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라우렌 Mar 28. 2024

소년 애니메이터. 신카이 마코토

가장 어른스러운 애니메이션 <날씨의 아이>에 대하여

내가 한창 애니메이션과 만화에 빠져살던 2016년. 엄청난 작화로 이미 덕후들 사이에 유명했던 신카이 마코토 감독의 신작이 일본에서 개봉했다.

기존 장편 영화는 좋은 평을 받지 못했었고, 그 뒤 <언어의 정원>으로 다시한번 50분 정도의 애니메이션 제작 후 다시 장편으로 돌아온 작품이었다. 한국 개봉은 당시 확정도 아닐 정도로 한국에서 그의 인지도는 높지 않았지만, 일본에서의 폭발적인 흥행으로 반년정도 이후 극장에서 그 작품을 접할 수 있었다. 바로 <너의 이름은.> 이다.


피할 수 없는 재해와 그 속에서의 인연, 운명으로 그 재해를 극복해 나가는 이 작품은 신카이 마코토를 이제 덕후들의 빛의 마술사가 아닌 미야자키 하야오의 다음 주자로 만들어주었다.

나 역시 영화를 극장에서 관람하며 큰 감동과 여운을 느꼈다.


이후 <날씨의 아이>가 큰 기대감 속에 일본에서 개봉하였고, 전반적으로 좋은 평가였지만 <너의 이름은.>에 비해서는 갈리는 모습이었다. 당시 한국은 일본 불매운동이 극심해졌을 때라 개봉이 많이 늦어졌다.

당시 고3이던 나는 학교에서 진짜 자습만 7시간 하며 살고 있었는데, 그날따라 왠지 모든 게 하기 싫어 친구 한명을 데리고 조퇴를 하게 됐다.

아프지도 않지만 병원에 가 진단서를 떼고, 당시 극장에 걸린 지 얼마 안 된 <날씨의 아이>를 예매했다.

신카이 마코토는 확실히 다음 미야자키 하야오와는 거리가 있는 듯 보였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최고의 작품이었다.


얼마전?에 개봉한 <스즈메의 문단속>은 <너의 이름은.>에 보다 가까운 작품이었다. 충분히 재밌었고 충분히 아름다웠지만, 이상하게 내 맘에 이전만큼의 스파크는 튀지 않았다. 영화가 전반적으로 너무 빠른 느낌도 있었고, 인물들의 관계에 이전만큼 몰입되지 못한 이유도 있을 것 같지만...


역시 난 이 감독의 소년틱한 영화가 좋은 것 같다. 그런 면에서 최고작은 <초속 5센치>이지만, <날씨의 아이>는 조금 다른 느낌으로 정말 좋은 영화였다.


1. 날씨의 아이



신카이 마코토의 기존 작품들에서 가장 호평받는 부분은 바로 하늘과 물이다. 하늘은 우리 세계에서의 가장 중요한 광원으로서 빛 묘사가 직접적으로 가능하고, 물은 자연물 중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반사율이 높은 물질이다. 이 두 요소가 그의 작품들에서 어떤 식으로 그려지는지를 보면 그가 왜 '빛의 마술사'라고 불리는지 알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날씨의 아이>는 치트키를 사용한 작품이다. 비와 하늘을 소재로 하여 감독의 장점이 극대화되는 화면이 계속해서 등장한다. 거기에 <너의 이름은>을 통해 크게 진보한 인물 작화 역시 생동감 있는 작화에 일조한다.


작화적으로는 한 발짝 내디딘 이 영화. 하지만 내용이 이를 따라오지는 못했다는 것이 주된 평가이다.


2. 소년


주인공 '호다카'의 가출로 시작되는 영화이지만 그의 가출의 이유는 밝혀지지 않는다. 그는 가출하여 도쿄로 도망친 소년이라는 점 하나만을 중심으로 영화는 시작한다. 그의 과거는 '의도적으로' 숨겨졌고 그로 인해 관객은 애초부터 주인공에게 그다지 몰입하지 못한다.


