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의 직장생활백서
J가 직장생활 잘한다고 누가 그래?
동생이 꼬박 석 달 동안 밤 11시 혹은 자정 퇴근을 감행한 것은 모든 동료들이 경악할 정도로 혹독한 일이었다. 이후 3개월간의 지옥생활에서 살아 돌아온 자에 대한 소문은 일파만파 퍼져 그녀는 업계 전설이 되었다.
어느 날 그 소문을 듣고 한 동료가 찾아왔다. 그는 야근 3주 차를 나는 중이었다.
"아침에 출근하면 맨 먼저 하루치 계획을 세워놔요. 하루 종일 일만 하다가 밤 10시가 가까워지면 초조해지기 시작해요. 그때 즈음에 일을 절반밖에 마치지 못했다는 걸 알게 되거든요. 내일은 남은 일에 하루치 일이 또 더해져서 일을 할수록 줄어들기는커녕 계속 늘어나니까 미치겠어요.”
매일 복리로 불어나는 일에 짓눌려 3킬로그램이나 몸무게를 잃고 언뜻 해골 같은 사람이 딸깍딸깍 힘겹게 입을 움직였다.
지난 석 달 상상을 초월한 중노동에도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몸무게를 착실히 늘렸던 동생은 마주 앉은 해골에게 잘 먹으라는 인사치레를 건넸다.
일이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에 심한 스트레스를 받는 그는 섭식장애도 겪고 있었다. 먹고 나면 체하거나 설사를 하거나 둘 중에 골라야 하는 신세를 면치 못하게 되었다고 했다.
“어떻게 석 달이나 버티신 거예요?”
선구자의 지혜를 갈구하는 눈빛이 간절했다.
“저는...... 계획을 세우지 않았어요. 어차피 계획대로 되지도 않는데 진행 상태를 알면 더 괴로울 것 같아서요. 출근해서 책상에 앉으면 퇴근할 때까지 그냥 아무 생각 없이 일만 했어요. 기계처럼요.”
"그러다 결국 제때 마감을 못하면요? 뒷감당은요?"
일을 망쳐 욕을 먹게 될까 봐 극도로 두려워하는 파워 J형 인간에게 최선을 다하고도 욕을 먹는 게 당연한 직장의 생리라고 믿는 P의 충고가 이어졌다.
잠시 후 P에게 큰 위로를 받은 J는 용기백배하여 자리에서 일어났다.
한 달 뒤, 동생은 예의 그에게서 전화를 받았다.
“그런데 말이죠, 어떻게 하면 아무 생각을 안 할 수가 있나요?”
한 달 동안 생각해봤지만 도무지 생각을 안 하는 방법을 찾지 못한 계획형 인간은 안타깝게도 조금도 처지가 나아지지 않았던 것이다.
집에서 함께 저녁을 먹으며 동생의 일화를 재미나게 들었다.
“너, 직장생활백서 한번 써 봐. 스트레스받지 않고 일하는 비법 같은 거.”
“비법?”
“너처럼 현대 직장생활에 최적화된 인간이 없지.”
“쉬워, 그냥 스스로가 현대판 임금노예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면 돼.”
“그 쉬운 게 왜 저분은 안 되냐.”
먼저 곯아떨어져 소파에 누운 남편을 가리켰다.
“J형 인간이 직장생활 잘한다는 거 어폐가 있어. 똑같은 상황에서 누가 스트레스를 덜 받느냐로 따지면 임기응변에 강한 P가 나을지도 모르지.”
너무 꽉 조여 옴짝달싹 못하는 나사와 어딘가 조금 헐거운 나사, 아예 자리를 이탈한 나사까지, 현대라는 기계사회에서 떨어져 나온 나사 세 개가 달그락거리며 그날 밤 오랫동안 헛돌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