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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해누리 Jan 29. 2021

#2. 월세 35만원, 휴대폰비 5만원, 월급 90만원

입사가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덜컥 집을 계약해버린 건, 마지막 학기 종강 후 닥쳐온 취업에 대한 불안감과 조급함 때문이었다. 만약 내가 이번 면접에서 떨어지더라도 월세는 계속 나가야 할테니, 나 스스로를 압박해 어떻게든 취업을 할 것이었다.     


서울로 올라가는 버스 안에서 불편한 셔츠 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차로 꽉꽉 들어찬 서울의 도로를 물끄러미 쳐다보았다.     


서울에는 정말 차가 많구나.     


면접시간은 4시. 2시간 전에 도착하여 회사 주변을 둘러보고 근처 카페에 앉아 유야무야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3시 반쯤,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나려는데 문자가 왔다.    

 

‘죄송하지만 면접 5시 괜찮으실까요?’     


나는 다시 자리에 앉으며 답했다.     


‘넵’     


4시 30분. 다 식어빠진 녹차 라떼가 든 잔과 쟁반을 카운터에 반납하고 카페를 나와 바로 옆 건물로 들어섰다. 엘리베이터를 타기 전 1층 화장실에 들어가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이빨에 립스틱이 묻진 않았는지, 양치가 덜 된 건 아닌지 확인했다.     


최종 점검을 마친 나는 곧장 7층으로 향했다. 나 홀로 차지한 엘리베이터 안이 내가 뱉은 이산화탄소로 가득 차는 듯 했다. 설렘과 긴장이 한데 섞여 자꾸만 한숨이 나왔기 때문이다.     


종강 후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딱 1주일까지였다. 2주차 때부터 마음이 불안해지기 시작해 견딜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나에게 취업해라, 빨리 나가라는 소리를 하지 않았지만 마치 식구들이 모두 나에게 그리 말하고 있는 것 같았다. 그래서 다른 길을 생각하고 고민해볼 시간도 없이 곧장 방송작가 구인 사이트를 찾았다. 배운 게 도둑질이라고. 내 전공을 살려 가는 것이 가장 빠르면서도 확실한 방법이라 생각했다.    

 

방송작가는 나의 오랜 꿈이었다. 얼마나 간절했냐면, 내 방 천장에 방송작가 미래 계획을 붙여놓고 볼 정도였다. 2년차에 입봉 하여, 7년차에 메인작가가 되고, 10년차엔 내가 기획한 다큐멘터리를 영화로 만드는 것이 나의 인생 계획이었다. 방송작가가 되는 법 따위의 책을 수집하듯 모아 읽었으며, 고등학교 때는 방송 기획안 공모전에 응모하여 1차 합격 후 2차 PT까지 다녀온 일이 있었다. 그 때의 나는 내 꿈에 꽤나 진심이었고 열정적이었다.     

내가 원하던 방송대학교에 수석으로 입학했을 때는 세상을 다 가진 듯 기뻤다. 내 꿈이 비로소 완성되어 가고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대학교 3년, 휴학 1년을 겪어내며 아이러니하게도 나는 방송작가의 꿈에서 점점 멀어져갔다. 그것에는 여러 이유가 있었는데 가장 첫 번째로 내가 재능이 없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나보다 훌륭한 이야기꾼들이 많았고, 나는 언제나 뒤처지는 듯 했다. 부정하고 싶었지만 매 학기 성적표가 나를 좌절케 했다. 그렇게 이리저리 휘둘리며 겨우겨우 3년을 버텨내고 곧장 취업의 세계로 내던져진 것이다. 어떠한 준비도 없이, 오로지 부담감만 안은 채.     


이런 저런 상념에 젖어 사무실 앞을 서성이다보니 어느덧 4시 50분. 나는 떨리는 마음으로 사무실 문을 열었다. 작은 사무실에 10명 남짓한 작가가 다닥다닥 앉아 노트북 자판을 신경질적으로 두드리고 있었다. 그 중 중앙의 큰 사각 테이블에 앉아있던 작가가 동그랗고 큰 눈으로 쭈뼛쭈뼛 선 나를 쳐다보았다.     


“아, 안녕하세요. 저 오늘 면접 보러 왔는데요...”

“아!”     


