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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ACG Aug 01. 2020

Frank Ocean - Blonde (2016)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자아들의 힘겨운 고백

Frank Ocean은 1987년 10월 28일생의 캘리포니아 출신 R&B 아티스트로(나와 생일이 같다), 비록 현재까지 1장의 EP, 2장의 정규앨범만을 발매한(Endless라는 visual album이 있긴 하다) 단출한 커리어의 젊은 뮤지션이지만 그 몇 장의 앨범으로 그는 음악 시장의 판도를 바꾼 'Game Changer'가 되었다. Kanye West와 Drake에 의해 촉발된 PBR&B라는 새로운 음악적 지류의 큰 줄기를 형성하는 데 일조한 정규 1집 'channel ORANGE'는 Frank Ocean이라는 신인 뮤지션을 데뷔와 동시에 거장의 반열로 등극시켜주었다. 808 베이스 드럼의 미니멀하면서 끊임없이 반복되는 비트에 적절히 삽입되는 하이햇, 신스, 락, 일렉사운드가 한데 어우러지고, 기존 R&B의 구성에서 가장 두드러지는 위상을 차지하는 목소리도 그저 하나의 악기로 희석될 뿐이다.



그의 등장으로 사운드의 혁신 뿐만아니라 60년대 Martin Luther King, Malcolm X에 의해 시작된 흑인 인권 운동, 당시 백인 중심 사회의 비판 뿐만 아니라 흑인 자신들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성찰의 내용을 담은 Marvin Gaye의 'What's Going On?'에서 오늘날의 Kanye West(ex. 'New Slaves'), Kendrick Lamar까지 언급해온 미국 사회의 문제 의식을 다시 한번 일깨운다. 'Sweet Life', 'Not Just Money', 'Super Rich Kids'로 연결되는 트랙들에서 상류층의 부패한 삶과 물질 만능 주의, 'Crack Rock'에서의 약물 남용 등 현대 미국 사회의 부정적 모습들을 직설적인 비평없이 수준급의 은유와 수사적 표현으로 그들의 부끄러운 민낯을 드러낸다.



대중음악계에 새로운 지평을 열고 높은 완성도로 평단, 대중들로부터 찬사를 받은 'channel ORANGE'는 곧 그의 상징이 되었고, 자연히 다음 정규 앨범에 대한 기대감이 높아질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1집의 성공 이후 사라져 간 수많은 선대 뮤지션들을 돌이켜 볼 때, 프랭크 또한 소포모어 징크스가 우려되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폭발적인 기대감 속에 발매된 정규 2집 'Blonde'는 기존 R&B 음악의 구성을 혁신적으로 바꿨다는 전작보다 어떤 의미로는 더 파격적인 실험이었다.



이 앨범을 처음 들었을 때 전작과 가장 뚜렷하게 구별되었던 부분은 마치 상업적인 성공은 안중에도 없다는 양 귀를 잡아끄는 캐치한 멜로디 라인이 거의 실종되어 있었다는 점이었다. 몽롱한 앰비언트 사운드가 배경으로 깔리면서 공간감과 여백이 강조되어 화려하고 매혹적인 메인스트림 팝 음악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방향성을 띄고 있었다. 단적인 예시로, 앨범의 첫 인상을 결정하는 첫번째 수록곡인 'Nikes'는 도입부터 곡을 관통하는 앰비언트 사운드와 함께 변조된 프랭크의 읊조림이 등장하는데, 이는 전작의 'Thinkin Bout You'등에서 느낄 수 있는 프랭크의  감미롭고 애절한 목소리를 기다리던 청자들의 기대를 보기 좋게 무너뜨린다.

 

앨범을 발매하면서 프랭크는 과거 60년대 로큰롤 밴드인 비틀즈, 비치 보이스가 미친 영향력을 언급했다. 그 영향이 가장 뚜렷하게 드러나는 지점은 수록곡 ‘White Ferrari'에 샘플링된 비틀즈의 ‘Here, There and Everywhere’의 기타 리프이다. 비단 이 곡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수록곡에서 단순하게 반복되는 기타 리프가 기본 골격이 되고 베이스 드럼 및 다른 악기들은 보조적인 역할을 담당한다. Alternative R&B라고도 불리는 새 시대의 대안적 사운드에 60년대의 복고적 사운드를 이식함으로써 제 손으로 정립한 새로운 음악의 어법을 다시 구성하는 데 그 의의가 있는 셈이다. 실제로 일부 곡의 녹음과 프로듀싱이 런던의 'Abbey Road Studio'와 뉴욕의 ‘Electric Lady Studios’에서 이뤄졌다는 사실 또한 대중음악의 황금기였던 60년대의 정신을 담고자 했던 프랭크의 작가주의적 고집이 아니었을까.



