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속에 오랜 시간, 한 사람이 살고 있었다. 그래서 누굴 만나도 마음을 열 수 없는 사람으로 살아왔었다.
지금은 나와 잘 맞는, 편안하고 안정된 다른 사람을 만나 함께 하고 있다. 그러니 모순적이게도 지금에야 실패한, 부족하기만 했던 지난 사랑에 대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나와 나이 차이가 많이 나는 남자였다. 돌아보면 나이라는 장벽이, 도전하길 좋아했던 나에게 꽤 자극적인 매력으로 다가왔었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나는 이기심으로 가득한 사람이었고 나 밖에 볼 줄 몰랐다.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기라도 하는 듯 착각하며 살았다. 그는 표현이 서툰 성정이었고 늘 내게서 부재했기에 나를 불안하게 했다. 내 세상의 중심에 그가 빠져있는 시간이 잦았다. 우리는 모두 미성숙했고 사랑이라고 믿었던 감정이 원망으로 바뀔 때쯤 서로를 탓하기 바빴다.
어쩌면 각자 자신의 진짜 감정에 무심했었는지도 모르겠다.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아무것도 몰랐으면서 무지한 채 “사랑한다.” 믿고 말했다. 아니 그때는 믿었다. 사랑이라고...
시간이 열병을 씻어내 버리기라도 한 듯, 지나고 보니 그때 우리는 서로에게 원하는 것만이 가득했던 욕망에 가까운 감정을 나눴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시간이 많이 흘렀다. 그와 나의 인연은 서로의 SNS를 통해 얇은 선처럼 아슬아슬하게 이어져 왔다. 스쳐 갔던 장소와 사람들이 우리를 변하게 했다. 나는 매몰된 세상에서 시선을 넓혀갔고 주위를 볼 줄 아는 사람이 되었다. 그는 자신만의 방법으로 표현하는 법과 자신의 감정을 읽는 법을 배웠다. 사회인으로 의젓하게 세상에 적응하는 법도 배운 것 같았다. 시간이 흘러 여기까지 왔으니 그동안 변한 우리를 다시 보고 싶었다.
미완성이 아닌, 추억으로 완성되어 남겨지길 바라는 마지막 욕심이었는지도 모른다. 어쩌면 이렇게 서서히 거리를 넓혀가고 있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완전한 이별을 환대하기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일지도…
함께 저녁을 먹고 헤어지는 길, 맞은편에서 택시가 비상등을 켠 채 우리의 작별을 지켜봤다. 우리는 짧고 어색하게 서로를 안았다.
서로의 등을 어색하게 다독이며 그동안의 시간과 앞으로의 시간을 위로했다. 그동안 잘 지내줘서 고마운 마음도 손의 온기를 따라 그의 등에서 다독여졌다.
내 생의 한 시절을 행복했고, 불행하게 해 주었던 그를 잠시 안았을 때, 아주 오래된 친구를 안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