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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Oct 03. 2020

완벽해 보이려는 욕심은 대화를 망친다

나를 인정하고 타인을 그대로 바라보게 하는 <말하기를 말하기>

나는 늘 완벽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늘 모자란 사람이라고 자각해왔기 때문이다.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어떻게 보일 지를 늘 걱정했다. "내가 너무 바보같이 보이진 않을까?", "내 생각이 너무 짧아 보이진 않을까" 평가당할까 봐 두려웠다.


특히 한 두 차례, 만나는 관계인 경우 걱정은 더 심해졌다. 나의 어리석음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가 없으니까. 누군가에게 내가 바보 같은 사람으로 남겨지는 게 싫었다. 결국 나는 이런 고민들을 마음에 묻어둔 채 변명해 버리기 일쑤였다.


"나는 깊이 없는 일회성 만남은 싫어하니까"

"나는 내성적이라 혼자 시간을 보내는 게 더 좋으니까"

"나는 말보다는 글로 마음을 전하는 걸 더 좋아하니까"


결국 대화로 나를 드러내는 일은 아예 멈추게 됐다. "나"로 시작되는 대화들은 늘 주저했다. 객관적인 정보를 교환하는 것만이 내게 남은 유일한 대화의 방식이 되어버렸다. "이게 어쩌구, 저게 어쩌구"하는. 대화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나의 모자람을 자책하지 않기 위한 선택이었다. 그러다 보니 대화가 주는 즐거움을 잊고 살았다. 그렇게 나에게 갇히고 말았다.


며칠 전 김하나 작가의 <말하기를 말하기>를 읽었다. 격주로 책읽아웃 측면돌파를 들으며, 초대된 저자와 어찌 이리 깊게 교감하고, 서로를 재지 않고 대화할 수 있는지 감탄했던 나로서는 안 읽을 수 없는 책이었다. 이렇게 멋있게 대화하는 김하나 작가의 머릿속이 궁금해 '마인드맵 워크샵'에 참여한 적도 있다.


이 책은 대화의 스킬을 다룬 책이 아니다. “나”에 대한, 타자를 향한 태도에 관한 책이다. 이 책을 단숨에 읽어버린 나는 대화가 주는 기쁨, 나를 드러내고 감정을 교감하는 풍요로움을 느끼는 사람이 되자고 마음먹었다. 타자의 시선에 얽매여 우물쭈물하는 대신 내 생각과 감정을 중심에 둔 발화를 하기로. 나를 그대로 인정하고 솔직해지기로. 타자의 평가에서 자유로워지기로. 그리고 만약 대화가 나를 불편하게 한다면 집에 오는 내내 곱씹는 대신 그 자리에서 더 나은 대화를 이끄는 사람이 되어야겠다고.


이 글을 쓰다 보니 좋았던 대화의 장면이 떠오른다. 대학교 때 나와 가깝게 지냈던 친구가 있다. 그와의 대화는 늘 재밌었다. 곱씹어 생각하면 그는 늘 "나는"이라고 시작되는 대화 방식을 구사했다. 자기 경험, 자기의 생각에서 뻗어나가는 이야기가 주를 이뤘다. 그 말들에서 편견이나 혐오는 없었다. 오직 그만이 할 수 있는 이야기를 했다. 덕분에 나도 “나”로 시작하는 말들을 쉽게 꺼내놓을 수 있었다. '오고 가는'이란 수식어를 붙이기 가장 적절한 대화였다. 버스나 기차를 타고 여행을 떠날 때면 짧게는 두 시간, 길게는 네 시간 동안 우리는 끝없이 이야기했다.


그는 중간에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해서 상대의 말을 끊지 않았고  말을 하는 비율이 한쪽으로 쏠리지않았다.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좋은 대화의 태도를 가진 친구였다. 그에게 연락하고 싶어 졌다. 물론, 하루 이틀이 지나야 연락이 닿는 친구라 ( 글을 쓰고 있는 지금  순간) 나의 벅찬 마음을 온전히 전하긴 어렵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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