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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누리 Jan 29. 2021

#1. 역에서 5분, 보증금 500만원, 5평짜리 집

2016년 1월, 입김이 펄펄나던 겨울날이었다. 촌스러운 빨간색 외투를 껴입고 언 발을 뒤뚱이며 부동산 문을 열었다. 내 옆엔 만년 짝꿍 ‘유은’이가 함께였다. 유은이는 어린 여자애 둘이 방 보러 왔다고 무시당할까 싶어 쭉 찢어진 눈꼬리에 힘을 주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으로 앳된 얼굴을 지울 순 없었으리라. 짤랑짤랑, 유리문에 달린 종소리와 함께 중개인이 우리를 맞았고 나는 기름난로 온기에 몸이 마른 장작처럼 쩍쩍 갈라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며 꽁꽁 언 코를 손으로 움켜쥐었다.     


“저 방금 연락드린 강보라라고 하는데요”     


바싹 얼어붙은 입을 겨우 달싹이며 기어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중개인은 반갑게 인사하며 자리를 내어주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몸을 삐걱대며 따땃하게 열 오른 의자에 앉았다.     


“역 근처에 보증금 500으로 볼 수 있는 방 있을까요?”     


18년을 청주에서 나고 자랐고, 대학조차 안성 외진 시골자락에 있었으므로 서울의 집값이란 감히 가늠할 수 없는 것이었다. 대학 졸업이 2016년 2월이었으니 졸업장도 못 딴 초년생의 방 보증금은 필히 부모님의 주머니에서 나오는 것이었다. 한국의 ‘장녀’로서 부모님의 500만원은 결코 작은 돈이 아니었다. 23살 나이에 서울로 취업을 서두르는 것도 뭇 장녀들이 떠안고 있는 책임감 같은 것이었다.     


중개인은 짐짓 난감한 표정을 짓더니,     


“볼게요”     


하곤 모니터를 들여다보았다.


나는 떨리는 마음을 애써 감추며 난로에 손을 녹였다.     


나는 어떤 방을 볼 수 있을지 기대했다. 역세권 보증금 500만원 짜리 방에 감히 ‘기대’를 하다니. 지금 생각해보면 얼마나 우스운 일인지.     


매물을 한참 뒤적이던 중개인은 어디론가 전화를 하더니    

 

“사장님~ 여기 00부동산인데요. 000에 있는 방 지금 가서 볼 수 있을까요?”     


라며, 말문을 튼 뒤 그 이후로 두어마디를 더하고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가시죠”     


나와 유은이는 들뜨면서도 걱정스런 서로의 마음을 다독이며 중개인의 뒤를 따라나섰다.     


따라가는 내내 나는 종종걸음과 뜀박질을 번갈아 해야 했다. 중개인의 걸음이 어찌나 빠른지 코와 입에서 나오는 김에 인중이 축축이 젖을 정도였다.     


처음으로 본 방은 역에서 7분정도 떨어진 골목에 위치한 단층 건물이었다. 외관은 분명 평범한 주택 같았는데 문을 열고 들어가니 영락없는 컨테이너박스였다. 거리에서 집으로 진입하는 문이 현관문이 아닌 방문이었다. 하지만 꽤나 넓었고 작은 냉장고와 에어컨이 갖춰져 있었다. 무엇보다 방이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는 것이 맘에 들었다.     


“여긴 월세가 얼마예요?”

“여긴 보증금 1000에 월세 50이에요”     


나는 얕은 탄식을 내뱉으며 살짝 뒤로 물러섰다. 나 500만원밖에 없는데... 슬쩍 옆을 보니 친구 유은이도 집이 꽤나 괜찮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어머님한테 전화해서 보증금 1000만원은 안되냐고 물어보는 게 어때?”

“1000만원? 1000만원은 너무 비싼데...”    

 

23년 인생에 1000만원이란 돈이 내 손에 쥐어진다는 건 감히 상상도 못할 일이었다.     


“역 가깝고 1000에 50이면 싼 거예요”     


중개인이 허허 웃으며 말했다. 그 뒤엔 ‘아이고, 이 아무것도 모르시는 손님아’라고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잠시 망설인 나는 집 곳곳을 사진으로 찍어 엄마에게 보냈다. 그리곤 밖으로 나와 전화를 걸었다.     


“어 엄마 나야”

- 응, 방 보고 있는 거야? 사진보니까 방 괜찮던데?

“응, 근데 좀 비싸”

- 얼만데?

“보증금 천만원이래”

- ...     


약 3초 간의 정적이 흐르고,     


- 거기가 맘에 들어?

“아직 조금 더 봐야 하는데 이정도 방 하려면 보통 1000만원은 하는 것 같아”

- 그래, 맘에 들면 해

“그래도 돼?”

- 그 정도는 있어야 한다고 하니까 어쩔 수 없지

“응, 알겠어. 방 더 보고 다시 연락할게”     


그 잠깐의 정적이 숨통을 콱 틀어막는 듯 했다. 서운함과 미안함이 흉부를 쿡쿡 찔렀다.     


“다른 방도 볼 수 있을까요?”     


