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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Jan 18. 2022

함께 보낸 일주일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오기까지

하나의 결과물을 함께 만드는 기쁨

친구들과 함께 책을 만들었다. 책 <이토록 다정한 세계>는 일주일간 다녀온 괜찮아마을에서의 생활, 그 이후의 이야길 엮은 기록집이다.

출처 | 공장공장 괜찮아마을 텀블벅

괜찮아마을은 ‘지역살이 경험 플랫폼’이란 이름을 가진 목포의 작은 공동체다. 지역에 살면서 누구나 무엇이든 할 수 있도록 기반을 만들어주는 곳이다. 나는 일주일간 이곳을 경험하기 위해 5기 입주민으로 참여했고, 나를 빼고도 7명의 여성이 함께 했다. 우리는 일주일간 함께 먹고 자고 마음을 나누고 서로의 상상을 응원했다. 그리고 누군가는 고작이라고 부를 일주일의 시간이 한 권의 책으로 묶여 나왔다. (이 책은 괜찮아마을 계정으로 텀블벅이 진행됐다)


출처 | 공장공장 괜찮아마을 텀블벅


책의 전체 진행과 1부는 윤슬이 맡았고, 나는 2부 기획과 진행을 맡았다. 나머지 친구들은 각자의 이야길 나누고 더하고 제목을 정하는 과정에 참여했다. 혼자였음 포기해버렸을 일. 어떻게 이 책이 내 손에 만져질 수 있었는지 곱씹으며 생각했다. 같이 해서 그렇구나. 혼자 일하는 감각이 아니라 함께 일하는 감각은 나를 끝까지 데려다주었다. 함께 했던 작업 하며 기뻤던 순간을 떠올렸다.




공동의 시간을 함께 기록하는 기쁨

괜찮아마을에서 보낸 일주일은 모든 순간을 기록하고 싶을 만큼 귀했다. 우리들의 대화, 새롭게 발견한 나, 자기 삶을 고민하고 말하는 친구들의 진지한 태도와 용감한 표정까지 모두. 그런데 모든 걸 글로 담아내기엔 에너지가 없었다. 매일 새롭고 감동인 일 투성이라 그날 기록하지 않으면 모두 흩어졌다.


그리고 이 책을 만들기 위해, 한 달이 지난 시점에 자세를 고쳐 앉았다. 듬성듬성 작성해둔 기록을 들췄다. 나와 달리 하루하루 열심히 기록한 친구들의 근성, 그리고 친구들의 기록을 모아 적재적소에 배치한 편집장 윤슬의 집요함 덕분에 잊을 뻔했던 시간이 뚜렷하게 떠올랐다.


각자의 기록을 모아보니 같은 상황도 사람마다 다르게 느낀다는 걸 알며 새삼 재밌었다. 같은 공간에서 보낸 시간을 각자의 시선으로 다시 돌아보는 일은 그 시간을 구체적이고 세밀하게 기억할 수 있게 한다. 이 것이 공동의 시간을 함께 기록하는 작업에서 얻을 수 있는 가장 큰 기쁨이지 않을까?



일터가 놀이터가 되는 마법

나는 서울에서 못다 한 일을 뒤로하고 이들이 있는 목포행 기차를 탔다. 괜찮아마을 공식 일정이 끝난 뒤에도 친구 셋은 목포에 남아 자신만의 시간을 꾸려가고 있었고, 이들과 함께 해가 넘어가기 전에 기록물 작업을 마무리 짓기로 약속했기 때문이다.


일에 몰입하면 나는 일을 제외한 모든 에너지를 아끼려 드는 면이 있다. 겨울에는 최대한 움직이지 않고 에너지를 아끼는 동물처럼 말이다.  날도 마찬가지였다. 서울에서도 일을 하고  터라 몸은 노곤 노곤했지만 당장 다음날 기록물에 실릴 인터뷰가 예정된 만큼 빨리  단의 일을 쳐해내야 했다. 초조했다. 우선 자고 내일 일찍 일어나야지 하고 씻을 준비를 했다. 새벽 1시였다. 그때 친구들이 말을 건넸다.


혜란, 노적봉에 갈래?


맞다. 이들은 낭만파였다. 윤슬은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이었고, 수빈은 지치지 않는 체력을 지녔다. 이들은 노적봉 언덕에 유일하게 남은 단풍나무를 찍어야 한다고 했다. 새벽 1, 눈이 쌓인 길에  번째 발자국을 남기며 노적봉을 올랐다. 단풍나무 사진을 찍고 나머지 언덕을 올라 꼭대기에 도착했다. 나의 심박동수와는 달리 눈앞에 펼쳐진 바닷 마을의 밤은 고요하고 평온했다.


