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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보통직장인 Oct 12. 2020

당신의 마음이 힘들다면... (feat. 감정폭력)

어린 시절 보호자와의 유대 관계가 불안정했던 사람은 이후 평생 동안 이 문제를 끌어안고 살게 된다. 때에 따라 상대가 불편해 보일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 때문인 것 같은 생각에 평생을 자책하며 보냈다. <감정폭력>


정신력 폭력은 이중으로 과소평가받는다. 


첫 번째로 다른 사람들 앞에서 누군가를 깎아내리거나 무시하는 행동이 분명한 감정 폭력임에도 불구하고, 이미 사회적으로 만연하다는 이유로 별일 아닌 일로 여겨지는 경우가 많다. 두 번째로 감정적 폭력을 통한 상처는 눈에 드러나지 않기 때문에 그 피해가 심각하게 생각되지 않는다. 그 결과, 피해자들은 정신적 폭력으로 받은 괴로움을 밖으로 드러내지 못하고 온전히 혼자서 감당하라고 강요받는다.


갈비뼈가 골절되었거나 몸 여기저기 시퍼런 멍이 든 것을 보면 누구나 이 사람이 심각한 학대를 받았다고 확신할 수 있다. 그러나 정신적 폭력의 경우, 흔적이 눈에 보이지 않고 너무나도 일상적으로 발생하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수롭지 않은 일이라 생각한다.



상대방의 의도는 중요하지 않다. 너무나 당연하지만 정신적 폭력에서 자신을 가장 잘 지킬 수 있는 보호 방법은 정신적 폭력을 이른 시기에 감지하고 막는 것이다.


일상에서 벌어지는 감정 폭력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이런 폭력의 유형이 더욱 심각한 문제인 이유는 일반적으로 피해자가 폭력을 잘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설령 마음에 상처를 입더라도 그것을 과소평가한다는 점이다. 결국은 나의 잘못이라고 믿게 만드는 상황, 이런 상황에 계속 노출되면 누구나 몸과 마음이 병들어 간다. 직장에서나 학교, 가족관계, 연인 사이 등 어떠한 인간관계에서도 마찬가지다. 감정 폭력은 지금 이 순간에도 어디서나 진행되고 있다. 


신체적 고통이든 정신적 고통이든 상관없이 모든 고통은 주관적이다. 반복적으로 정신적 외상을 입으면 분명 언젠가는 병들고 만다. 개인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으면 당사자는 심리적 혹은 신체적 반응으로 이를 느낀다. 그동안 깨닫지 못했던 폭력의 흔적을 마주하게 되는 순간이다. 이럴 때는 증상과 나를 따로 떨어뜨려 스스로를 관찰하고, 증세가 만성적으로 발전하지 않도록 조속한 조치가 필요하다.



억눌린 공격성이 더 위험하다. 부모에게 화가 난 아이들은 부모가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무언가를 던지곤 한다. 직접 부모에게 대드는 아이도 있지만, 아이들은 본능적으로 더욱 약한 사람을 찾아 화를 낸다. 이것이 훨씬 더 효과적인 전략이라는 사실을 태어날 때부터 아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기를 화나게 한 사람을 향해 분노를 표출하는 것이 아니라 좀 더 손쉬운 희생자를 찾아 화를 낸다. 분노와 증오를 분출하는 방향을 바꾸어 재빨리 적당한 희생양을 찾아 쏟아내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현상이다. 분노를 유발한 사람이 피해를 보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그 대신 대부분 사회적 취약 계층이나 스스로를 방어하지 못하는 사람이 고통받는다. 그들은 아무런 죄가 없는데도 말이다. 여기서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파괴적 성향'과 '편견'은 결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이런 성격은 지속적인 괴롭힘과 멸시와 같은 심리적 상처를 받음으로써 활성화된다.


폭력의 원인이 당사자의 책임이라는 것은 무책임하고 위험하다. 한 의사를 이를 두고 "피해자의 탓으로 돌리는 일은 개인이 정서적 폭력에 대항할 수 있는 모든 의지를 무너뜨린다. 자기 효능감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하이델베르크 대학병원의 마르쿠스 쉴텐볼프는 반복해서 정서적 폭력에 노출되면 사람들은 견딜 수 없는 스트레스와 압박감을 받고, 다중 작업 처리 능력이나 적응 능력 역시 떨어진다고 한다. 사회에서 요구하는 바를 충족시킬 수 없기 때문이다. 


개인이 앓는 심리적 고통은 어떤 과학적 방법을 통해서도 측정할 수 없다. 고통에 수반된 스트레스 역시 마찬가지다. 다른 사람이 느낀 괴롭힘의 정도와 충격을 정의 내리는 것은 불가능하다. 모든 고통은 언제나 주관적이다. 그렇기에 정서적 폭력이라는 주제를 다루는 일이 어려운 것도 사실이다. 


정서적 폭력으로 인한 누군가의 고통을 피상적으로 경솔히 대한다면, 피해자는 엄청난 압박감을 느끼게 되며 이는 2차 가해로 번질 수 있다. 피해자가 모욕을 당해 감정적으로 상처를 입은 상태인데, 다른 사람들이 그 상처를 조롱하거나 이를 하찮게 여기는 경우다. 그러면서 위로를 한답시고 "그리 심한 일도 아닌데 왜 그래. 그렇게 예민하게 좀 굴지 마"라고 말을 건넨다. 정말 역겨운 조언이다. 이런 판단은 제삼자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무시와 무관심


정신적 폭력은 폭언이나 혐오와 같은 공공연하게 드러내는 공격적인 형태도 있지만 '은근한 형태'로 표현되는 경우가 더욱 많다. 그중에서도 가장 폭력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기 힘든 것이 무시와 무관심인데, 정신적 폭력을 당하는 사람은 자신의 감정에 초점을 맞추지 못하고 상대의 의도대로 조종당한다. 


