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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혜란 Aug 17. 2020

제주도, 이야기 따라 여행하는 법

이야기가 예술을 만났을 때 <해녀의 부엌>

4년 전 제주도 해녀박물관에서 들었던 숨비소리*가 여전히 내 귓가에 선명하다. 이후 나는 육지에서도 해녀의 삶을 자주 엿봤다. 김형선의 전시 <해녀>를, 그림책 <엄마는 해녀입니다>를 볼 때마다 해녀의 삶을 떠올렸다. 이번 제주 여행에서는 조금 더 깊이 있게 해녀를 알고 싶었다. 그래서 <해녀의 부엌>에 갔다.

*숨비소리는 해녀가 잠수했다가 물에 떠오를 때 가쁜 숨을 길게 내쉴 때 내는 소리. 해녀들이 저 멀리에서도 서로의 안전을 확인하는 신호이기도 하다.


폐 어판장 문 하나 열었을 뿐인데, 새로운 세상에 빠져드는 기분이 들었다. 해녀 옷을 입고 환하게 웃는 예술가가 우리를 반긴다. 한 발을 더 들이면 불턱(해녀들이 바다에서 빠져나와 몸을 녹이던 곳)과 테왁(해녀 전용 튜브)이 공간을 채우고 있다. 테이블에는 "이혜란 고객님 환영합니다"라고 쓰인 종이가 놓여 따뜻하게 우릴 맞이한다.


<해녀의 부엌>은 해녀의 삶을 기억하고 이어가기 위해 해녀와 한예종 출신 예술가들이 합을 맞춰 만든 콘텐츠다. 해녀의 이야기를 담은 연극으로 시작해 해녀들이 직접 채취하고 요리한 음식을 맛볼 수 있다. 나는 2시간 30분간 잘 짜인 프로그램 안에 충분히 녹아들었고 이 곳을 사랑하게 되었다. 아래 글은 내가 <해녀의 부엌>과 사랑에 빠진 이유 여섯가지를 나열한 것이다. 글을 읽고 더 많은 사람이 <해녀의 부엌>과 사랑에 빠지길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작성했다.

활선어 어판장으로 사용되던, 이야기가 있는 공간. <해녀의 부엌>덕분에 아주 멋있는 무대가 있는 공간으로 재탄생했다.



시간이 새겨진 공간에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곳

<해녀의 부엌>은 종달리의 문 닫은 활선어 어판장을 해녀 극장식 레스토랑으로 탄생시켰다. 공간의 특성을 이용해 극이 진행되는 덕분에 옛 어판장의 모습을 이 곳 저 곳 엿볼 수 있다. 버려진 공간, 사용할 수 없는 공간을 발상의 전환을 통해 적극적으로 연극에 녹여 활용하는 아이디어가 빛났다. 나는 시간을 새겨 온 공간 위에 새로운 이야기를 쌓아 올리는 행위를 무척 사랑한다. 제주도 <해녀의 부엌> 같은 공간이 한국에 더 많아지면 좋겠다.

극이 진행되던 일부 장면! 기존의 어판장 공간의 특성을 연극에 활용했다.

해녀라는 단어 속,

구체적인 사람을 발견하게 하는 곳

해녀라고 무엇이 떠오르는가? 대체로 tv 어딘가에서 봤을 법한 장면이 그려진다. 테왁을 이고 지고 바다를 빠져나오는 장면 정도. 나에게도 해녀는 그랬다. 유네스코에 등재되어 있다는, 그저 자신의 한 몸에 의지해 바다에 뛰어드는 직업. 이 정도뿐이었다. 그런데 <해녀의 부엌>에서는 해녀 각자가 가진 이야기에 집중한다.


내가 참여*했던 '종달리 최고령 해녀 권영희 할머니'의 연극을 포함해 종달리 해녀 각자의 이야기가 담긴 극이 다양하게 진행된다. '해녀'자체의 문화만을 소개하기보다 해녀 한 명, 한 명이 가진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이 참으로 감동적이다. 해녀라는 단어, 그 속에서 사람을 발견하게 되었기때문이다. 덕분에 앞으로 누군가 나에게 '해녀'라는 단어를 던져 준다면 이 전보다 더욱 다양한 생각을 뻗어 나갈 수 있게 되었다.

*나의 마음을 다해 프로그램에 적극적으로 빠져들고, 또 개입했다는 생각이 들어 '참여'라는 단어를 선택했다.
권영희 해녀의 환한 웃음이 무척 감동적이었다. 이 장면은 이어도사나를 즉석에서 부르던 순간. 어디서도 쉽게 들을 수 없는 노래였다.

한 사람의 인생이

연극에 생생하게 살아 있는 곳

나는 내가 곧 경험할 것에 대한 리뷰는 의도적으로 피한다. 주관적인 감상을 방해하는 요소가 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해녀의 부엌> 리뷰를 꼼꼼히 살폈다. (짧은 여행 기간인 만큼 실패하지 않을 루트를 짜야했는데, 엄마 아빠에게 꼭 <해녀의 부엌>에 가야 한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해서였다) 리뷰를 통해 해녀가 극에 등장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좋은 콘텐츠라는 생각과 동시에 '연극이 어색해지면 어쩌지?' 걱정이 밀려왔다. 전문가가 아닌 이상 연기를 하는 건 우스꽝 스럽기 때문이다. 그런데, 극이 시작되는 순간 나의 걱정은 흩어져 버렸다. 심지어 해녀가 극에 등장하는 순간, 감정이 터졌다. 내 앞에 선 권영희 할머니의 육성을 듣자 연극이 생생하게 살아 돌아왔기 때문이다. 꾸며진 이야기가 아니라 내가 만질 수 있는 사람의 이야기라는 사실 덕분에 극은 더욱 자연스럽게 느껴졌다.



