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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Jan 09. 2021

물건의 두 번째 주인 되기

당근마켓을 할 수밖에 없는 이유

언젠부턴가 새로 살게 생기면 당근마켓 먼저 들어가 본다. 그렇게 오늘도 당근마켓으로 아이폰을 구매했다. 지난해엔 맥북도!!

누군가는 “새 걸로 사지, 찝찝하니 않아?”라고 묻지만 나에게 당근 거래는  명의 인간으로서 갖는 최소한의 책임감이다. 적어도 쓰레기를  만들겠다는 마음. 쓰레기를 만드는 것이 내겐  찝찝하다.

환경 문제를 계속 공부하다 보면 멀게만 느껴지던 것들이 나와 연결된다. 덕분에 예전엔 몰랐던 것들이 눈에 자꾸 보인다. 평범한 일상, 사소한 선택들 속에서도 자꾸 큰 것들에 대해 생각한다. 별거 아닌 듯 넘기던 순간들이 쌓여 거대한 환경 문제가 되기 마련이니까.

이제는 물건을 하나 사야 할 때면 자연스레 질문을 떠올린다. 나한테 진짜 필요한가?”, “해를  끼치면서  수는 없나?” 그렇게 나는 공장에서 새로 찍어낸 물건보다는 이미 세상에 나온, 타인의 손을 거친 물건의 두 번째 주인이 된다.

중고로 사면 좋은 점이 또 있다. 이 물건이 더 소중하게 느껴진달까. 물건의 키워드를 걸어놓고 알림이 뜰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 내가 딱 원하던 물건을 발견했을 때의 짜릿함을 좋아한다. 게다가 물건의 첫 번째 주인과 만나는 시간을 정하고 또 약속 장소까지 가는 수고를 들여야 함에도 이 과정에 잔잔한 설렘이 깔린다.

핸드폰 버튼을 몇 번 누르고 며칠 후 얼굴 모를 택배기사가 집 앞에 두고 간 차가운 박스를 꺼내어 보는 일보단 훨씬 즐겁다. 돈만으로는   없는, 나의 노력이 바탕이 되어야만 구할  있는 소중한 물건처럼 느껴지니까.


내 물건의 첫 번째 주인을 잊지 않겠다는 마음 때문일까 그들의 얼굴이 생생하게 기억한다. 어쩌다 동네에서 마주칠 때면 인사를 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고민하기도 한다. 만약 또다시 그들을 마주친다면 이렇게 인사하고 싶다.  “저번에 거래한 OO의 두 번째 주인이에요. OO이는 잘 지내고 있어요. 걱정 안하셔도 돼요!”하고. 아마 무척 당황하겠지?


이제는 절제의 단계를 지나서 물건 자체를 잘 사지 않게 됐다. 필요한 것은 이미 충분히 갖고 있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또 소비 자체에서 행복을 찾지 않게 됐다. 매장에서 구매한 순간부터 집에 오기 전까지만, 길어야 고작 6시간짜리 행복이란 걸 깨달았으니까. 막상 집에 두면 그닥 예뻐 보이지 않는 기분이기도 하고. 대신 그 돈으로 좋은 콘텐츠, 좋은 경험에 돈을 쓰려고 노력한다. 결국 나를 구하는 건 나를 덮쳐버릴 것 같은 수많은 물건이 아니라 내 안에 단단하게 쌓이는 경험 들일 테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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