하지만 가출 청소년인 점을 제외하면 너무나 평범한 소년이다. 이쁜 누나에게 쩔쩔매며 휘둘리고, 호기심도 많다. 그리고 정도 많아 비를 멈추게 하는 능력을 가진 '히나'라는 소녀를 구해내고 이후 생활고에 시달리는 그녀를 돕기 위해 일을 제안하여 같이 하기도 한다. 그 과정에서 '히나'에게 감정을 품게 되고 그녀에게 줄 선물을 준비한다. 풋풋하고 보기 좋은 평범한 소년의 모습이다.


하지만 상황이 급박하게 흘러가기 시작하는 중후반부에 다다르자, 소년인 '호다카'의 모습은 조금은 다르게 와닿는다.


3. 클라이맥스


영화가 비판받는 가장 큰 부분 중에 하나라고 생각되는 부분이다. '히나'는 비를 멈추는 능력을 쓸수록 몸이 이상해지고 있었고, 그 와중에 도쿄에 폭우가 지속되며 점점 심각한 재해가 되려 한다. 이를 막을 방법은 '히나'의 희생뿐이었고, 그녀는 스스로 희생을 감내한다.

...

하지만 '호다카'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이전에 우연히 얻은 총을 써가며 경찰로부터 도주하여 기어코 '히나'에게 도달한다. 그리고 그녀를 구해낸다. '히나'의 희생으로 지속된 폭우가 멈쳤던 도쿄는 다시 비가 내리기 시작하고, 영화의 결말에서는 아예 물에 잠겨버린다.


총을 얻는 과정에서의 우연과 어색함, 그리고 이 총이 클라이맥스에 주인공의 위기를 벋어 날 결정적인 요소로 사용되는 바람에 개연성에 의심을 가질 여지가 충분하다. 물론 일본의 카부키쵸에서는 신고되지 않은 총이 꽤 많이 돌아다니고 있다지만, 한국의 관객들에게 여전히 어색한 것은 사실이다. 물론 미국에서 이런 장면이 나왔다면 전혀 어색하지 않았겠지만...(미국은 '호다카'가 권총을 꺼내자마자 경찰이 총을 쐈을거 같긴 하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스스로의 희생을 택한 소녀를 어찌 보면 자신의 이기심으로 다시 살린 주인공의 선택도 호불호가 많이 갈린다. 그리고 이 충돌이 바로 이 영화가 저평가되어 있다는 내 생각의 가장 큰 지점이자 '신카이 마코토' 스러운 부분이다.


4. <.은름이 의너>


<너의 이름은.>에서 주인공의 개인적인 목표(미츠하와 만난다)영화적 세계관 내의 큰 위기(혜성과 지구의 충돌로 인한 마을 소멸) 극복은 일치한다. 즉 주인공이 세계관의 위기를 극복함으로써 개인적인 목표를 달성해 나가는 영화이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위기 극복과 개인적 목표에 살짝의 딜레이를 주며 개인적인 목표 달성이 마지막에 이루어져 영화적으로 여운과 그 쾌감이 극대화된다.


하지만 <날씨의 아이>는 다르다. 아니 완전히 반대이다.


개인적인 목표는 '히나와 함께 행복한 삶을 살아간다' 이고 세계관 내의 위기는 '도쿄에 계속해서 내리는 비'이다. 그리고 이 둘은 절대로 동시에 만족될 수 없게 되어 있다. 결국 히나는 후자를 택해 자신을 희생하지만 호다카는 그러지 못했고 전자를 택하며 결말에서 도쿄는 물에 잠겨버린다.


호타루의 과거에 대해서도, 가출 이유에 대해서도 영화는 알려주지 않는다. 애초에 관객이 그에게 완전히 몰입하지 못한 상태에서 이러한 그의 사회적으로 이기적인 선택을 관객들 역시 마냥 환영할 수는 없었다. 관객은 결말에서까지 호타루보다는 비로 인해 삶의 터전이 뒤바뀐 도쿄 시민에 가까웠다.


왜 호타루는 그랬을까? 영화는 명확히 알려주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한 가지가 있다면 호타루는 평범한 소년이라는 점이다.


