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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태이 Jul 29. 2022

우영우는 되고 전장연은 안 되는 이유

사회적 약자를 바라보는 이중잣대

요즘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줄여서 '우영우')가 핫하다. 어찌나 인기가 많은지 관련된 주식을 가지고 있던 이들이 쾌재를 부른다는 소식이 뉴스 기사를 통해서 알려질 정도다. 인스타그램에는 드라마의 명장면과 등장인물 간에 하는 인사법을 따라 하는 영상들이 넘실댄다. 확실히 남녀노소에게 많은 인기를 얻고 있는 것 같다. 드라마의 주인공은 자페 스펙트럼과 뛰어난 두뇌를 동시에 가지고 있는 변호사이다. 그렇기에 시청자로 하여금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장애인에 대한 고민을 하게 한다. 바로 이 부분이 드라마의 인기 요인 중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다.


일상 속 마주치는 장애인에 대한 감각을 건드리는 또 하나의 이야기가 있다. 드라마나 영화처럼 픽션이 아닌 논픽션, 진짜 우리 일상의 일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줄여서 '전장연')가 하는 지하철 시위다. 전장연은 서울 지하철을 위주로 출근 시간과 퇴근 시간에 지하철 안에서 시위를 하고 있다. 지하철은 지연되고, 사람들의 출근과 퇴근 시간은 늦어진다. 누군가는 전장연을 비난하고 누군가는 두둔하지만, 그들의 언어를 그대로 옮기기보다 드라마 '우영우'와 전장연의 시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 차이에 관해 곱씹어보고 싶었다. 사람들은 왜 우영우와 전장연을 다르게 볼까? 그렇게 보게 된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일까? 그런 시선을 가질 수밖에 만드는 사회적 구조는?


출처: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 페이스북 게시물 캡처

우리 모두는 타인의 삶에 무지하다. 세상을 바라보는 세계관과 가치관은 자신의 경험과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이들의 이야기로 구성된다. 그렇게 구성된 가치관은 (물론 변화를 거듭하지만) 생각보다 단단하게 우리 삶을 통제한다. 알게 되면 보이고, 보이면 관심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면 사랑하게 된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즉 사랑하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는 거다. 그가 누구인지, 과거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지금의 모습은 어떤지 등등.


우영우와 전장연을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각 차이는 여기에서 출발한다. 시청자는 드라마의 회차가 거듭될수록 우영우라는 캐릭터와 그의 과거 삶에 대한 정보를 습득한다. 동그라미라는 친구와 어떻게 친해졌고, 왜 김밥을 세로로 먹는지와 같이 과거로부터 출발해 현재까지 이어지는 습관, 관계, 기억 등을. 이렇게 얻게 된 정보는 시청자가 우영우를 사랑하게 되는 기본 재료로 쓰인다. 


반대로 전장연 시위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어떠한 정보를 어디에서 얻고 있을까? 주로 뉴스 기사의 헤드라인을 통해 시위 사실을 접하고, 그들이 정부에 요구하는 바 몇 줄을 기사 내용을 통해 알게 된다. 특히 전장연이라는 단체로 묶인 활동가 개개인의 삶의 서사는 어디에 가서도 듣기 어렵다. 전장연 활동가에게도 동그라미 같은 친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싶어 하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누가 알려준다고 하더라도 제대로 듣기나 할까?


개인 삶과 서사에 대한 앎의 부족뿐만 아니라 드라마와 현실이 가지는 근본적인 차이도 사람들의 시각 차이에 영향을 준다. 드라마에서 우영우라는 캐릭터는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지만 똑똑하다. 세부 법 조항을 전부 달달 외워 멈춤 없이 말할 정도로. 그렇게 똑똑한 두뇌를 가지고 변호사라는 직업인으로서 법조 문제를 해결한다. 물론 중간중간 다른 이의 도움을 받지만 결국 우영우는 맡은 사건에 대한 변호를 성공적으로 해내거나, 실패하더라도 그로 인해 한 단계 성장한다. 우영우는 전문직업인으로서 변호사로 일한다. 변호사는 우리 사회에서 고임금을 받으며 사회적 대우를 받는 직업 종류다. 시청자들은 자폐 스펙트럼을 가지는 장애인이면서 놀라울 정도의 지식 능력으로 변호를 해나가는, 그래서 돈과 명예를 모두 누리는 우영우를 매회 화면을 통해 확인하는 셈이다. 여기에 배우의 연기가 보여주는 '귀여움'까지. 정말 안 빠져들 수가 없는 캐릭터다.


그러나 현실은 드라마와 다르다. 여남 간의 연애, 결혼, 배신을 다룬 드라마에 사람들은 현실은 더 심하다고 종종 얘기하지 않는가. 장애를 다루는 드라마보다 현실은 더 처절하다. 전장연 활동가들은 지하철에 양쪽으로 앉아있는 사람들의 무리 가운데로 휠체어에서 내린 채 바닥을 긴다. 목에는 이동권과 예산을 보장하라는 내용의 피켓을 맨 채로. 그 어디에도 드라마에서 보는 귀여움과 대단함, 놀라움과 감동은 없다. 만약 우영우가 지하철 시위를 했다면 어땠을까? 우영우가 지하철 바닥을 기어도 사람들은 지금처럼 우영우를 바라볼 수 있을까?


전장연 지하철 시위에 대한 기사에 늘 달리는 댓글이 있다. 왜 남들에게 피해를 주면서까지 해야 하냐고. 그 댓글 작성자에게 묻고 싶다. 한 번이라도 그들이 바닥을 기어야 하는 이유를 알아보려고 노력했는지. 그 댓글에 공감 버튼을 누른 이들에게 묻고 싶다. 사회적 약자를 쉽게 비난하는 말에 공감하기 전에 그들의 삶과 서사에 공감해본 적은 있는지. 드라마 캐릭터는 귀엽고 소중해서 열광하지만, 현실에서는 지적 게으름을 피우며 타인을 쉬이 비난하는 이들. 난 그들이 가진 이중잣대가 우려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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