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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G Feb 15. 2020

Carrie & Lowell (2015)

음악과 추억, 그리고 감정.

표준국어대사전에 따르면 음악의 정의는 ‘박자, 가락, 음성 따위를 갖가지 형식으로 조화하고 결합하여, 목소리나 악기를 통하여 사상 또는 감정을 나타내는 예술.’이다. 볼 수도, 만질 수도 없지만 우리는 음악이 존재한다는 것을 분명히 알고 또 즐기고 있으며, 시간의 흐름에 따라 창작자의 의도에 따른 음파의 변화는 듣는 이의 귀를 통해 뇌와 가슴으로 전달되어 특정한 생각이나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가령 장조의 경쾌한 가락에 빠르고 신나는 리듬은 교감신경을 자극하여 우리 몸의 구석구석까지 기쁨의 전율에 차오르게 한다. 또, 느린 박자에 맞춰 무겁고 둔탁하게 가라앉는 멜로디는 우리를 감정의 반대쪽 극단으로 치우치게 한다.



시간의 흐름에 존재하는 것은 음악 말고도 또 있다. 바로 ‘추억’이다. 음악처럼 실체가 없는 존재지만 추억은 우리들의 머릿속, 그리고 가슴 속에 또렷이 남아있다. 영원히 간직하고픈, 생각만 해도 가슴이 따뜻해지고 눈가가 촉촉해지는 추억이 있는가 하면 다시는 기억하고 싶지 않은 끔찍한 기억들도 있다. 그리고 이 추억들은 이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에 의해 글로, 그림으로, 음악으로, 또는 영화 등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되기도 한다. 추억은 우리에게 특정한 감정을 불러일으키고, 이는 의미없이 하루하루 흘러가는 우리네 삶에 생기를 불어넣는다.



2015년 3월 31일에 발매된 Sufjan Stevens(이하 ‘수프얀’)의 7번째 정규 앨범 ‘Carrie & Lowell’은 상술한 음악의 정의에 따라 수프얀 자신의 추억과 감정을 충실하게 드러내보인 작품이다. 앨범의 제목은 그의 어머니인 Carrie Stevens(이하 ‘캐리’)와 그녀의 애인이자 수프얀의 의붓아버지인 Lowell Brams(이하 ‘로웰’)의 이름을 나란히 나열한 것이다. 제목에서 유추할 수 있듯 이 앨범에서 수프얀은 2012년 위암으로 사망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자신의 복합적인 감정을 일관성있는 방식과 분위기로 표현한다. 그에 따르면 이 앨범은 ‘예술가적 기획’이 아닌 자신의 ‘삶’ 그 자체라고 말했다. 앞서 이야기한 음악의 정의에 따라 이 앨범은 어머니의 죽음을 기점으로 그 이전과 이후의 자신의 삶과 추억, 그리고 감정을 음악으로 표현하여 기록한 것으로 차라리 한 편의 짤막한 회고록이라고 정의하는 게 적당할 것 같다.



일반적으로 부모님 같은 아주 가까운 사람의 죽음은 영원히 곁에 있을 것이라 믿었던 그 사람과 함께 보내던 순간의 온기, 눈빛, 주고받던 말 한마디 한마디가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재생되며 남은 이들에게 아물지않는 생채기를 남긴다. 그런데 수프얀은 이 앨범을 낸 후 가진 인터뷰에서 자신은 어머니에게서 아주 어렸을 때 버려졌고, 어머니와 함께 보내던 시간이 많지 않았으며 이번 앨범을 만들면서 어머니와 함께 했던 추억과 감정들에 대해 떠올리려 해봤으나 쉽지 않았다는 말을 했다.(‘Empty outline changed my view. Now all of me thinks less of you.’ - All of Me Wants All of You)  오랜 기간 떨어져 지내며 연락 한번 없던 어머니의 죽음. 오랜 기간 교류가 없던 혈육과는 사실상 남이나 다름없다고 할 정도로 낯설고 어색하기 마련이다. 그런 관계에 있던 가족의 죽음 앞에서 남들만큼 절절한 감정을 느끼기도 쉽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수프얀은 어머니의 죽음 앞에 그 누구보다 감정적으로 큰 충격과 슬픔을 느꼈다고 한다.  2010년 발표한 전작 ‘The Age of Adz’에서 앨범 전체를 관통하던 다양한 질감의 일렉트로닉 사운드는 이 앨범에서 수프얀의 감정 상태를 드러내는 듯 가슴을 울리는 앰비언트 사운드로 집약된다. 이를 바탕으로 핑거스타일 주법으로 한 음 한 음 섬세하게 연주되거나 스트로크 주법으로 건조하게 반복되는 등 화려한 기교없이 담백하게 연주되는 어쿠스틱 기타는 혹자의 의견처럼 엘리엇 스미스를 떠올리게 하는 서정적인 분위기를 연출한다. ‘Illinois’의 풍성한 관현악 사운드나 ‘The Age of Adz’의 화려한 포크트로니카 사운드와 비교하면 앰비언트 사운드에 얹어진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의 이 앨범은 사뭇 조용하고 밋밋하게 느껴지기도 하나, 수록곡마다 비슷한 듯 하면서 다른 전개 방식으로 지루하지 않게 앨범이 지닌 감정에 몰입할 수 있게 만든다.