사운드를 재구성하는 과정에서도 프랭크의 천재성은 여실히 돋보인다. 수록곡들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일렉 기타 사운드는 은은하게 찰랑거린다. 마초들의 음악인 하드록과 헤비메탈의 거칠고 공격적인 기타 사운드와는 대척점에 있는 introvert의 수줍은 자기고백적 표현이다. ‘Pink + White’, ‘Self Control’, ’White Ferrari’에선 담백한 어쿠스틱 사운드가, 그 외 ‘Ivy’, ‘Solo’, ‘Skyline To’, ‘Seigfried’, ‘Godspeed’, ‘Futura Free’ 에서는 몽환적인 사이키델릭 기타 사운드가 깔리고, 함께 뒷배경을 담당하는 앰비언트 사운드와 적절한 타이밍에 등장하는 베이스 드럼은 청자의 몰입감을 높이는 감초 역할을 담당한다. 하지만 앞서 지겹게 얘기한 사운드는 실제로는 들릴듯 말듯 한 볼륨으로 절대 배경음 이상의 위치를 침범하지 않고 화자가 말하는 내용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Pink + White’는 단연 돋보이는 앨범의 킬링트랙이라고 할 수 있다. 전작의 유려한 멜로디 라인과 감미로운 프랭크의 목소리가 담긴 발라드를 좋아하던 청자들을 위한 선물같은 곡이다. 사랑하는 사람을 생각할 때의 황홀한 기분을 '하늘이 분홍과 하얀빛, 땅이 검정과 노랑빛으로 보인다'며 감각적으로 표현한다. 연인과 함께라면 그 어떤 곳이든지 이상향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Be Yourself’의 신신당부하는 어머니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다음 곡인 ‘Solo’에서 ‘Gone off tabs that acid’ 하는 깨알같은 유머 감각 또한 발군이다. ‘Solo’에서는 연인과의 시원섭섭한 이별 후 홀로 남은 감정을 허심탄회하게 풀어놓는다.



’Self Control’은 내가 이 앨범에서 가장 애정하고 즐겨듣는 곡이다. 담백한 어쿠스틱 기타 사운드로 시작하는 전형적인 포크 음악의 구성으로 이 앨범에서 가장 멜로디컬한 전개를 띄고, 덤으로 프랭크의 뛰어난 가창력도 즐길 수 있다. 사랑하는 연인과의 관계가 틀어져 그가 자신에게, 그리고 자신 또한 상대방에게 더 이상 진심을 나누지 않는 ‘self control’을 하게 만들면서도, ‘Keep a place for me. I’ll sleep between y’all, it’s nothing.’이라고 말하며 비록 사랑하는 이와의 관계는 끝났지만 떠난 이에게 계속 의미있는 존재로 남고 싶다는 섭섭한 미련을 토로한다.



‘Pretty Sweet’ 는 불안정한 노이즈와 함께 모든 위험을 감수해서라도 해낼 것이라는 의지적인 선언으로 시작해서 기타 리프를 베이스로 빠른 비트의 베이스 드럼이 이어지고, 천사같은 목소리의 어린이 중창단 하모니로 마무리된다. 'You can't end me now. That might be what you need.'라고 외치는 화자의 말은 프랭크의 입장에서는 양성애자임을 커밍아웃한 자신을 향한 사회의 눈초리들에 대한 대답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화자의 자리에 우리 자신을 대입해보아도 어느 정도는 말이 된다. 우리 또한 무한 경쟁의 사회를 살아가면서 우리 자신을 밟고 일어서려는 수많은 존재들과의 투쟁을 해 나가고 있다. 프랭크의 고독한 투쟁은 우리 존재의 본질적 투쟁과도 맞닿은 부분이 존재한다.



