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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참파노 Apr 21. 2024

병신

장애인(이 이야기는 허구이자 픽션입니다.)

그녀는 그와 결혼을 서둘러하고 싶었다. 20대의 이른 나이에 사랑의 결실을 맺고 싶었고 그 또한 그녀의 말에 동의했다. 그렇지만 어린 그들의 선택을 부모들은 반대했다. 이루어 놓은 재산도 없었고 꾸준히 공급되는 생활비도 없었기에 그들이 결혼을 하겠다고 우기는 것은 부모의 등골을 휘게 하겠다는 다짐에 불과했다. 결국 자식을 이기는 부모는 없다는 말이 맞아떨어지듯 아버지가 일구어 놓은 재산을 기반으로 그들은 결혼을 했다. 생활비를 벌기 위해 그는 우유배달을 했고 적어도 6개월이라는 시간은 세상에 부러울 것이 없이 행복했다. 마음껏 섹스를 즐겼고 장인과 장모도 그다지 걱정하는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아직 20대 초반의 건장한 청년이었기에 장래를 기대할 수도 있었겠다.


그러나 불행은 소리도 그리고 예고도 없이 찾아왔다. 결혼식이 끝난 후, 정확히 6개월 뒤 새벽에 찾아왔다. 소형차량으로 우유배달을 하던 그에게 트럭이 덮쳐 차가 전복되고 그는 그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지만 아니 차리라 죽었다면 좋았겠지만 그는 하반신 마비 장애인 즉, 불구자가 되었다. 6개월의 병원 생활동안 어린 그녀는 많은 생각에 빠졌다.


'이렇게 되어버린 남편과 평생을 살아가야 하나?'


깊은 절망과 두려움과 분노가 그녀를 사로잡았다. 싫었고 거절하고 싶었다. 그렇지만 모두에게 착한 사람이었던 그녀는 차마 그를 떠날 수 없었다. 그녀의 삶에 고난이 찾아와 멈출 수 없는 무자비한 행군과 채찍질이 시작되었다. 항상 찌린내와 똥냄새 속에 살아야 했다. 밥을 먹을 때도 잠을 잘 때도 거실에서 티브이를 볼 때도 악취는 그녀를 떠나지 않았다. 어쩌다 교회에서 그가 똥이라도 팬티에 싸버리면 그녀는 올라오는 분노를 마음에 누르고 똥을 손으로 만지며 팬티를 빨아야 했다. 눈물이 났다. 하반신 마비가 된 그는 발기가 불가능했다.

그렇기에 부부간의 섹스는 꿈도 못 꿨다. 그녀도 인간이기에 섹스가 간절했고 몸서리가 쳐지도록 원할 때도 있었다. 그렇지만 할 수 없었다. 경제활동도 그녀의 몫이었다. 가정 경제의 모든 부분을 책임져야 했다. 식당을 했더랬다. 그가 하는 일이라곤 그녀를 돕는답시고 그녀가 만들어놓은 설렁탕 가마에 프림을 잔뜩 타는 일이었다. 그러고 그녀가 번 돈으로 인터넷 쇼핑을 하며 삶의 만족을 채워나갔다.


그녀를 가장 고통스럽게 했던 건 사과를 할 줄 모르거나 하지 않는 그의 태도였다. 그는 나르시시스트로 사과를 하면 자신의 존재를 부정당하는 고통을 느꼈기에 절대로 사과하지 않았다. 그녀가 힘들게 번 돈으로 사치품을 살 적에도 당당했고 변명으로 일관했으며 자기 신앙의 가치관을 팔아 그 위기를 모면했다. 그리고 사과를 하는 그 순간, 자신의 부족함을 그녀에게 보이는 거라 생각해 오랜 시간 그런 사과의 말들을 외면하고 살았다. 소금을 한 움큼씩 삼키듯 그녀는 10년이라는 세월을 고통 속에서 살았다. 차라리 나를 떠나 달라는 말을 그가 먼저 하길 바랐다. 그렇지만 그는 그럴 줄 몰랐다. 친정에서도 이혼을 종용하는 말들을 많이 했다. 하지만 착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었던 그녀는 이혼을 할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그녀가 힘들게 번 돈으로 막연한 사이의 선교사에게 거액의 돈을 보냈다. 그녀 몰래 말이다. 그걸 알게 된 그녀는 결국 마음에 분이 터져버렸고 휠체어가 넘어지도록 그를 때렸다. 눈물이 뒤범벅되어 그를 패고 나니 조금은 살 것 같았다. 그렇지만 휠체어에 다시 올라선 그가 자기의 수치를 이기지 못해 집안 종이 달력에 불을 붙여 방화를 시도했다. 다 같이 죽자는 심정으로 말이다. 다행히 그 모습을 본 그녀가 얼른 달려와 싱크대에서 물을 가져다 불을 껐고 주저앉아 울었다.


