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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Page M Jun 01. 2020

[토요 호러가이드] 살아있는 짐 자무시의 밤

영화 <데드 돈 다이(Dead don't di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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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라인 김혜민



외면받아 숨기고만 있던 취향, 매주 하나씩 <호러 상자>를 열어보자.


‘짐 자무시’ 하면 어떤 영화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지? 아마 <커피와 담배>일 것이다. 나는 커피도 마시지 않고 담배도 피우지 않던 때 그 영화를 처음 봤다. 커피포트에 보드카를 부어 마시던 빌 머리와 운동화로 말다툼을 하던 남매가 생생하다.


다음으로 좋아하는 짐 자무시의 영화는 <지상의 밤>인데, 럭키스트라이크를 피우던 위노나 라이더의 앳된 얼굴과 승객과 기사와 자리를 바꿔 앉아 운전하는 법을 가르쳐주던 뉴욕의 밤이 떠오른다

<패터슨>,  <브로큰 플라워> 등 짐 자무시의 감성이 녹아있는 영화는 보지 않아서 <데드 돈 다이>에 ‘짐 자무시답지 않다’는 평이 달린게 의아했다.

내게 짐 자무시는 잔잔한 유머를 구사할 줄 아는 사람이다. B급 감성이 풍기는 좀비 영화에서 짐 자무시다움을 어떻게 찾을지는 관객의 몫이다.

그래서 나한테 만족스러웠냐고? 아주 만족스러웠다.


원체 소박한 배경을 담은 작품을 주로 찍던 감독이니 이번 영화 역시 한적한 시골이 배경이다. 하지만 캐스팅을 보면 빌 머리, 애덤 드라이버, 틸다 스윈턴, 스티브 부세미, 이기 팝, RZA, 셀레나 고메즈 등 이렇게 화려할 수가 없다.


이 영화에서 가장 먼저 찾을 수 있는 ‘짐 자무시다운’ 모습은 클래식함과 오마쥬다. 다만 이번엔 누벨바그 감독이 아닌 좀비 영화의 아버지, 조지 로메로다. 포스터 폰트부터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이다.


▲데드 돈 다이 포스터 <사진=유니버셜 픽쳐스>


▲클리블랜드 출신 '힙스터'들이 몰고 온 차는 <살아있는 시체들의 밤>에 나온 것과 같은 종류다.


<세계대전 Z>의 저자 맥스 브룩스는 ‘좀비는 뇌가 다시 살아나 죽은 몸뚱이를 쓰는 것이므로 신체 능력은 갈수록 떨어진다’고 했다. 하지만 요새 좀비 영화에 나오는 좀비들은 어떤가. ‘태양의 서커스’ 단원이 아닐까, 우사인 볼트의 친척이 아닌가 싶도록 뛰고 날고 재주도 넘고 온갖 퍼포먼스를 선보인다. 그에 비해 <데드 돈 다이>의 좀비들은 참 정직하다. 뛰지 못하고 느리게 걸으며 생전 마지막 기억만을 반복한다. 이 또한 짐 자무시답지 않은가.


▲아이들은 간식거리를 찾는다.


▲성인은? 아, 익숙하다. 나도 매일 찾는다(시리는 아니고 오케이, 구글! 이지만).


영화 내용은 ‘한적한 마을에 갑자기 출현한 좀비 무리로 난리가 난다’가 전부다. 밋밋한 설정은 개성 넘치는 캐릭터들이 채운다.
             

▲"어떻게 끝이 안 좋을 거라고 그렇게 확신해?"라는 질문에 애덤 드라이버는 "대본을 다 읽었거든요"라고 대답한다.


▲배신감에 치를 떠는 빌 머리..


▲빌 머리는 캐스팅 여부를 당일 촬영장에 나타나는지로 알 수 있는 배우다.


먼저 <패터슨>의 주인공 애덤 드라이버는 “끝이 안 좋을 거예요”를 달고 사는 경찰이다. 빌 머리는 큰  없이 은퇴하겠다는 생각을 하던 서장이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는 존재하는 법. 짐 자무시가 빌 머리에겐 쪽대본만 준 것도 그렇다.

      

▲도복, 일본도, 부처상. 서양의 '오리엔탈리즘'이란.


▲틸다 스윈턴은 장의사 역할로 나온다.


틸다 스윈턴은 <닥터 스트레인지>에서 보였던 모습을 그대로 갖고 있다. 다분히 동양적인 문화에 심취한, 그러나 외모는 그 어떤 부분도 동양적이지 않은 캐릭터. ‘통대본에도 없는’ 설정도 하나 숨어있다.   


▲원래는 'Make America Great Again'이다.


스티븐 부세미는 뭐, 모자만 봐도 알 수 있다(심지어 옆자리에 앉아있던 주민은 흑인이다).

짐 자무시는 영화의 마지막에 대놓고 메시지를 전한다.
             

▲이 모든 사태를 관망하는 사람은 숲에 사는 괴짜 주민이다.
▲특이하게도 좀비 머리를 자르면 피가 아니라 먼지가 나온다. 영혼이라고 보면 될까?


자, 그럼 이게 정말로 짐 자무시가 영화를 통해서 하고 싶었던 말일까? 자기도 모르게 그저 웃자고 만든 좀비 영화에도 사회적 메시지를 던져야 한다는 강박에 시달린 걸까?

글쎄, 내가 보기에 위 장면에서 짐 자무시가 하고 싶었던 말은 ‘세상이 엉망진창이다’ 뿐이다. 물론 영화를 통해 던지는 메시지도 있다. 짐 자무시는 (본인은 아니라고 했으나) <데드 돈 다이>에서 트럼프 정권을 비판한다.

<데드 돈 다이>에서 좀비가 깨어난 이유는 지구 자전에 문제가 생겼기 때문이다. 왜 문제가 생겼냐면, 물·모래 등을 혼합한 화학물질을 고압으로 분사해 지층 3km 아래인 셰일층에서 석유와 가스를 분리하는 공법인 ‘프래킹’ 때문이다.

오바마 정권 당시 프래킹 공법은 금지였으나 트럼프 정부에서는 이를 완화했다. 짐 자무시 감독은 “자연이 너무 빠른 속도로 퇴화하는 게 걱정스럽다. 인간이 지구에 안 좋은 영향을 끼쳐 미래 세대를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고 말했다.


겨우 이걸로? 라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아 글쎄 스티브 부세미의 모자를 보시라니까.


은근한 유머에 재능이 있다고 했던 것처럼, 애덤 드라이버와 틸다 스윈턴이 <스타워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는 장면도 있고 <부산행>을 오마주 한 장면도 있다. 그리 잔인하지 않으니 이 영화가 좋은지, 싫은지, 짐 자무시다운지, 아닌지는 보고나서 판단하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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