작가는 돌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더니 회의실로 종종 달려갔다. 두 번의 노크 후 문을 살짝 열고 얼굴만 불쑥 집어넣은 채 뭐라 뭐라 이야기하는 듯 했다. 잠시 후, 이야기를 마친 작가는 나에게 다가와 자리를 내어주었다.     

“지금 회의가 조금 길어져서 10분 정도 기다리셔야 할 것 같아요. 여기 잠깐 앉아계세요”     


나는 작은 목소리로 감사를 전하고는 엉덩이가 다 까진 의자에 슬쩍 걸터앉았다. 차가운 공기와 날선 타자소리만이 공간을 메우고 있었다. 작가의 말대로 10여분 후 회의실 문이 열렸다.     


“들어오세요”     


초췌한 얼굴의 메인작가가 손짓하며 나를 불렀다. 나는 벌떡 일어나 성큼성큼 회의실로 들어섰다. 회의실 안엔 모자를 눌러 쓴 피디 한 명이 앉아있었다. 모자 아래로 보이는 두 눈이 움푹 파여 있었다.     


나는 왠지 모를 한기를 느끼며 조심스럽게 앉았다.     


“뭐 마실래요?”

“아, 괜찮습니다.”

“물이라도 마셔요”     


메인작가는 비척비척 회의실을 나서더니 잠시 후, 따뜻한 물이 담긴 종이컵을 손에 들고 나타났다.     


“미안해요, 회의가 길어져서 시간이 좀 늦었죠. 어디서 왔어요?”

“청주에서 왔습니다.”

“오느라 고생했겠네, 끝나면 바로 내려가요?”

“네”     


메인작가는 나에게 의미 없는 질문을 몇 차례 건네며 눈으로 나의 이력서를 훑고 있었다. 그 옆의 피디는 거뭇한 입을 꾹 다문 채 이력서를 뒤적이고 있었다.     


“00방송대 나왔네요? 내 후배네?”

“아, 정말요?”     


메인작가는 같은 학교, 같은 과 13학번 위의 선배였다. 나는 반가운 인연에 기쁜 마음을 내색했으나 작가는 굳은 얼굴로 이력서만 내려다볼 뿐이었다.     


“촬영, 편집도 다 배운 거예요?”

“아, 네. 저희 전공 필수 과목이라 다 이수했습니다.”    

 

이번엔 피디의 질문이 이어졌다.     


“작품도 만들어봤어요?”

“네, 마지막 학기 전공 과제가 프로그램을 하나 만드는 거였습니다.”

“볼 수 있어요?”     


이건 예상 못했는데.     


나는 갑작스레 들어온 훅에 식은땀만 뻘뻘 흘리며 눈을 굴렸다. 보여줄 수 없는 결과물도 아니었고, 그렇다고 내가 안 만든 걸 만들었다고 거짓말을 한 것도 아니었다. 내가 당황한 이유는 단순했다.   

  

USB에 담아올 걸!     


피디는 그런 나를 눈치 챘는지 지금 다운 받을 수 있는 방법이 있느냐 물었다.     


“아마 제 메일함에 있을 거예요”

“그럼 USB 줄테니까 밖에 아까 그 작가한테 가서 받아올래요?”

“아, 넵!”     


피디는 회의실 PDP에 연결되어있던 노트북에서 USB를 뽑아 나에게 건네주었다. 나는 그걸 받아들고 무슨 대단한 미션이라도 하는 양 우당탕탕 뛰쳐나가 눈이 동그란 작가를 찾았다.     


“작가님, 혹시 저 노트북 잠깐만 써도 될까요? 뭘 다운 받아야 해서요”

“아, 네!”     


눈이 동그란 작가는 냉큼 자리에서 일어나 흔쾌히 노트북을 내어주었다. 나는 최대한 민폐가 되지 않으려 우주의 기운을 끌어 모아 포털사이트 접속, 로그인, 메일함 뒤지기, 다운로드를 단 2분 만에 해내었다.     


나는 쿵쾅대는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붉은 얼굴을 잔뜩 숙이고 회의실 노트북에 USB를 꽂았다. 솔직히 영상은 자신 있었다. 작품 시사 때도 꽤나 좋은 반응을 얻었었고, 성적까지 잘 받았기 때문이다.     

 

조별과제였고, 기획부터 촬영, 편집까지 모두 내 주도하에 이루어졌다. 편집 때문에 이틀 밤을 꼬박 샜고 촬영 때문에 주말도 없이 2주를 버텼다. 그만큼 내 혼이 녹아든 작품이었다.     


