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근마켓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언젠부턴가 새로 살게 생기면 당근마켓 먼저 들어가 본다. 그렇게 오늘도 당근마켓으로 아이폰을 구매했다. 지난해엔 맥북도!!
누군가는 “새 걸로 사지, 찝찝하니 않아?”라고 묻지만 나에게 당근 거래는 한 명의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다. 적어도 쓰레기를 덜 만들겠다는 마음.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내겐 더 찝찝하다.
환경 문제를 계속 공부하다 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나와 연결된다. 덕분에 예전엔 몰랐던 것들이 눈에 자꾸 보인다. 평범한 일상, 사소한 선택들 속에서도 자꾸 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별거 아닌 듯 넘기던 순간들이 쌓여 거대한 환경 문제가 되기 마련이니까.
이제는 물건을 하나 사야 할 때면 자연스레 질문을 떠올린다. “나한테 진짜 필요한가?”, “해를 덜 끼치면서 살 수는 없나?” 그렇게 나는 공장에서 새로 찍어낸 물건보다는 이미 세상에 나온, 타인의 손을 거친 물건의 두 번째 주인이 된다.
중고로 사면 좋은 점이 또 있다. 이 물건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달까. 물건의 키워드를 걸어놓고 알림이 뜰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 내가 딱 원하던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을 좋아한다. 게다가 물건의 첫 번째 주인과 만나는 시간을 정하고 또 약속 장소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야 함에도 이 과정에 잔잔한 설렘이 깔린다.
핸드폰 버튼을 몇 번 누르고 며칠 후 얼굴 모를 택배기사가 집 앞에 두고 간 차가운 박스를 꺼내어 보는 일보단 훨씬 즐겁다. 돈만으로는 살 수 없는, 나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구할 수 있는 소중한 물건처럼 느껴지니까.
내 물건의 첫 번째 주인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일까 그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쩌다 동네에서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만약 또다시 그들을 마주친다면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저번에 거래한 OO의 두 번째 주인이에요. OO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하고. 아마 무척 당황하겠지?
이제는 절제의 단계를 지나서 물건 자체를 잘 사지 않게 됐다. 필요한 것은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 소비 자체에서 행복을 찾지 않게 됐다. 매장에서 구매한 순간부터 집에 오기 전까지만, 길어야 고작 6시간짜리 행복이란 걸 깨달았으니까. 막상 집에 두면 그닥 예뻐 보이지 않는 기분이기도 하고. 대신 그 돈으로 좋은 콘텐츠, 좋은 경험에 돈을 쓰려고 노력한다. 결국 나를 구하는 건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은 수많은 물건이 아니라 내 안에 단단하게 쌓이는 경험 들일 테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