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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양진모 Aug 02. 2015

잠자는 집시

앙리 루소



앙리 루소는 독학으로 그림을 익혀 비교적 늦은 나이에 화가가 되었습니다. 루소는 세관원에서 일하면서 틈틈이 그림을 그리다가 공식적으로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했습니다. 루소는 항상 자신이 사실주의 화가임을 스스로 자칭했지만 이는 대단히 당혹스러운 주장이었습니다. 그의 그림 속에는 원근법이나 비례 같은 사실주의 기법들은 찾아볼 수 없으며 그에게 초상화를 의뢰한 고객들은 자신과 전혀 닮지 않은 초상화를 보고 화를 내거나 수정을 요구했기 때문입니다.



루소가 존경한 아카데미 화풍의 대가 장 레옹 제롬의 <사막을 건너는 아라비아인인들>


루소는 아카데미 화가들을 동경했으며 자신도 위대한 아카데미 화가가 되기를 열망했습니다. 당시 아카데미 화가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을 담고 있는 이국풍 그림들이 유행했습니다. 루소도 시대에 발맞추어 이국적인 느낌의 작품을 구상하기 시작했습니다.





하지만 루소의 의도와는 다르게 이 작품은 이국적인 느낌보다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더욱더 강력하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루소는 이 작품 <잠자는 집시>를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만돌린을 연주하는 떠돌이 집시가 자고 있다. 그녀의 옆에는 물병 항아리가 놓여있다. 그녀는 피곤에 지쳐 깊은 잠에 빠졌다. 마침 지나가던 사자가 그녀의 냄새를 맡았지만 집어삼키지 않았다. 달빛은 조용히 그곳을 비춘다."





뜨거운 열기로 가득했던 이 사막에도 어김없이 밤이 찾아왔습니다. 고된 하루를 보낸 집시 여인은 사막의 모래 위에 누워 곤히 잠들었습니다. 고요함 속에 잠든 사막을 비추는 달과 별들이 시적인 분위기를 더합니다.





마침 그곳을 지나가던 사자는 집시 여인의 냄새를 맡았습니다. 집시 여인에게 가까이 가서 코를 킁킁거리지만 깊은 잠에 빠진 집시 여인은 미동 하나 없습니다. 사자는 그녀를 해칠 기색이 전혀 없어 보입니다. 루소는 작품에 이러한 부제를 붙였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사나운 육식동물이라도 지쳐 잠든 먹이를 덮치는 것은 망설인다."





우리 눈에 익숙한 평범한 것들을 동떨어진 환경에 가져다 놓으면 낯설게 느껴질 것입니다. 루소가 사막 위에 배치한 이미지들은 사실적으로 묘사되었음에 불구하고 서로 조화를 이루는 것 같아 보이지 않으며 왠지 모르게 낯설게 느껴집니다. 이 작품 속에는 정체를 알 수 없는 신비로움이 흐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신비로움 덕분에 루소는 초현실주의 화가들에게 아버지와 같은 존재로 떠받들어지기도 합니다. 이 사실을 루소가 알았다면 답답하다 못해 화를 냈을지도 모르겠네요. 루소는 사실주의 화가라는 칭호를 듣고  싶어했으며 자신이 그러하다고 굳게 믿었으니까요.





이 작품 속에는 초현실주의적 요소뿐만 아니라 입체주의적 요소도 공존하고 있습니다. 집시 여인은 약간 위에서 내려다보는 모습이며 사자는 옆모습, 물병 항아리는 평면의 모습입니다. 루소의 그림에서는 야수파의 견고한 색채가 느껴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루소는 어떠한 미술 유파나 운동에도 속하지 않았습니다.





루소는 미술사에서 유례를 찾아볼 수 없는 우스꽝스러운 기인이었습니다. 그림을 전문적으로 배운 다른 화가들과 비교해 서투른 기법을 구사한 루소였지만 그가 그림 속에 구현한 상상의 공간과 단순한 형태, 견고한 색채 등은 피카소나 칸딘스키, 마티스와 같은 화가들에게 영향을 미쳤습니다. 독특한 그의 예술 세계는 현대에 이르기까지 여러 대중들에게 사랑을 받고 있습니다. 어린아이가 꿈을 꾼 장면을 캔버스에 담은 것 같은 이 그림은 꿈을 꾸는 듯한 환상 속에 빠져들게 합니다. 그림에 대한 루소의 순수한 열정이 아니라면 이러한 그림은 탄생하지 못 했을 것입니다. 순수함이 담긴 어린아이의 그림을 성숙한 어른이 그려낼 수 없는 것처럼 말이지요.



잠자는 집시 / 1897 / 129x200cm / 캔버스에 유채 / 뉴욕 현대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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