‘Nights’는 대중적인 사운드와 구성을 활용하여 이 앨범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싱글 중 하나이다. 반복되는 미니멀한 기타 리프로  곡이 시작되고, ‘Everybody needs you. No you can’t make everybody equal.’라며 덧없는 인간관계에 대한 생각을 드러내기도 한다. 중반부의 기타 솔로 이후 등장하는 베이스 드럼과 하이햇은 청자의 이목을 집중시키며 늘상 애인과 함께 보내던 환락적 삶의 과거를 잔잔한 랩핑으로 고백한다. 변주가 잦은 구성으로,  멀게는 Queen의 ‘Bohemian Rhapsody’, Radiohead의 ‘Paranoid Android’, 가깝게는 Travis Scott의 ‘Sicko Mode’를 연상시킨다.



현대 대중 음악을 이끄는 선두 주자인 그는 자신의 음악적 영감이 되어주는 Soul 음악의 거장에 대한 헌사 또한 빼놓지 않았다. 수록곡 'Close To You'는 Carpenters의 원곡을 토크박스를 이용해 목소리를 변조하여 커버한 Stevie Wonder의 cover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는데, 이 곡에서 스티브는 21세기 힙합과 R&B의 필수요소가 되어버린 오토튠이라는 개념을 몇 십년이나 앞서 선보였다고 할 수 있다. 잔뜩 일그러지고 찌그러진 스티비의 목소리와 대비되어 프랭크의 노래는 왠지 좀 더 깔끔하고 세련되게 들린다.



이 앨범의 독특한 점 중 하나는, 수록곡마다 그야말로 '어벤져스'급으로 화려한 피쳐링 진이 표기되어 있지 않은 채 곳곳에 숨겨져 있다는 점이다. 'Pink + White'에서 코러스를 담당하는 Beyonce는 오히려 노골적으로 드러나 있는 편이다. 'Seigfried'의 감정적으로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듯한 현악 파트를 담당한 Jonny Greenwood의 이름은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으며, 'Skyline To'의 코러스를 담당한 Kendrick Lamar는 목소리의 흔적도 찾기 힘들 지경이다. 그 와중에 Andre 3000는 녹슬지 않은 랩핑으로 현 힙합씬에 대한 한탄을 토로하고 있고, 'White Ferrari'에서는 프랭크의 절규 이후 상처를 보듬어주는 듯한 James Blake의 노래가 등장하며 곡의 마무리를 장식한다. 이런 놀라운 라인업의 피쳐링진을 과시하지 않음으로써 배보다 배꼽이 커지는 상황을 방지하고 앨범 자체가 지닌 가치와 메세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한다.



몽롱한 기타 리프로 시작하는 ’Seigfried’는 중반부에 이르러 현악 연주와 함께 프랭크는 나지막히 ‘This is a fond farewell to a friend.’라고 반복해서 읊조린다. 익히 알려진 대로 Elliott Smith의 가사를 인용한 것이다. 해석에는 여러가지 경우의 수가 있겠지만, 기존의 고정관념 (보통 LGBT에 대한 사회적 시선으로 해석한다.) 에서 벗어나 자신의 신념을 지키며 살겠다는 의미로 읽는 것이 일반적인 해석이라고 볼 수 있겠다.



“ Dwell on my gifts for a second.

A moment one solar flare would consume, so I nod.

Spin this flammable paper on the film's that my life. “



‘현재에 충실하고 다가오는 운명을 기꺼이 받아들이겠다. 그리고 이 순간 자신의 인생을 기꺼이 불태우겠노라.’ 춤을 추며 절망과 싸우겠다는 검정치마의 재기넘치는 선언이 언뜻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감당할 수 없는 짐을 짊어진 대표 사례인 '시시포스 신화'의 시시포스도 결국에는 자신의 거부할 수 없는 운명을 춤추며 받아들이지 않았을까.



