 말을 찾지못해 어색해 죽겠는 남매의 모습처럼 말이다.
우리 집 의자를 맞닥뜨린 내가 딱 그 느낌이었다.
‘네가 왜 여기에 있어?’
반쯤 열린 입을 다물기가 쉽지 않았다.
우리 동네 마을버스 배차 간격은 조금 길다. 의자를 누가 가져다 놓은건지는 모르겠지만 정류장에서 하염없이 기다릴 승객들을 위한 배려의 결과물임이 틀림 없었다. 하지만 나는 의아하다. '누가 저기에 앉기나 할까?'
공원까지 운동하러 가는 길 위에서 여지없이 그 의자를 마주치게 된다. 여전히 누구에게도 내어주지 못한 홀로인 상태로 말이다. '얘 좀 치워주세요'라고 내놓은 물건이 '나 좀 봐주세요' 하며 길에 전시되어 있는 꼴이라니, 모자란 자식 공개적으로 벌세우는 기분이 들어 녀석이 안쓰럽기까지 했다.
그렇게 며칠 후, 운동하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처음으로 녀석의 '쓰임'을 목격한 것이다.
마을버스를 기다리시는 할아버지에게 한창 능력 발휘 중이던 우리 집 의자. 그 모습을 보니 왠지 모르게 대견한 것이 내 입가에 씨--익 흐믓한 미소가 번졌다.
'찰칵' 남편에게 이 상황을 전했다.
"기특하다" 라고 온 남편의 답장은 간단 명료했지만 우리 부부는 그 말 안에 많은 의미를 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3살, 4살 그리고 8살이 될 때까지 아이의 키가 자랄 때 마다 늘 남편의 수고도 함께 했었지. 나사의 위치를 옮기고 조여 엉덩이와 발받침 높이 바꿔주길 수십차례.
아이는 그 안락한 자리에 앉아 셀 수 없을 정도의 식사를 했고 가족의 수많은 생일과 기념일에 촛불을 껐으며 그림을 그리고 동화책을 읽곤 했다.
아이가 새 의자로 갈아탄 후로는 주방 구석으로 옮겨져 택배 박스나 장바구니 같은 것들을 올려놓는 용도로 많은 세월을 함께 했다.
그리고는 얼마 전, 이제는 더이상 쓸모 없다며 버려진 녀석. 의자는 사려깊은 누군가의 손길로 다시 쓸모있는 존재가 되었다.
하나의 의자로 만들어져 한 아이의 유년기를 함께 하다가 지금은 어느 마을버스 정류장에서 쉼의 자리로 제구실을 하고있구나.
그러고 보니 그렇네. '정말 기특하네'
쓰임, 제구실을 한다는 것.
한 인간으로 태어나 나는 얼마나 이로운 쓰임이었을까?
문득, 의자의 일생에서 나의 일생을 미시적으로나마 엿보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