더 시간이 흘러 그녀는 결국 분노와 억울함에 사로잡혔고 그것들을 거절할 힘이 없었다.


"이제부터 평일에는 시댁에 가 있어요! 평일에는 나 혼자 할 공부도 있고 배우고 싶은 게 있어요!"


선량하기만 하던 그녀의 입에서 나온 그 말에 그는 의연한 척하며 그렇겠노라고 했지만 두려웠다. 이제 곧 그녀가 자신을 버릴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말이다. 자신의 욕심이 한 여자의 인생을 망쳤다는 사실을 애써 외면했지만 그 진실은 빙산처럼 서서히 드러났다. 그렇게 주말에만 그녀를 보는 삶을 1년이 넘게 살았다. 평일은 그녀에게 천국과도 같았다. 똥오줌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었고 자신의 돈을 마음대로 쓰는 그를 보지 않아도 되었다. 때로는 스스로가 기독교인이지만 애인을 만드는 꿈을 꾸기도 했다. 그리고 실천할 용기도 생겨나는 것 같기도 했다. 오래된 금욕이 그녀의 신앙을 이기고 금단의 열매를 바라보게 했다.


"우리 이혼할까?"


그렇게 말하기 싫었지만 자신의 체면을 위해 그는 마음에도 없는 말을 했다. 나르시시스트로서 그렇게 말한다면 자존심 있는 남자로 보일 것 같았고 그녀가 선량한 그녀가 그 질문에 긍정의 신호를 보낼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냥 스스로 안심하고 싶어 한 말이었다. 그렇지만 그의 말에 그녀는 반색을 하며 답을 했다.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


그녀의 그 말에 자신이 내뱉은 말을 취소하고 싶었지만 끝까지 있어 보이고 싶은 마음에 이혼 이야기를 차례대로 진행해 나갔다. 그리고 구체적인 계획을 잡고 법원에서 마지막으로 결론을 내기 일주일 전 그는 그녀에게 이별 여행을 제안했다. 그녀는 그의 제안이 죽도록 싫었다. 마지막 순간까지 그를 돌보며 기차에 탈 자신이 없었다. 말이 좋아 여행이지 그런 일상들은 그녀를 쉬지 못하게 하는 고행이나 다름이 없었다. 가기 싫었다. 하지만 일주일만 참으면 이 모든 고통이 끝이기에 그녀는 그의 말을 수긍했다.


"이혼하는 거 다신 한 번만 생각해 주면 안 되니? 되돌리면 안 되겠니?"


나르시시스트였던 그는 스스로도 말하면 무너지는 자존심을 감안하고 겨울 바다를 바라보며 거친 호흡과 울먹임을 토해내며 말했다. 이제 이 고통이 끝나나 싶었는데 구질 구질한 그의 말에 그녀는 결국 신앙의 짐을 내팽겨 쳐버리고 그에게 온갖 저주의 말들을 쏟아 냈다. 너 때문에 망가져 버린 내 인생은 어디에서 보상받을 것이고 그것도 모자라 물귀신처럼 그 수렁에 날 끌고 들어갈 셈이냐며 욕을 해댔다. 왜 말을 바꾸냐며 저주를 했다. 그렇게 시간이 지나 그는 가정법원에서 이혼을 마무리 지었고 서울에 있던 전셋집을 그녀에게 양도했다. 그리고 그 양보가 그에게는 큰 배려인 양 생각하며 말하고 다녔다. 그녀가 그것을 차지하게 된 것은 조족지혈에 불과한데도 말이다.


맞다! 그녀는 성욕을 참지 못해 외도를 했었고 언젠가 외국을 나갔다. 상간남과 공항으로 들어올 때, 마중 나왔던 그가 지겹고 치가 떨려서 모른 척 지나간 적이 있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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