Skit인 ‘Facebook Story’에서는 바로 눈 앞에 있는 연인의 SNS 친구 요청을 받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별을 통보한다는 단편적인 사례로, 현대 사회의 기묘한 인간관계를 상징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Godspeed'에서는 떠나는 연인을 위해 무한한 행운을 빌어주고 언제든지 자신에게 돌아와서 쉬어도 된다며, 자신들이 죽는 그날까지 사랑하겠다는 가슴 시린 내용의 송가 이후에, 'Futura Free'가 등장하여 팬들에 대한 감사와 프랭크 자신의 신변잡기를 언급하며 앨범이 마무리된다.



이 앨범에는 독특한 점이 하나 있는데, 앨범 커버에는 ‘Blond’라고 적혀있으면서 실제 앨범의 제목은 ‘Blonde’라는 점이다. 하나의 주체에 혼재된 남성과 여성이라는 정체성. 자신이 양성애자임을 밝히기까지, 그리고 밝히고 난 이후로도 프랭크는 내적으로 분열된 자아에 대한 고뇌를 지속해온 듯 하다. 'Good Guy'의 가사를 보면, 화자는 어떤 남자와 만나 게이바에서 많은 대화를 나눴었고 Jasmine이라는 여인에게 받은 아픔으로 여성에 대한 관심을 잃고 양성애자가 되었다고 말한다. 이야기하는 프랭크의 목소리는 변조되어있다. 이 곡 뿐만 아니라 'Nikes'를 비롯한 몇몇 수록곡에서 화자의 목소리는 괴상하게 변조되어 있는데, 이는 프랭크의 내부에 존재하는 혼란스럽고 불안정한 자아들의 힘겨운 고백을 있는 그대로 드러내보이는 듯 하다. 파편화된 자아가 여러 차례 등장하는 이 앨범의 전체적 서사는 기승전결이 있다기보다는 오히려 각각의 이야기로 구성된 단편집에 가깝다.



앨범 곳곳에 등장하는 연인이라는 대상도 그 정체는 명확하게 드러나있지 않다. 진심을 나누며 인생을 함께할 동반자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든, 혹은 그저 젊은 날의 혈기로 매일 밤 서로의 욕구를 채워주는 육체적 파트너이든, 혹은 연인이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이런 혼란스럽고 분열된 화자의 서사에 청자의 해석의 여지는 무궁무진해진다. 각자 사랑하는, 혹은 사랑했던 사람을 생각하며 노랫말에 맞춰 자신의 경험을 이입하고 공감할 뿐이다.



이번 앨범의 리뷰가 주로 사운드와 가사의 내용에 치중해 있었는데, 사실 내가 프랭크의 음악을 즐겨 듣는 가장 큰 이유는 그의 목소리에서 진하게 묻어나오는 고독함, 쓸쓸함의 정서다. 연인 혹은 진심을 나누던 상대와의 이별로 인한 상실감을 노래하는 프랭크는 질질짜거나 울먹이지 않는다. 그저 담담하게 자신의 감정을 고백하고 떠나간 사람의 행복을 빌어줄 뿐이다. 그렇지만 그의 목소리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서러움과 애달픔이 있다. 그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섬세한 감수성을 지니고 있는지 그 정도를 가늠할 수 조차 없다. 마음 속의 깊은 상실이나 이별을 겪어본 사람들은 프랭크의 노래를 듣는 것만으로도 그와 깊은 정서적 교감이 가능할 것이다.



'Blonde'를 한 마디로 표현하면 '한 분야의 거장의 반열에 오른 자의 가장 낮은 자리에서의 솔직한 자전적 고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미 한 분야의 업적을 이룩한 거장이 가장 낮은 위치에서의 새로운 실험을 시도하며, 좀 더 넓은 세상을 바라보던 시선을 자신의 내면으로 돌려 사색적으로 자신이 품고 있던 생각과 감정을 충실하게 표현한다. ‘channel ORANGE’이후 발매된 ‘Blonde’는 Radiohead의 'OK Computer'의 성공 이후 발매한 'Kid A', Kanye West의 'My Beautiful Dark Twisted Fantasy' 이후 발매한 'Yeezus'와 결을 같이 한다. 전작의 성공 공식을 거부하고 한 걸음 더 나아간  그들은 대중 음악사의 한 페이지를 당당하게 장식했다. 나는 Frank Ocean이 앞서 언급한 두 아티스트와 비교하여 새 시대의 개척자로서 충분한 역할을 해내리라고 감히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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