뜻하지 않게

인생선배와 대화를 나누는 곳

마지막 프로그램으로 권영희 해녀와의 Q&A 시간이 이어졌다. 궁금한 점을 종이에 적어서 내면 랜덤으로 뽑아 권영희 해녀가 답해주는 방식이다. 나는 권영희 해녀가 해녀의 삶을 긍정하게 된 계기가 궁금했다. 내가 나를 긍정하는 것은 늘 어려운 일이기 때문에, 타인과 비교하면서 내가 속하지 않은 세상을 동경하는 나에게 인생 선배의 이야기가 필요했기 때문에. 삶과 죽음의 경계에 있는 바다에 평생 발을 디뎌 온 권영희 해녀의 대답이 필요했다.


나의 간절함 때문이었을까 답이 돌아왔다. 권영희 해녀는 나의 질문에 대해 "엄마를 따라 주어진 일을 해냈던 것뿐"이라고 말했다. 아주 간결한 대답이었다. 하지만 여행하는 동안, 혹은 여행에서 돌아온 일상에서 여전히 대답을 곱씹고 있다. 뜻하지 않게 만난 인생선배의 단단한 대답 하나가 오랫동안 나의 마음에 꽂히는 것을 경험했다.

나의 고민이 담긴 질문을 눌러 담았다. 운이 좋게 권영희 할머니가 나의 질문을 뽑았다.

제주의 tmi를

들을 수 있는 곳

연극이 끝나면 제주를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가 펼쳐진다. 내가 해야 할 일은 그저 감탄하며 제주 이야기 속으로 빠져드는 것뿐이다. 종달리 아기 해녀(나이가 가장 어린)가 50대라는 것부터, 해녀 잠수복이 보급되기 전엔 여름이고 겨울이고 홑 겹의 면 옷 하나 걸치고 물질을 했다는 것, 해녀가 바닷 일을 하지 않을 땐 밭농사(주로 감자, 무, 당근)를 짓는다는 것, 충청도나 강원도로 원정 물질을 나간다는 것, 뿔소라는 제주에서만 채취할 수 있다는 것, 요즘 해녀들은 오토바이나 남편이 태워주는 차를 타고 편하게 일하러 온다는 것까지(무슨 이야긴가 싶겠지만, 이건 종달리 최고령 권영희 해녀의 <라떼는 말이야>코너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다).


<해녀의 부엌>에서 들은 제주의 tmi는 여행 내내 나의 머리와 마음에 남아 제주를 새롭게 바라보게 하는 가이드가 되어 주었다. 제주 여행에서 <해녀의 부엌>에 가겠다고 결정했다면 꼭 여행지 첫 번째 코스에 넣는 것을 추천한다. 이 곳에서 건져 올린 이야기는 여행 내내 제주를 깊게 이해하는데 좋은 안경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종달리 해녀들이 채취한 뿔소라와 군소에 대해 소기해는 프로그램, 해녀(왼쪽)와 예술가(오른쪽)의 케미가 무척 좋아서 감동적이기까지 했다.

음료를 주문했을 뿐인데

이야기가 따라오는 곳

식사 전, 종달리 해녀들이 직접 채취하고 만든 요리에 대한 이야기를 풍부하게 들려준다.덕분에 음식 하나를 먹더라도 이야기를 꿀꺽 삼키는 느낌이 들었다. 식사 중간에, 제주에 왔으니 제주 음료를 '맛보자'는 마음으로 신달리(꼭 식혜같이 생겼다)를 주문했다. 서빙된 신달리를 먹으려던 찰라, 예술가 한 분이 와서 신달리에 얽힌 배경을 들려주었다. '곡식이 귀했던 제주에서 밥을 하고 남은 누룽지를 긁어 모아 음료를 만들었다'는 이야기. 그저 맛만 보자는 생각에 주문한 음료로 새로운 제주 이야기까지 듣게 된 것이다.


수익을 내기 위해 메뉴판에 적어놓은 메뉴가 아니라 제주의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은 마음을 담아 메뉴에 올려 놓았을 것이라 생각하니 감동할 수밖에. 이러한 디테일에서 <해녀의 부엌>의 존재 이유가 더욱 와 닿았고, 덕분에 나는 <해녀의 부엌>을, 이 곳을 만들어가는 사람들을 평생 사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종달리 해녀분들이 직접 요리를 해서 내어주신다 . 귀한 군소를 잡아도 가족을 먹이지 않고 이 곳에 가장 먼저 사용한다고 한다. <해녀의 부엌>에  애정을 느낄 수있는 대목이었다

혹시, 이 글을 읽고 <해녀의 부엌>에 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면 예약까지 해보시길 바란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영업하는 것이 이 콘텐츠의 목적이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꾸준히 이어질 '좋아하는 것 영업하기' 시리즈에 많은 기대 해주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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