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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우렌 Mar 18. 2024

이런거 좋아하는 남자는 걸러라

<파이트 클럽> 에 대하여

여자친구가 어디서 또 이상한 글을 봤는지 문득 그런 얘기를 꺼냈다.

 "이런 영화 좋아하는 남자는 거르래. 근데 이거 너 얘기 아니야?"

<파이트 클럽>

오늘은 이 작품에 대해 이야기 해보고자 한다.

(충분히 오래된 작품이지만 스포가 들어있다.)


<파이트 클럽>


일단 눈이 즐거운 영화. 젊은시절의 그 브래드피트가 짧은 금발과 함께 와일드한 옷을 입고 남성미를 뽐낸다. 나이들고도 너무나 멋있는 우리 빵형이지만, 젊은 시절의 그는 확실히 거친 남자의 그 멋을 물씬 풍긴다.

하....


 이 영화.  파이트 클럽은 에이리언 3로 데뷔하고 세븐으로 대박을 터트린 데이비드 핀처의 세기말 작품이다. 자본주의, 법치주의 사회에서 시장의 일원으로서 돈에 끌려다니는 개개인들에게 인간 본성을 일깨우고 자기 자신을 바라보게 하는 파이트 클럽을 만드는 이야기이다.

 

1. 장면의 강렬함


 내용을 떠나 정말 강렬한 인상을 주는 장면들이 많은 영화인데, 현실적이고도 묵직한 파이트 클럽에서의 전투씬과 주인공의 고뇌와 상상을 다루는 초현실적인 장면들의 격차가 무척이나 인상깊다. 초반의 주인공의 가구에 대한 이야기를 그리는 장면들(마치 심시티 집버전을 보는 듯하다.)과 손에 화상을 입으며 고통 속에서 진정한 자기 자신의 모습을 찾는 장면들이 초현실적이면서도 효과적으로 관객들에게 와닿는다. 영화의 제작시기가 필자 본인의 나이보다 이전임을 감안하면 스스로의 애늙은이스러움을 고려하더라고 무척이나 세련된 효과들과 장면들인듯하다. (조잡스러운 면도 있지만 이 영화는 그런 점마저 품는다)


그리고 이러한 초현실주의적 표현과 사실주의적 표현들은 영화가 진행될 수록 무엇인가 모호해지는데, 결국에 타일러 더든(브래드 피트)이 자기자신이 만들어낸 자신의 또다른 자아 라는 것을 주인공(에드워드 노튼)이 알게 되자 온전히 합쳐진다. 이후 자신의 뺨에 총을 쏜 이후 타일러 더든이 사라지만 개인적으로는 온전히 받아들인 것이라고 생각한다.


2. 초토화 작전


그러고는 더든의 초토화 작전이 실행되면서 빌딩들이 무너져 내리는데, 이때의 그 대사와 음악, 그리고 어딘가 비현실적이게 아름다운 건물들의 붕괴들이 한번에 나의 눈을 거쳐 뇌에 꽂힌다.


"Marla, look at me. I’m really okay. Trust me, everything’s gonna be fine."

"날 봐, 괜찮아. 날 믿어, 다 괜찮을거야."


영화는(더든은) 폭력성으로 대변되는 인간 내면을 받아들이고, 사회에 먹히지 말 것을 이야기한다. 물론 이를 위한 방식인 초토화 작전에 대해서는 여러 의문점이 들겠지만, 주제의식과 마지막 그 엔딩장면이 말하는 그 메세지는 분명하다.


널 사랑하고 폭력적이고 변태스러운 나는 문명이 초토화 되더라도 변하지 않아. 그러니 괜찮아.


결국에 모든 문명과 사회를 구성하는 것은 사람이기에, 어떤 세상, 사회에서도 중심은 본인이라는 것. 자신의 본 모습을 잃지 말라는 그 메세지는 너무나도 삐뚤게, 그러나 아름답게 내 뇌리에 박혔다.


3. 파이트 클럽이란?


무기력하던 나의 군생활. 재미도 있었지만 하루하루가 쳇바퀴같던 일상이었다. 친했던 선임들은 이제 모두들 사회로 돌아가고, 지금까지도 연락하고 만나는 나의 동기들 역시 전역을 앞두고 있었다. 동기들 중 가장 마지막 전역자가 나였기에 그 시기는 외롭고도 불안한 시기였다.


너무나 감사히도 그리고 다행히도 내가 군생활을 하던 시절의 군대는 이전만큼의 부조리와 불합리한 공간은 아니였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가장 보수적이고도 수직적인 집단으로서 개인보다는 분대가, 분대보다는 소대가 중요한 그런 곳이였다. 그나마 나를 웃게해주던 사람들이 떠나가는 상황에서 처음으로 진실히 외로워했던것 같다.


그때 난 파이트 클럽에 갔다. 누군가의 타일러 더든이 나와 장황하게 떠들고, 피흘리고, 자기 자신을 찾으려는 그 노력 덕분에, 난 나의 타일러 더든을 굳이 마주하지 않고도 나의 껍데기를 공고히 했다.


그런면에서 행운이였다. 좋은 영화와 가장 좋은 시기에 마주치고, 가장 깊숙하게 포옹하는 그 감각을 느낄 수 있는건 너무나 행복한 경험이다. 그렇게 난 반사회적, 반체제적이고 폭력적이고 자극적인 듯 보이는 이 영화를 통해 따뜻함을

느꼈다. 그래서 나에게 <파이트 클럽>은 마초적, 폭력적, 있어보이는 척 하는 영화를 넘어 따뜻한 영화이다.



"이런 영화들 치고는 다 명작밖에 없네"

이렇게 얘기하고 한마디 덧붙였다.

"근데 왜 그렇게 말하는지 알겠다ㅋㅋㅋ"

겉멋부리는 그런 영화. 폭력적이고 가오잡는 그런 영화. 하지만 우린 모두 각자의 타일러 더든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누군가는 그를 정말 잘 숨기고 살고, 누군가는 그를 쉽게 꺼내 사회적으로 욕을 조금 먹는거의 차이 아닐까. 난 파이트

클럽을 봄으로서 굳이 더든을 꺼내지 않고도 잘 살아가는 사람이 된거 같다.


고마워요 내 탈출구. 덕분에 오늘도 초토화작전 없이 잘 살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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