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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나의 대화 나의 노래 Oct 11. 2023

 '요시토모 나라' 전시를 보고

지난 여름 오사카 국립국제미술관에 갔었다. 1층 뮤지엄샵에도 들러 구경했는데 유독 한 작가의 도록, 엽서, 굿즈 등이 많이 진열되어 있는 게 눈에 띄었다. 요시토모 나라. 그는 일본 사람들이 많이 좋아하고 자랑스러워하는 ‘국민화가’ 같았다.     


그는 주로 단발머리 소녀를 그린다. 귀엽고 사랑스러운데 마냥 그렇게만 보이지 않는다. 자기 주관과 개성이 뚜렷해 남이 시키는 대로 행동할 것 같지 않다. 오랫동안 단발머리 헤어스타일을 고수하고 있는 나는 아이 모습이 어쩐지 익숙하고 동질감이 들어 지나치지 못한다. 엽서 하나를 샀다. 남편은 엽서와 나를 번갈아 보더니 셀카 사진을 찍은 거냐고 했다.


일본 여행에 다녀온 후 나는 요시토모 나라가 더 궁금해졌다. 마침 ‘프리즈 서울 2023’과 더불어 그의 개인전이 우리나라에서 18년 만에 열렸다. 전시 장소는 한남동의 ‘페이스갤러리’. 페이스갤러리는 뉴욕에 본점을 두고 있는 해외갤러리로 그동안 메리 코스, 키키 스미스 등의 전시를 열었다. 미술관 건물 자체도 건축미가 있어 가보고 싶었던 미술관.


요시토모 나라의 작품은 사실 단순하고 대중적인 이미지의 팝아트라 화면이 아닌 실제로 봤을 때 대단히 큰 감흥이 느껴질 거라고는 기대하지 않았다. 그러나 전시를 보니 역시 미술관에 직접 와서 작품을 봤을 때만 느낄 수 있는 분위기와 감성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번 전시는 회화가 아닌 도자기 작품이 주였다. 차분하고 다소곳한 느낌이 드는 도자기에 굵은 선으로 자유분방하고 재기발랄하게 그려진 소녀의 얼굴. 거기에 ‘Hey ho let’s go!‘, ‘Today is your day! 와 같이 간결하지만 분명한 메시지가 같이 쓰여있다. 당찬 작품들에 절로 통쾌해졌다.  

   

또한 캔버스 작품에서는 잘 느끼지 못했던 작가의 일본인 정체성이 도자기 작품에서 물씬 풍겨 나와 작가가 가진 고유한 세계가 더 잘 보이는 듯했다.     


삐걱거리는 나무 바닥, 오래된 칠판, 사다리 등으로 옛 교실 모습을 재현해 놓은 전시 공간은 시골의 작은 학교에 다녔던 일곱 살 때를 떠오르게 했다. 나도 아주 작은 아이였던 시절이 있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는 것만으로도 잠시 쉬어가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이 조금 편안해졌다.     


어떤 작품은 도현이가 어릴 적 좋아했던 애니메이션 ‘바바파파’의 ‘바바벨’ 캐릭터를 닮은 것 같기도 했고, 또 어떤 작품을 볼 때는 스페인 작가 에버 알머슨의 그림이 생각나기도 했다. 거짓 없이 행복한 얼굴들은 비슷한 구석이 있나 보다.      


전시를 보고 나서 1층에 있는 오설록 카페에 갔다. 카페는 페이스갤러리와 협업하여 차와 함께 예술작품을 즐길 수 있게 해놓았다. 요시토모 나라의 도록도 다양하게 구비되어 있어 전시의 여운을 이어가기 좋았다.    

  

<아주 어른스러운 산책>이라는 책을 읽고 일본에 가게 되었고, 일본 여행 중 우연히 사게 된 엽서 한 장이 <요시토모 나라 개인전>을 찾게 했다. 책이 여행으로 이어지고, 여행이 전시로 이어지고, 이런 연속성이 나는 정말 좋다. 삶이 괜찮다 느껴질 만큼.      


가브리엘 제빈의 신작 소설 <내일 또 내일 또 내일>을 재미나게 읽고 있는데 ‘나라 요시토모의 천진함을 가장한 악동 그림’이라는 문장이 나온다. 엊그제 본 전시의 작가를 소설 속에서 다시 만날 때. 반가움에 나는 책 한쪽 귀퉁이를 접어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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