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진에 대한 솔직한 이야기
솔직히 말하건대 동료들이 달아준 피드백 댓글은 읽고 싶지도, 보고 싶지도 않았다. 글을 쓰면서 무슨 의견이 오고 갈지 뻔히 알았기 때문이다. 남성과 함께하는 페미니즘 활동을 하며 이렇게 힘든 적이 있었나? 비영리 활동을 하며 나의 부족함을 적나라하게 드러내야만 하는 순간이 몇 번이나 있었을까? 내가 쓴 글은 나의 벌거벗은 몸을 비추는 자화상이 되고 있었다. 부끄럽고 외면하고 싶었다.
비영리 활동가의 열등감은 영리 분야의 것과 명확히 다르다. 단순히 더 나은 사람들 틈바구니에 끼여 활동한다는 감각에 그치지 않는다. 어느 분야의 어느 주제로 활동하지만, 마음 놓고 있다 보면 이슈 거리나 뉴스거리에서 멀어지는 일이 부지불식 간에 일어난다. 공부하지 않는 삶은 타인의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또는 공감할 기회조차 잃어버리는 스스로에 대한 실망으로 이어진다. 논리와 체계를 파악하는 날카로움은 차치해도 비영리 활동가의 기본이자 존재 이유를 잃는 셈이다.
그렇게 스스로의 의자를 걷어찰 때, 같이 활동하는 동료가 보인다. 쉼 없이 이슈를 따라가고 공부하고 행동하는 그들은 자기만의 활동 자리를 마련한다. 의자에 더해 책상까지 세우는 그들 앞에서 의자를 걷어찬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스스로에게 실망한다. 의자를 일으켜 세울 생각 따위는 들지 않는다. 남은 건 바닥에 초라하게 쓰러진 의자와 시큰하게 아픈 엄지발가락뿐.
벌어진 격차를 좁힐 수 있을까? 내가 가진 책임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결국엔 남들보다 시간을 2배로 써가며 스스로를 혹사시켜야 하는 걸까? 나의 소진은 이렇게 출발한다. 남들과의 비교와 존재 의의를 묻는 질문 그리고 질투와 외면의 반복까지. 가끔은 억울함도 끼어든다. 나는 충분히 나의 역할과 노력을 해내고 있지 않은가? 어째서 나는 애쓸수록 작아지기만 할까?
혹자는 말한다. 아프지 않고 힘들지 않은 청춘이 어디 있냐고. 나는 그 청춘이 빨리 지나쳐가길 빌고 있다. 지금은 정말 아프다. 일, 시간, 책임, 열등감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 뾰족한 해결 방법이 보이지 않는다. 그저 버틸 뿐. 아파도 반복할 뿐. 그렇게 믿을 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