첫 곡 ‘Death With Dignity’에서 이야기를 시작하기 주저하던 그는 다음 곡인 ‘Should Have Known Better’에서 본격적으로 자신의 회고록를 써 내려가기 시작한다. 3살 무렵 비디오 가게에서 어머니께 버려졌다고 말하는 그는(로웰의 인터뷰에서 이 구절은 사실이 아니며 수프얀의 기억에 착각이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과거에 대한 가정형의 후회를(‘should have known better, should have wrote a letter’) 반복하며 어머니의 죽음으로 망가져버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지 못한 스스로를 자책한다. 자신의 감정에 겁먹은 채로 위안을 갈구하는 그는 오히려 자기 자신이 치유 그 자체가 되고 싶다고(‘I only wanna be a relief.’)하며 위안에 대한 강렬한 갈망을 드러내기도 한다. 수프얀이 5살부터 8살까지 어머니, 의붓아버지와 시간을 보냈던 Oregon의 한 도시이름을 제목으로 한 곡 ‘Eugene’에서 수프얀은 그녀의 셔츠에 레몬 요거트를 떨어뜨리고 바닥에 재떨이를 떨어뜨리는 등의 행동을 하는데(‘Lemon yoghurt, remember I pulled at your shirt. I dropped the ashtray on the floor.) 생전에 우울증, 조현병, 심한 약물 중독으로 자기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들었던 캐리는 아들에게 쏟을 관심과 사랑이 부족했고, 그녀의 관심을 구걸하고 또 그녀의 곁에 있고 싶어서 이런 귀여우면서 연민을 자아내는 어리광을 부렸다고 한다.(‘I just wanted to be near you.’)



뒤이어 등장하는 곡인 ‘Fourth of July’라는 곡의 제목은 미국의 독립 기념일이라는 일반적인 의미로 사용되지 않았다. 이 곡은 병상에 누워있는 어머니가 죽음을 맞이한 직후 수프얀과 어머니의 영혼의 대화식 구성으로 이루어지는데, 어머니에게 수프얀이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털어놓으면 생전에 수프얀을 홀대했으나 자애로운 모성의 소유자로 이상화된 어머니가 'my little hawk, my little dove, my little loon' 등의 애칭을 부르며 슬퍼하는 수프얀을 따스하게 어루만져준다. 수프얀은 7월 4일의 하늘이 되고 싶다 하는데(‘Oh, could I be the sky on the Fourth of July?’), 독립 기념일을 자축하는 화려한 불꽃 놀이로 생전에 힘겨운 삶을 살다가 끝내 하늘나라로 쓸쓸히 떠나고 있을 어머니를 기쁘게 보내주고 싶은 심정을 표현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모름지기 죽기 마련이다(‘We’re all gonna die.’)라며 근원적 슬픔에서 우러나오는 염세적인 구절을 반복하며 뒤이어 경험할 감정의 극단을 미리 예고한다. 앨범의 다른 곡들과 달리 어쿠스틱 기타가 등장하지 않고 가슴을 촉촉히 적시는 피아노 코드의 반복이 이 앨범의 정서적 분기점으로 작용하는 해당 곡의 분위기를 더욱 극적으로 인도한다.



