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태이 Jul 25. 2022

권태로운 시간 보내기

세상을 외면하고 싶을 때

누구나 꾸준함이 중요하다는 건 알고 있다. 하지만 그 꾸준함의 시간 중에 권태가 찾아올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아는 사람은 그다지 많지 않은 것 같다. 누구나 호기롭게 새로운 도전을 시작하지만, 끝까지 완주하는 것은 어렵지 않은가. 무더운 바람과 축축한 비가 오락가락하는 요즘, 나의 권태기에 대해 이야기해보고 싶다.


첫 번째 권태: 뉴스 보기

대통령이 바뀐 이후 뉴스나 기사를 보기 어려워졌다. 매일 들려오는 비상식적인 일과 그걸 자극적으로 전달하는 기사 제목. 그리고 피해자 보단 가해자의 서사를 더 많이 담는 기자의 글. 뉴스는 기사보다 그나마 덜 한 편이다. 아마도 귀로 듣는 게 눈으로 읽는 것보단 쉬워서 그런가. 소리는 지나가고 없어지지만 글은 읽고 나서도 계속 다시 읽게 되니까.

오늘도 나를 진절머리 나게 한 기사 중 하나는 한 대학교에서의 강간치사 사건에 대해 여성가족부 장관이 언급한 내용이었다. 젠더갈등의 문제가 아니라 안전의 문제라는 거다. 안전...? 일상에서 만연한 강간 문화가 문제지 안전이 문제라고? 그리고 뜬금없이 덧붙였다는 디지털 성범죄의 피해자 20%가 남자라는 말까지. 마지막으로 남자들은 가부장적 지위를 못 누리고 사는데 결혼할 때는 집을 해와야 한다는 압박감을 받는다나 뭐라나. (누가 집 해오래...? 결혼은 하고 싶고 가부장으로 자존심도 세우고 싶은데 그럴 껀덕지가 없어서 그런 거 자나ㅎㅎ) 이런 식의 말도 안 되는 뉴스들이 범람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뉴스나 기사를 피하는 게 당연해졌다.

그래도 일말의 남은 양심으로 시사 주간지인 시사인을 꾸준히 읽고 있다. 시사인이 그래도 조금 다른 건, 하나의 주제에 대해 반대되는 양쪽의 시각을 모두 보여주려고 노력하는 글들이 많다는 점이다. 읽는 재미도 있고 도움도 된다.



두 번째 권태: 운동하기

누군가에게 여름은 몸을 드러내고 자랑하는 계절이지만, 나에게는 체력이 떨어지고 골골대는 계절이다. 본디 몸이 약한 탓에 매년 여름이 오면 에어컨 바람 맞고 콜록콜록 기침하는 게 당연했다. 특히 올해는 코로나에 걸리면서 목감기 여파가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 그 와중에 운동은 무슨. 점점 운동에 대한 흥미가 떨어져 간다. 그리고 최근 날씨가 운동 권태기를 불러온 이유이기도 하다. 무슨 비가 한 달씩이나 내려. 우기가 시작되기 직전에 등산을 해보려고 등산화를 샀지만, 정작 1번밖에 못 신었다. 달리기도 비 맞으며 뛰면 감기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

물론 알고 있다. 집에서 운동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것. 날씨든 건강이든 다 핑계고 꾸준히 하면 할 수 있다는 것. 그런데 한 번 어긋난 운동 사이클을 다시 맞추기란 쉽지 않았다. 그래도 최근에 다시 시작하려고 노력한다. 다시 사이클에 진입하면 원치 않아도 계속하게 된다는 걸 이미 경험해봤기 때문에.


세 번째 권태: 책 읽기

뉴스와 기사를 보지 않게 되는 맥락과 맞닿아 있다. 세상이 어지럽게 돌아가는데 굳이 내가 읽는 책까지 어려운 걸 읽어서 내 머리 속도 어지럽게 만들 필요가 있을까? 이런 생각으로 요즘은 페미니즘 책을 손에서 놓고 있다. 서가에는 아직도 질 좋은 책들이 많이 출간되고 있지만, 최근에 '이 책을 사서 꼭 읽어야지'라는 생각을 가져본 적은 없다.

책에 대한 권태는 유난히 나를 불안하게 만든다. 활동가로서나 대학원생으로서나 어떤 방식이든 텍스트는 계속 읽어야 한다. 많이 생각하고 쓰고 싶다면, 그것보다 몇 배는 더 많이 읽어야 한다. 다독, 다작, 다상량이 중요한데 그중에서도 나는 다독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입력이 있어야 출력이 있는 셈이니까.

그래서 요즘은 페미니즘 책보단 다른 종류의 책을 더 읽는다. 주로 에세이집을 읽는 편. 책의 본질은 재미라고 말하는 사람으로서, 내가 관심 있고 확 끌리는 책을 찾아 읽는다. 이렇게 해서라도 책 권태기를 빨리 끝내고 싶다.


세 가지 권태 모두 한동안 계속 이어질 것 같다. 그래도 포기하지는 않으련다. 시사인을 꾸준히 읽고 있고, 운동은 다시 사이클 안에 들어가기 위해 애쓰고 있고, 관심 있는 책을 읽으며 감을 잃지 않으려 노력하고 있으니까. 각고의 노력으로 지루한 시기를 버텨내면 자연스럽게 다시 활력이 찾아오겠지. 아 그때까지 페미니즘 에세이도 꾸준히 써야겠다. (쓰려고 노력해야겠다...ㅎㅎ)

매거진의 이전글 남성은 페미니스트가 될 수 있을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