중개인은 고개를 까딱이며 그러자했다.     


나는 또 다시 종종걸음으로 겨우 따라 붙으며 생각했다.     


‘그래, 잘 수만 있으면 되지. 큰 방도 필요 없어. 어차피 일 시작하면 다른 거 할 시간도 없을 거고, 잠만 잘 수 있으면 돼’     


그렇게 생각하니 보증금 1000만원짜리 집이 너무나 과분하게 느껴졌다. 이제 내가 집을 고르는 기준은 ‘풀옵션’, ‘크고 아늑한’ 따위가 아닌 ‘바닥과 천장이 있는’ 집이 되었다.     


하지만, 그것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두 번째로 간 곳은 역 3분 거리에 위치한 고시텔이었다. 보증금 100만원에 월세 15만원. 금액적으로는 정말 환상의 조건이었다. 게다가 고시텔은 티비나 영화에서 숱하게 봤기 때문에 두렵지 않았다. 그러나 나는 방송을 전공했음에도 미디어와 현실이 다르다는 것은 여전히 모르고 있었다.     


벽지와 벽 사이에 스며든 곰팡이 냄새, 못이 튀어나온 침대 헤드, 문짝이 떨어져 나간 옷장, 책상과 침대 사이의 거리는 발 하나 들어갈 정도. 한 층에 하나 있는 공용 화장실과 공용 샤워실.    

 

다른 건 그렇다 쳐도 23년 평생 달고 산 변비 때문에 공용 화장실은 도저히 견딜 수 없었다. 집에서 혼자 조용히 화장실을 독차지 하고 앉아있어도 번번이 실패하는 큰일을 누가 올지 모르는 불안감에 시달리며 볼 순 없는 노릇이었다. 그렇게 된다면 분명 나는 변을 보지 못하고 대장이 딱딱하게 굳어 병원에 실려 갈 것이 뻔했다.     


고시텔을 나오며 생각했다.     


‘그래. 바닥과 천장이 있고, 화장실이 있는 집으로 가자’     


중개인은 요새 방이 없다며 마지막 집을 보여주겠다고 했다. 벌써 마지막 집이라니. 나는 좌절했다. 이번 집마저 실패한다면 꼼짝없이 고시텔로 들어갈 판이었다. 보증금 1000만원짜리 집은 기억에서 지운지 오래였다.     


세 번째 집은 역에서 5분 거리였다. 1층엔 식당과 부동산, 2층부터 4층까지 집이 있었고, 옥상으로 올라가면 정말 바닥과 천장, 벽만 겨우 얹혀있는 증축 원룸이 있었다. 잔인하면서도 당연하게 보증금 500만원으론 건물 안에 들어올 수 없었다. 가쁜 숨을 몰아쉬며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올라 옥상문을 열어야 비로소 내 사정에 맞는 집을 볼 수 있었다.     


많은 것을 내려놓은 나와 친구 유은이는 계단을 오르며 실없는 농담을 주고 받는 경지에 이르렀다.     


“야, 이 계단 술 먹고 잘못 오르내리면 까딱하다 저 세상 가겠다”     


생각 없이 낄낄거리며 나누었던 우스개소리가 제발 나에게 일어나주길 간절히 바라게 된 건 불과 몇 개월 지나지 않아서였다.     


“여기는 보증금 500에 월세 35만원이에요”     


중개인이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아 넣으며 말했다.     


드디어! 500만원짜리 집을 만나게 되는구나.     


문이 열리자마자 5평짜리 집 내부가 한 눈에 들어왔다. 현관문 앞에 서서 보이는 것이 집의 전부였다. 키 167센티미터인 내가 세로로 누우면 딱 들어차는 폭에 현관 옆 가스레인지도 없이 싱크대만 겨우 들어가 앉아있는 주방, 다 무너져가기는 하지만 나름 옷장도 있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안으로 들어가 화장실을 찾았다. 나 하나 딱 들어가면 꽉 차는 사이즈였지만 고시텔을 보고 온 후라 화장실이 있다는 것 자체가 감사할 따름이었다.      


어디서 본대로 물도 틀어보고 변기물도 내려 봤다. 수압도 괜찮았고 물도 잘 빠지는 듯 했다. 친구 유은이 나름 만족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옥상 위에 덜렁 나와 있는 공간인지라 웃풍도 많이 들고 현관문이 얼어 삐걱댔지만 ‘집’의 모양새는 갖추고 있었다.     


더 고민할 이유가 없었다. 회사를 걸어 출퇴근 할 수 있었고, 역이 가까웠으며 집 근처엔 식당도 많았다. 편의점도 가까웠고 조금만 나가면 버거킹, 맘스터치도 있었다. 내가 생각했던 ‘바닥, 천장, 화장실’에 플러스가 되는 것들 뿐이었다.     


그 길로 곧장 부동산으로 돌아가 계약을 맺고 계약금을 50만원을 입금하였다. 잔금은 다음 주, 엄마랑 함께 다시 들러 처리하기로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부동산을 나섰다.      


그렇게 보증금 500만원, 역 5분 거리, 5평짜리 집이 나의 첫 서울집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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