제목은 ‘편의점 미식가’. 대략적인 기획은 이랬다. 편의점에서 살 수 있는 재료로 레시피를 만들어 리스트화한 후 실제 길거리에서 시식 행사를 진행했다. 행인들은 시식 후 가장 맛있게 먹은 음식에 투표하고, 투표 결과에 따라 순위를 매긴 뒤 스튜디오로 들어와 MC와 출연진들이 먹어보고 평가하는 형식의 예능프로그램이었다. 거기에 일본의 유명 드라마 ‘고독한 미식가’ 패러디 콩트를 인트로, 아웃트로에 배치한, 나름 공 들인 프로그램이었다.     


약 10여분 가량의 상영이 이어졌다. 학교 교수님, 학과생들 외에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이었다. 나는 어색하게 웃으며 수시로 작가와 피디의 얼굴을 살폈다. 피디는 중간 중간 웃음 포인트에 소위 ‘빵빵 터져’ 소리 내어 웃기도 했다. 그 웃음소리가 A+성적표보다 더 큰 희열을 주었다.     


영상이 끝난 후, 호평이 이어졌다.     


“재미있네”

“구성이랑 기획도 좋고”     


나는 기분 좋은 예감에 함박웃음 지으며 연달아 감사를 전했다.     


“근데...”     


훈훈한 분위기 속 작가가 나직이 말을 이었다.     


“이 일 할 수 있겠어요? 방송대 나왔으니까 방송일 진짜 빡센 건 알고 있죠?”

“네”     


어느 정도는 각오하고 있었다. 현장에 계시는 교수님, 쓸데없이 번질나게 학교를 드나드는 졸업생들의 이야기로 이미 여러 번의 가상 시뮬레이션까지 마친 후였다. 작가는 나의 단호한 대답에도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     


“상상 이상으로 힘들 거예요.”

“왜 겁을 줘?”     


피디가 난감하게 웃으며 작가를 말리고 들었다.     


“들어오기 전에 미리 말해야 정확히 판단하지”

“저...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어요.”     


나의 대답에 작가는 의아한 표정을 지어보이며 나를 바라보았다.   

  

“이 근처에 집 구했거든요”

“뭐? 아니 안 되면 어쩌려고?”     


작가는 기함하며 물었다.     


“안 되도 어떻게든 취업해서 어떻게든 버텨야 해요. 부모님이 해준 돈으로 겨우 올라왔는데 미안해서라도 포기 못해요.”     


왜 이 얘기를 하게 됐는지, 왜 이 얘기를 하면서 울컥 눈물이 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나는 눈물을 들키지 않으려 고개를 숙였다. 너무 창피했다. 면접자리에서 이게 무슨 일이람.     


하지만 작가와 피디는 그런 나를 눈치 채고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었다. 얼른 휴지 한 장을 뽑아 눈물을 훔치는 나를 작가는 넌지시 바라보고 있었다.     


나는 금세 마음을 추스르고 면접을 10여분 가량 더 이어나갔다. 면접이 끝난 후 작가의 배웅을 받으며 건물을 나셨다. 후련하면서도 아쉬운 마음이 들었다. 엄마에게 면접이 끝났다는 문자를 남기고 곧장 터미널로 향했다.     

청주로 내려가는 버스 안. 잠도 오지 않았다. 앞날에 대한 걱정과 오늘 면접장에서 눈물을 쏟았던, 쪽팔린 기억이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나는 애써 지난 일을 잊으려 귀에 이어폰을 꼽았다.     


얼마가 지났을까. 가물가물 잠이 오려던 차에 휴대폰이 ‘우웅’ 하고 울렸다. 나는 흐린 눈으로 휴대폰 화면을 켜보았다. 면접 때문에 저장해두었던 작가의 연락처였다.     


‘000에 000작가입니다. 다음 주 월요일부터 출근 가능하신가요?’     


합격 문자였다. 마치 예정된 일이었던 것처럼 놀랍지도 않았고, 기쁘지도 않았다. 그저 이제 정말 일을 해야 한다는 사실이 가슴을 무겁게 짓눌려왔다. 나는 어둠 속을 더듬어 답했다.    

 

‘네! 가능합니다. 혹시 제가 따로 챙겨야 할 것 있을까요?’

‘10시까지 오늘 오셨던 곳으로 출근하시면 되고, 노트북이랑 필요한 필기구만 챙겨 오시면 됩니다.’     