책 잘 만들어보겠다며 에너지를 아끼며 방 안에 갇혀 있었다면 놓쳤을 목포의 아름다움을 보았다. 자연에 감탄하는 친구들도 아름다웠다. 그리고 다짐했다. 노적봉에 함께 올라가자며 장갑이고 목도리고 내어줬던 친구들처럼 일의 긴장을 깨고 재미와 낭만을 선물하는 사람이 되자고.


바다는 내가 일 하는 곳, 내 직장, 내 삶의 터전, 내가 내 자유를 지키는 곳이었는데 둘이서 하니까 놀이터가 되더라고. 맘 맞는 사람이랑 둘이 서 있으니까 일터가 놀이터가 되기도 하더라고. 그게 사람답게 사는 거더라고.

슬픈 세상의 기쁜 말 (당신을 살아 있게 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정혜윤 저



일은 핑계고 실은 서로 연결되고 싶어서

고작 일주일 인연으로 끝날 수 있었던 사람들이 책 한 권을 만들기로 결정하면서 꾸준히 연결됐다. 기록물을 만들기 위해 우리는 조금씩 책임감을 나눠 가졌고, 시간을 내고 의견을 더해주었다.


공통의 결정이 필요할 땐 온라인에서 모였다. 모두 참여할 수 있는 시간은 늘 밤 10시 이후였다. 내일을 준비하기에도 빠듯한 시간, 그래도 우리는 서로에 대한 안부로 잊지 않았다. “요즘 괜찮냐고.” 괜찮아마을에서 우리가 서로에게 집중했던 시간들처럼 말이다.


온라인 모임을 마치고 나면 뭉클한 마음이 가장 컸는데 이 건 책 작업이 순차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만족감 때문만은 아니었다. 각자의 자리에서 친구들이 잘 살고 있다는 안도감 때문이었다. 책을 만드는 건 어쩌면 서로의 안부를 계속 확인하기 위한 장치였을지 모른다. 관계란 빌미가 있어야 자주 만나게 되는 법이니까.


그리고 최근, 텀블벅 펀딩을 기념해 우리가 처음 만난   1 만에 다시 온라인으로 모였다. 함께 목포에 모였던 1 전과 달리 제주와 대전, 목포, 서울에서 서로에게 안부를 물었다. 며칠 지나, 제주에서 편지와 책갈피가 배달됐다. 제주도에 사는 송송이 기록물을 받아보고는 친구들이 보고 싶어서 편지를 썼다는 말과 함께. 기록물 하나가 우리를 2년간 엮어주고 있다는 사실이 뭉클했다.




수정을 반복하며 각자의 삶을 다듬는 과정

책을 만들 때 처음부터 단단한 기획으로 시작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만들면서 방향을 설정해나가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바로 우리의 이야기다. 작업을 하던 도중 책의 방향을 크게 바꾼 적이 있다. 우리가 경험한 이 세계 ‘지역살이’, ‘공동체’, ‘대안적인 삶’이 정답처럼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을 때였다.


실제로 우리 8명은 모두 하고 있는 고민도, 지향하는 세계도 달랐지만, 우리가 함께 보낸 일주일에 푹 빠져있던 터라 이러한 삶이 답인 것처럼 책 곳곳에 심어 놓았다.


뒤늦게 깨닫고 메세지를 다듬었다. 우리가 하고 싶은 말은 지역에서 친구들과 오순도순 사는  정답이라는 이야기가 아니라, 각자의 방식과 고유함으로 각자가 원하는 삶을 살아가자는 거라고. 덕분에  책에는 8 각각의 고민과 지향하는 세계가 담길  있었다.


교정교열 회차를 거듭할수록 친구들이 수정하는 문장을 보는 재미도 있었다. 과거에 했던 이야기를 뒤집는 문장이기도, 부연 설명하는 문장이기도 했다. 책이 세상에 나오기까지  1년이 걸린 만큼, 친구들은  사이 달라진 자신부지런히 책에 반영했다. 다행인  우리에게도 최최최최종 데드라인이 있었고 덕분에 책이 세상에 나올  있었다.


물론 책이 내 손에 들려 있는 지금도 수정하고 싶은 문장 투성이다. 책 발행 기념으로 만난 온라인 모임에서 친구들과도 '책 속 고치고 싶은 문장'에 대해서 잠시 이야기 나누기도 했었고. 과거의 나를 떠올리면 자주 이불킥하고 싶어지지만 이는 곧 같은 상황을 달리 볼 수 있는 관점을 갖게 됐다는 의미이기도 할 테니, 앞으로도 우리는 과거의 우리를 꾸준히 업데이트하며 나아가자고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구하기 어려운 책 <이토록 다정한 세계>가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저의 인스타그램으로 DM 주세요. 제가 가진 한 권을 선물로 보내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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