5. 소년. 신카이 마코토


 여기서 그의 전작들을 살펴보고자 한다. 일명 '세카이계' 장르라 불리는 한두 명의 주인공에 의해 세상의 운명이 달려있는 그런 작품을 신카이마코토 감독은 이전부터 만들었다. 그의 개인적인 취향으로 보일정도이다. 하지만 그런 거대한 스케일 속에 있는 주제들을 보자.


 <별의 목소리>는 너무나 멀어져 버린 중학교 시절의 사랑을, <구름의 저편, 약속의 장소>는 소꿉친구와 첫사랑에 대하여 다루고 있다.


 그리고 가장 대표작 중 하나인 <초속 5센치>에서는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자연스레 멀어져 가는 첫사랑의 기억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개인적으로 <초속 5센치>를 그의 작품 중에 가장 좋아하는지라 나중에 글을 적을 기회가 된다면 적어보고 싶다.


여튼 보다시피 그의 모든 작품을 관통하는 어릴적, 청소년기의 우정과 사랑이다. 모든 영화가 그의 반짝이고 아름다운 화면과 맞물려 어딘가 아련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그의 영화 최대의 장기이자, 특징이다.


하지만 <언어의 정원>부터 그의 작품의 결말 부분에 있어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데, 그건 바로 미결로 남지 않는 보다 확실한 마무리였다. 기존 작품들은 언제나 이루어지지 못한, 멀어진 옛사랑으로 영화가 마무리 되었다면, <언어의 정원>부터는 보다 능동적인 주인공의 행동으로 관계가 어느 정도 완성되며 영화가 끝난다.


 그리고 그 최대지점이 <날씨의 아이>이다. 이제 그의 영화는 소년의 추억을 그리워하고 아파하며 끝나지 않는다. 이제는 어른이 된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더 이상 과거를 그리기보다는 미래의 소년 소녀들의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바뀐 듯 보인다.


6. 어른 애니메이터. 신카이 마코토


 <날씨의 아이>의 그 결말에 대해 신카이 마코토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도움 되지 않는다고 느끼고 있다. 저 자신도 아이에게 별로 아이에게 도움 되고 있지 않는 것 같다고 느낀다

호다카의 캐릭터에 대해 명확히 알려주지 않은 이유는, 그는 보편적인 청소년을 상징하고 있기 때문이다. 마치 '호밀밭의 파수꾼'의 주인공이 평범하기 그지없는 학생인 것처럼 말이다. 그리고 또 이 소설과 마찬가지로, 평범한 이 소년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본다. 소년의 시선으로 본 세상은 어떤가?


계속해서 비가 내리는 어두운 도시. 가난에 허덕이는 아이들. 무책임한 어른들.

그럼에도 빛과도 같은 사랑. 자신의 아이를 위해 못하는 게 없는 아버지. 자신을 진심으로 믿고 응원해 주는 누나.


그런 의미에서 '히나'의 희생으로 도쿄에 비가 멈추는 결말은 말도 안 된다. 신카이 마코토는 영화를 통해 어른들의 무책임으로 어려운 상황을 마주하게 된 아이들에게 위로를 전하고자 했다. 그런 세상 속 희망에 대해 얘기하고자 했다. 그렇기 때문에 호불호가 갈리는 호다카의 그 선택은 어른들의 무책임에 대한 평범한 소년의 용기 있는 저항이자, 자기 자신들을 지키기 위한 몸부림이다.


"어차피 도쿄는 물에 잠겨있었다."

소년, 소녀들의 희생으로 세상이 멀쩡히 돌아가야 한다면. 그건 그 세상에 문제가 있는 것이지 아이들의 희생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감독은 말한다.

"너희의 책임이 아니야. 너희는 그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면 돼. 이런 세상을 물려줘서 미안해."


이제 영화의 마지막 장면을 보자.


호다카는 집으로 돌아가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물에 잠긴 도쿄로 돌아와 히나를 찾아간다.

몇 년 만의 재회에서 호다카는 말한다.

"우리들은 분명, 괜찮을 거야!"



매거진의 이전글 이런거 좋아하는 남자는 걸러라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