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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직장인Q Oct 22. 2021

내향성의 밥벌이

나는 내향적인 사람이다. 날 때부터 그랬다.


내가 어릴 때는 집집마다 '집전화'가 있었는데,

어린 나를 찾는 전화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집'의 대표로 전화를 받는 것조차 못했다.


더 심각하게, 나는 낯선 사람들과는 아예 얘기를 못했다.

특히 가장 기본적인 상거래도 나는 할 수 없었는데,

식당에서 마실 물을 요청하는 것도,

옷가게에서 살 옷을 입어보는 것도,

짜장면을 전화로 주문하는 것도,

주문한 짜장면을 문 앞에서 받는 것도 쑥스러워 차마 하지 못했다.


부모님은 이런 나의 사회성을 길러 주시려고 

가족 외식을   종종 나에게 주문을 시키셨는데,

그 경우에도 내가 마지못해 우물쭈물 작은 목소리로 주문을 하면

종업원은 항상 주문 내용을 못 알아듣고 재차 나에게 주문 내용을 물어봤다.

이러한 상황은 나를 더욱 부끄럽게 했고 나의 내향적 성격은 쉽사리 고쳐지지 않았다.


혼밥 레벨 중 가장 낮은 것은 패스트푸드점이라고 했던가,

시간이 흘러 초등학생 고학년에 진입한 나는

이제 맥도날드 정도는 주문할 수 있는 단계에 이르렀다고 스스로 느꼈고,

어느 날 자처해서 맥도날드에 식구들의 점심을 사러 갔다.


옛날 맥도날드 간판. 안에 감자튀김 모양 의자도 있었다.


현금으로 밥값을 결제하던 시절이라,

나는 주머니에 넣은 만 원짜리 지폐를 가지고 맥도날드에 가서 주문을 하고 기다렸다.

내향성은 왁자지껄한 패스트푸드점에서 밥을 먹는 것도 상상할 수 없었기에 포장으로 주문을 했다.

식구들은 가게 안 테이블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슈퍼 심부름을 하던 가락으로 거스름돈을 챙겨야지, 계속 되뇌었다.


주문을 무사히 마치고 직원이 햄버거를 포장해서 건네주는데,

나는 반사적으로 "거스름돈.."이라고 작게 말하다가

오른쪽 주머니를 만지고는 이미 결제할 때 거스름돈을 받은 사실을 알아차렸다.

눈치 빠르고 친절한 직원은 "거스름돈 안 드렸나요? 여기요!"하고 지폐들과 동전들을 건네주었는데,

나는 ‘내 주머니에 이미 거스름돈이 있으며, 그것을 받았었는데 착각하고 요청했다’는 이 긴 인과관계를

설명하기가 너무 벅차고 부끄러워 그 길로 "아니에요"하고 작게 내뱉고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식구들을 지나쳐

햄버거 포장봉투를 들고 매장 밖으로 도망치듯이 뛰어나왔다.


그런데 그 짧은 순간 안에 맥도날드 직원은

어린이인 내가 부끄러워서 거스름돈을  받았다고 

눈치 빠르게 판단하고,

투철한 정직 정신으로 카운터를 넘고 나를 좇아 매장 문을 넘어 거스름돈을 움켜쥐고 뛰쳐나왔다.


직원은 매장 밖에서 도망가는 나의 손목을 잡고,

 "손님, 거스름돈 가져가세요!" 하고 

천 원짜리 몇 장과 동전들을 나의 손안에 넣어주려 했다.

회색 길거리에 맥도날드 직원의 빨간 유니폼과 노란 모자가 선명하게 박혔다.

지나가던 사람들이 모두 우리를 쳐다보았다.

이제 어쩔 수 없이 나의 착오로 인한 거스름돈 요청 정황을 설명해야 하는 것이다.


나는 거의 울기 직전의 표정으로 얼굴이 새빨개져서

오른쪽 주머니에서 지폐와 동전을 꺼내 "여기.."라고 간신히 말했고,

내가 이미 거스름돈을 받았다는 것을 깨달은 직원은 허탈하고 놀란 표정으로 그제야 내 손목을 놓았다.

(역시 그분은 상황판단이 빨랐다.)


이제 맥도날드에선 모두 키오스크로 주문을 하고,

나도 식당에서 포장 없이 혼밥을 할 수 있는, 아니 혼밥이 더 편한 직장인이 되었다.

직장인 중에서도 구성원 간의 사생활 스몰토크를 요구하는 작은 사무실에서 근무하게 되어버렸다.

밥값을 벌기 위해서라면 내향성 사람이 최소한으로 마땅히 견뎌내야 하는 것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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