다음 곡인 ‘The Only Thing’에서는 자신의 우울함에 잡아먹힌 수프얀의 자기파괴적인 표현들이 본격적으로 등장한다. 자신을 절벽에서 떨어뜨리거나 팔을 긋는 등의 극단적인 행위를 떠올리고, ‘Carrie & Lowell’에선 삶의 의욕을 잃은 채 술에 잔뜩 취해 방바닥을 기어다닌다. ‘No Shade in The Shadow of The Cross’에선 약에 의존하는 무기력한 삶을 살며 심지어 앞서 언급한 자해 행위를 실제로 행한 것으로 추정되는 구절이 등장한다. 앨범의 서사가 막바지를 향해가면서 ‘Black shroud’로 비유하며 수프얀에게 압도적으로 엄습하는 우울한 감정에 서서히 잠식당해가는 수프얀은 내적, 외적으로 파멸의 길을 걷는다.



인터뷰에서 ‘자신의 신에 대한 사랑과 신과의 관계는 극히 근본적이다.’라고 말한 수프얀은 이번 앨범에서 기독교적 상징을 곳곳에 삽입하였다. ‘Drawn To The Blood’에서 구약성서의 힘 센 삼손을 손쉽게 제압하는 데릴라를 생전이나 사후에 수프얀 자신을 무기력하게 억누르는 어머니로 표현하고, ‘Carrie & Lowell’에서는 발렌타인 데이 직전에 일어난 홍수에 빗대어 발렌타인 데이의 시초라고 알려진 성 발렌티누스에게 자신의 슬픔을 홍수처럼 물리쳐달라고 부탁한다. ‘The Only Thing’에는 구약성서 다니엘서 5장의 벨사살 왕에게 재앙이 닥칠 것이라는 암시를 다니엘이 2번이나 해독해주는 일화를 삽입해서 언젠간 수프얀을 포함한 우리 모두에게 부정적 감정이 들이닥쳐 압도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운명이라는 것을 비유한다.



 이 앨범에서 종교적 상징이 가장 많이 나타난 ‘John, My Beloved’은 외로움과 슬픔을 감당할 길 없는 수프얀이 애정을 갈구하며 어느 바에서 낯선 남성에게 첫눈에 사랑에 빠지는 상황을 묘사한다. 상대방의 아름다운 얼굴의 푸른 눈을 애절하게 바라보며 기어이 그 남자의 가슴팍에 머리를 파묻고 하룻밤의 쾌락적인 사랑을 갈구하던 그는 결국엔 하늘에 있는 신에게 자신의 곁에 있어달라고 간절하게 부탁하며 마무리한다. 그 무엇으로도 채워지지 않는 수프얀의 공허함을 최후의 심리적 보루인 신의 무한한 사랑으로 달래고자 하는 눈물겨운 내적 고난이다.



천신만고끝에 마지막 트랙에 도착한 수프얀에게는 결코 해피엔딩이 선사되지 않았다. 특정 대상을 지목하지 않은 불특정한 ‘친구’에게 자신을 사랑하지 않냐며 절규하는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타인과 진실로 서로를 필요로하는 관계를 그리워하며 발버둥친다. 슬픔이라는 감정을 미래에 대한 헛된 희망으로 뭉개버리지 않고 마지막까지 자신의 날것의 감정을 진솔하게 털어내며 가장 완전한 혼자가 된 채로 앨범의 서사는 마무리된다.



과거 수프얀은 ‘Fifty States Project’라는 것을 계획했는데, 미국의 각각의 50개 주를 주제로 하는 앨범을 하나씩 만들어내고자 하는 프로젝트였다. 실제로 수프얀의 고향인 ‘Michigan’, 그리고 ‘Illinois’를 발매한 경력이 있다. 비단 이 프로젝트 뿐만 아니라 수프얀의 작업물에는 미국의 각 지역의 상징물을 자주 넣는 것을 즐겨하는데, 이 앨범 역시 그 예외는 아니다. 더욱이 수프얀이 3번의 여름을 어머니와 보냈던 Oregon주의 상징물들은 유년 시절의 아련한 향수와 더불어 더욱 남다르게 다가올 것이다. Oregon주의 도시 Rosenburg의 설립자라고 알려진 Aaron Rose의 이름을 재치있게 활용한 표현인 ‘Rose of Aaron’s beard’, Oregon주의 도시이자 곡의 제목이기도 한 ‘Eugene’의 고지대인 ‘Spencer’s Butte’, 수프얀이 자주 헤엄치고 논 수영장이 있던 Eugene 근처의 ‘Emerald Park’, Oregon의 북쪽 해안가의 ‘Tillamook forest’에서 1951년에 발생한 화재로 존재의 허무함을 가르치는 어머니의 속삭임, 이외에도 앨범 곳곳에 Oregon의 다양한 상징물들이 언급되어 있다.



