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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주승 Aug 25. 2022

내성적인 사람이 토론에서 살아남는 법

토론을 잘하기 위해서는 화려한 언변 이상의 무언가가 필요하다.

이 글을 읽기 전에 잠시 토론에 대한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단어나 색깔 등 머릿속에 떠오르는 어느 것이든 다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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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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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토론을 잘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려보자.

어떠한 이미지가 떠올랐는가? 


누군가는 TV에서 자주 볼 수 있는, 소위 말 잘한다고 불리는 논객이나, 특정 분야의 전문가를 떠올렸을 것이다. 또 다른 누군가는 성격이 외향적이고 다른 사람 앞에서 말하는데 거리낌이 전혀 없는 사람의 이미지를 떠올렸을 것이다. 각자 떠오르는 이미지는 달라도, 아마도 내성적인 사람의 이미지보다는 말 잘하고 외향적인 누군가를 더 많이 떠올렸을 것이다. 


토론에서는 대중 앞에서 여러 사안에 대해 논리적으로 설득력 있게 말해야 하다 보니까, 많은 사람 앞에서 말하는 데 거리낌이 없고 타인과 함께 시간을 보내는 데서 힘을 얻는 외향적인 사람이 토론자로서 더 적합해 보일 수 있다.


그런데 이렇게 생각하기 시작하면, 게다가 내가 내성적인 사람이라면, 이러한 이미지는 토론을 시작하는 데 장애물이 된다. 토론은 주로 말 잘하는 사람이 하는 것, 말 잘하는 사람은 외향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우리가 토론을 경험해 보기도 전에 토론에 겁을 먹고 시작조차 하지 않게 만들곤 한다.


이런 사람은 이것을 기억하자. 토론에서 말을 잘하는 것은 토론하는 데 필요한 여러 역량 중 하나일 뿐, 토론을 잘하는 데 절대적이고 가장 중요한 요소는 아니라는 것을. 그러고 나서 ‘토론 잘하는 사람’의 이미지를 다시 그려보자. 토론을 잘하는 사람의 이미지가 하늘을 찌를 듯한 자신감을 보이고, 언변이 유창하며 귀에 쏙쏙 박히고, 확신에 찬 어조를 구사하는 것과 같은 상이라면 이를 재정의해보는 것이다.



실제로 국제적으로 유명한 토론자를 보면 내성적인 사람도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세계토론대회 우승자라고 해서 꼭 언변이 화려하거나 청중과 소통하는 것을 즐기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토론에서 두각을 나타낼 수 있는 이유는 토론을 잘하는 데는 말하는 기술 외에도 논제를 분석하는 사고력 등 여러 역량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토론을 잘하는 데 단순히 말 잘하는 것을 넘어 여러 요소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면 직접 토론을 파고들어 봐야 이를 몸으로 깨닫게 된다. 이 과정을 거치면 내성적인 사람이나 토론에 막연한 두려움을 가진 사람이더라도 토론과 더 친하게 지낼 수 있다.



이를 위해 먼저 토론을 보며 토론자의 발언 내용을 끝까지 파헤쳐보는 과정을 딱 한 번만이라도 거쳐보자. 노트와 펜을 또는 컴퓨터나 패드 메모장을 열어두고, 토론을 들으면서 주요 내용을 필기해보는 것이다. 이 과정을 거치면 소위 토론 고수라고 하는 사람이나 TV토론에 초청된 전문가 패널의 말에서도 논리적 결함이나 설득력이 떨어지는 부분을 꽤 많이 발견하게 될 것이다. 그냥 들었을 때는 역시 똑똑하고 말 잘하네, 라며 넘어갔을 부분도 집중해서 들으면 완전히 다르게 다가올 수 있다. 이렇게 하면 제삼자의 입장에서 해당 토론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게 되고 단지 말을 수려하게 하는 것은 토론의 일부라는 것을 알게 된다.


비슷한 사례로 '알쓸신잡2' 제작발표회에서 편집본이 아닌 무삭제 영상을 공개해달라는 시청자들의 요구에 나영석 PD가 답한 내용을 보자.

“저희가 확실히 말씀드리겠다. 예를 들면 유시민 선생님이 여러 역사를 말씀하신다. 그런데 나중에 찾아보면 다 틀린 이야기들이다. 그런 게 매우 많아서 편집하면서 알게 된다. 어쨌든 시청자 분들에게 잘못된 정보를 알려드릴 수는 없다. 그래서 고르고 골라서 방송에 내보내는 것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누가 틀린 사실을 말했다, 가 아니다. 방송에 나오는 여러 전문가, 달변가도 틀린 사실을 전할 때가 있고 이를 유심히 관찰한 사람만이 사실의 진위와 논리 구조를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수많은 토론 경험이 있는 사람도 이런 실수를 하는데, 단지 보이는 것만으로 자신감을 잃고 토론에 임하지 않는 것은 안타까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렇게 토론에서 필요한 역량의 면면을 이해했다면 자신의 강점을 찾아보자. 자신이 방대한 자료를 조사하여 찾기 쉽게 정리하는 데 강점이 있을 수도 있고, 찾은 정보를 바탕으로 청중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논리를 구조화하는 데 강점이 있을 수 있다. 아니면 논제를 보고 제한된 시간 내에 다각도로 해석하는 데 강점이 있을 수도, 상대방의 논리를 들으면서 오류를 찾는 데 강점이 있을 수도 있다. 단순히 토론을 토론 능력으로 접근하지 말고 토론에 필요한 능력을 쪼개 보고 나는 무엇을 잘하는지 최소 한 개는 찾아보자. 


이 과정을 거치면 토론에서 나만의 무기가 하나 정도는 생긴 느낌이 들 것이고, 이는 나의 역량을 신뢰하는 데 자신감을 높이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이후에는 되도록 토론을 많이 해보면서 내가 잘하는 부분을 다듬고 청중 앞에서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고 말하는 데 익숙해지자. 운동을 배우는 과정처럼 처음엔 어려웠던 것들도 경험이 늘어남에 따라 빠르게 익숙해질 것이다. 그러니 아직도 토론이 무섭거나 나와는 맞지 않는다는 생각이 든다면 왜 그런지 생각해보고, 내가 잘하는 것으로 관점을 옮겨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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