아, 노트북. 그 고물 노트북을 짊어지고 가야 한다니.     


대학교 입학할 때 샀던 노트북은 험난한 대학생활을 함께 하며 망가질대로 망가져있었다. 무겁기는 또 어찌나 무거운지, 마치 큰 벽돌 하나를 이고 다니는 듯 어깨 통증을 유발했다.     


이런 저런 잡념에 쌓여있던 차, 문득 가장 중요한 걸 확인해보지 못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월급은 얼마인가요?’     


몇 차례 망설인 끝에 물었다. 워낙 이쪽이 박봉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적어도 100만원은 되겠지, 하고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다. 답을 기다리는 5분 가량이 너무나 길게 느껴졌다.     


마침내, 답이 왔다.     


‘내부 규정상 막내 작가 월급은 80만원이에요’     


덜컥, 모든 장기가 주저앉는 것 같았다. 머리가 새하얘지고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월세랑 휴대폰비만 해도 40만원인데, 월급이 80만원이라니.     


정말 말도 안 되는 금액이라고, 조금 더 줄 순 없냐고 묻고 싶었지만 어떻게 말을 풀어써야 할지, 도통 정리가 되지 않았다. 그때, 기가 막힌 타이밍으로, 내 80만원 취업길에 20%정도의 지분률을 갖고 있는 교수님께 문자가 왔다.     


‘면접은 잘 봤니?’     


나는 그에 하소연 하듯 답했다.     


‘네, 저 붙었어요. 근데 월급이 80만원이래요...ㅠㅠ’

‘헉; 요새도 그렇게 주는 데가 있어?’

‘어떡해요?’

‘거기 메인피디나 메인작가한테 한번 얘기해봐. 100만원은 맞춰줘야지’     


썩 도움이 되는 답변은 아니었다. 무려 2016년도에 월급 100만원이라도 달라고 사정해야 하는 꼴이라니. 정말 참담하기 그지없었다. 하지만 나는 일을 해야 했고, 어쨌든 시작을 해야 했다. 20여분 간의 고민 끝에 나는 조심스럽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     


‘저... 작가님. 저 월세가 40만원인데 80만원으로는 도저히 생활이 안 될 것 같습니다... 조금만 더 주실 순 없나요?’

‘아... 대표님하고 얘기해볼게요’

‘감사합니다’     


그것이 출근 전 마지막 연락이었다.     


그 주 주말 간, 집을 계약하고 짐을 옮기고 5평짜리 서울집에서 첫 하룻밤을 지내고 나니 바로 첫 출근날이 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벽돌보다 무거운 노트북을 짊어지고 30분을 걸어 9시 반에 출근했다. 그리고 1시간 가량을 멀뚱히 앉아있어야 했다. 10시 출근이라더니, 나에게 인수인계를 해줘야 할 선임자가 제일 먼저 출근했음에도 불구하고 10시 반이 넘어가는 시간이었다.     

     

정신없이 인수인계를 받고, 점심시간이 다 되어서야 출근한 서브 작가들과 점심밥을 먹고 커피 한 잔하고 들어와 다시 인수인계를 받고. 오후 4시가 넘어서야 메인작가가 반쯤 감긴 눈을 하고 사무실에 모습을 보였다.     


“잠깐만”     


메인작가는 곧장 나를 장비실로 불러냈다. 좁아터진 방에 카메라며, 마이크며 하는 촬영 장비들이 빼곡이 들어차있었다. 그 좁은 공간에 둘이 마주서니 숨결이 닿는 듯 했다.     


“월급 관련해서 대표님하고 얘기해봤는데”

“네”     


일생일대의 긴장감이었다. 마른침이 목을 타고 넘어갔다. 침 넘기는 소리가 문 두드리는 소리보다 더 크게 들렸다. 과연, 내 월급은 어떻게 되는 걸까.     


“10만원 올려서 90만원으로”     


100만원도 되지 않은 그 금액에 나조차도 놀라울 정도로 담담했다. 아니, 나는 체념했다.  

   

그래, 10만원이라도 올린 게 어디냐. 버텨보자. 어쨌든 월세랑 휴대폰비 내고도 50만원 남으니까. 어떻게든 되겠지.     


하는 생각으로 나를 달래면서도 왠지 쓴맛이 나는 침을 힘겹게 삼키며 장비실을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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