수프얀의 장기 중 하나인 서사를 뛰어난 문학적 표현으로 풀어내는 면모는 수록곡 ‘No Shade in The Shadow of The Cross’에서 드러난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이 곡에서는 부정적 감정이 극에 달한 수프얀의 자기 파괴적인 행위가 극대화되서 나타나는데, 이는 ‘It’s only the shadow of a cross.’. 이때의 ‘shadow of  cross’는 기독교의 상징물이 아닌 어머니의 묘비 앞에 세워진 십자가가 햇빛을 받아 땅바닥에 떨어진 그림자이다. 그는 생전에 약물 중독 및 정신 질환으로 자기 파괴적인 행위를 일삼아온 어머니의 그늘이 자신에게 영속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다는 것이다. 뒤이어 등장하는 구절인 ‘I slept on my back in the shade of the meadowlark.’의 ‘shade’ 역시 앞서 등장한 ‘shadow’와 비슷한 의미를 띤다. 그리고 커터칼을 이용해 자해 행위를 하고 난 후 그는 ‘There’s no shade in the shadow of the cross.’라고 나지막히 말하는데, 이 때의 ‘shade’는 앞서 등장한 단어와 다르게 본래의 의미인 ‘그늘’, 즉 어머니의 영향력이 미치는 바로 그 그림자, ‘shadow of the cross’에서 수프얀은 어머니에게서 물려받았다고 생각하는 따가운 우울의 햇빛을 피할 그늘을 찾을 수 없다는 참담한 심정을 드러내고 있는 것이다.



모름지기 감정이란 인간이라는 존재가 그 이외의 존재들과 다르게 만들어주는 소중한 요소이다. 기쁨, 슬픔, 분노, 우울, 환희 등의 감정들 중 가장 정도가 깊은 것은 뭐니뭐니해도 가까운 사람 사이에 주고받는 사랑의 행복, 그리고 사랑하던 사람과 이별했을 때의 슬픔, 그리움일 것이다. 톨스토이의 유명한 단편 소설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에서 하나님이 대천사 미카엘에게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질문에 대해  6년 간의 가르침을 통해 ‘사랑’이라는 해답을 주었다. 비단 이 기독교적 요소가 듬뿍 함유된 소설의 교훈적인 가르침이 아니더라도, 우리는 삶에서 언제나 사랑으로 행복해하고 사랑때문에 울기도 한다. 인류 역사상 지금까지 수많은 예술 작품에서 신 또는 인간의 사랑이라는 감정이 핵심적인 주제로 다뤄졌고, 수프얀의 ‘Carrie & Lowell’은 사랑하는 존재에 대한 아련함과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십수년간의 음악 활동으로 다져진 내공이 담긴 정돈된 사운드로 풀어낸다.



수프얀은 앨범 전반에 걸쳐 어머니에 대한 다양한 감정을 드러내며 혼란스러워 하는데, 사실 수프얀의 숨겨진 진심은 생각보다 아주 가까운 곳에 있었다. 앨범의 첫 곡 ‘Death With Dignity’에서 수프얀은 생전에 몸과 마음이 망가진 채로 그에게 충분한 관심과 사랑을 주지 못했던 어머니를 용서할 뿐더러 아주 가까이에서 함께 하고픈 마음을 나타낸다. 그의 소망은 어머니의 죽음이라는 정해진 결과 앞에 무기력해질 수 밖에 없지만, 생전에 못다한 혈육 관계의 안타까운 감정은 가장 날 것으로, 또 극히 정제된 방식으로 음악이라는 방식을 통해 표현되어있다. 수프얀의 말에서 다시 한 번 인용하면, 이 앨범은 수프얀의 삶과 추억, 그리고 생생한 감정이 담긴 수작이다. 이 슬픔의 회고록이 부디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로 슬퍼하고 있는 청자들에게 한 줄기 빛이 되어주길 소망하는 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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