인간은 사회적 존재다. 포유류에 속하는 동물이지만 '호모 사피엔스'로서 협력할 수 있는 특별한 능력이 있다. 그렇기에 다른 사람과 교류하고 관계를 맺고, 서로가 공감을 주고받으며 사는 것이 우리가 건강을 유지하는 전제 조건이다. 고독은 사람을 병들게 한다. 다른 사람으로부터 가치를 인정받지 못하고 어떤 피드백이나 공감도 얻지 못한다면, 마음은 물론 뇌와 온몸에 영향을 받게 된다. 특히 이는 염증 지표에 영향을 주는데 이는 몇 가지 신체적, 정신적 질환의 원인이 되기도 한다. 


우리는 가까운 관계일수록 터무니없이 많은 것을 요구하기도 한다. 게다가 상대가 어떻게 행동해야 하고 무엇을 주어야 할지를 일방적으로 정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사춘기에 들어선 아이와 부모의 관계가 그렇다. 부모는 계속해서 아이를 통제하려고 하고 아이는 점점 가족이라는 울타리를 벗어나려는 과정에서 부모와 아이가 대치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가스 라이팅 : 문득 모든 것이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하면..


가스 라이팅 기술은 피해자가 느끼는 감정에 정당성을 부여하는 데 있다. 언젠가 자신이 실수투성인 데다 부족하다고 느껴질 때, 그 틈을 놓치지 않고 반복적인 반응으로 피해자 스스로를 고립시키는 것, 그것이 가스 라이팅이다. 가해자는 피해자가 전혀 기억하지 못하거나 하지 않은 일을 가지고 마치 실제인 것처럼 주장한다. "네가 그런 식으로 행동하니까 문제를 일으키지"라든가 "그 친구가 화를 내다니, 네가 뭔가 잘못한 거 아냐?"라는 식이다. 이런 지속적인 조작 탓에 피해자는 스스로 가해자가 말한 것을 믿어버리거나, 자신이 잘못된 판단을 했을 것이라며 두려워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이러한 '허위 주장'과 '사실 왜곡'은 피해자가 자신이 느끼는 감정과 인지 기능을 더 이상 맞지 않고 가해자의 말을 무방비하게 신뢰하게 될 때까지 반복된다. 처음에는 상대를 의심하기도 하지만 결국 피해자는 절망에 빠지고 만다. 


가스 라이팅이 추구하는 목표는 상대와의 관계에서 권력을 쥐고 상대를 휘두르는 것이다. 상대가 자주 불안을 느끼고, 의견 내기를 포기한 채 스스로 착각한 것이 틀림없다고 인정해버리면 가해자의 조작 전술은 성공했다고 볼 수 있다. 

부모에게서 받은 친밀감과 애정이 스트레스에 견딜 수 있는 저항력을 키워주고 아이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더불어 애정이 듬뿍 담긴 신체적 접촉이 얼마나 유용한지도 과학적으로 증명되었다. 이와 반대로 학대나 무시를 당한 경우, 또는 자살을 시도한 경우에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해를 위한 도킹 스테이션이 훨씬 적었다. 이런 경우 몸에 많은 무리가 가고 병에 걸릴 위험 역시 높아질 수 있다. 그래서 어린 시절 심리적으로 손상을 입은 사람의 신체 저항력은 평생 약한 수준에 머문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자기가 사랑하고 태어난 순간부터 의존할 수밖에 없는 부모에게 상처를 받게 되면 정서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커다란 타격을 입게 된다. 이 상처는 쉽게 사리지지 않고 아이가 성인이 되더라도 큰 괴로움을 유발하기도 한다. 아이의 상처를 치유할지, 아니면 새로운 상처를 낼지는 모두 부모에게 달려 있다. 부모는 아이에게 굴욕감이나 모욕을 준 것을 만회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최소한 아이가 거부당했다는 느낌은 받지 않게 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영원히 고통 속에 살게 될 것이다. 정서적 폭력을 입은 피해자는 사람들 사이에서 생활하고 관계를 맺는 일을 힘들어하지 때문이다. 개인마다 차이가 있지만 일반적으로 정서적 폭력은 수년이 지난 후에도 또렷하게 기억나며, 장기간에 걸친 피해를 입히거나 아예 삶 전체를 파괴하기도 한다. 


아기의 울음은 부모에게 보내는 뚜렷한 신호이다. 아기에게는 부모가 필요하다. 자기를 봐주길 원하고, 관심받기 원해서 우는 것이다. 쉽게 말해 사랑을 원하는 것이다. 


아이는 심리적 기본 욕구를 충족시키고 싶어 한다.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신뢰할 수 있는 사람과 따뜻하게 살을 맞대고 싶어 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아이가 부모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과의 안정적인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능력을 키울 수 있다고 말한다. 


아이가 부모에게 느끼는 '정서적 의존성'을 악용해 아이를 순종적으로 만드는 부모의 태도는 문제가 된다. 자녀와 부모의 관계는 보통 불평등하다. 아이가 성장하는 과정에서 부모의 애정과 관심은 없어서는 안 된다. 그만큼 아이에게는 절대적이라는 뜻이다. 성인이 되었을 때에도 부모의 관심받기를 원하는 마음이 완전히 사라지지 않고, 또 부모의 마음에 들고 싶어 한다. 


#감정폭력 #가스라이팅 #무관심 #무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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