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벌써 하와이
어쩌다 나와 아이는 하와이행 비행기를 타고 있었다. 설레고 막막 날아갈 듯이 좋거나 감흥이 넘쳐나는 상황과 반대로 긴장과 걱정 불안감을 한 아름 안고서 기내식 비빔밥을 꾸역꾸역 먹고 있었다. 아프기 싫어서 무조건 먹었다. 아픈 마음은 많이 치유되었지만 종종 몸을 혹사시키는 방법으로 삶을 버틴 적도 많았기에 갑상선에도 약간 문제가 생겼다. 호르몬 때문이기도 하지만 나이 탓, 성격 탓, 식습관 탓 등으로 몸 상태가 골골 그 자체다. 그래서 잘 먹고, 잘 자고, 잘 쉬기로 마음먹었다.
이사하고 5일 만에 비행기를 탈 수 있을까 했지만 난 탔고 하와이에 도착해서 생활 중이다. 말도 안 되는 그 계획을 실행에 옮긴 나는 지질만큼 지쳐 있었다. 그래서였을까. 문득 '하와이를 가면 뭐 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곳도 어차피 사람 사는 나라. 사람 사는 동네. 문화만 단지 다르겠지. 그런데 왜 '난 하와이에 가고 싶었을까?' 어쩌면 하와이가 아니라 단지 '한국을 벗어나고 싶었던 건지도 몰라'라는 생각이 들었다.
한 곳에 진득하게 머물지 못해 떠도는 삶을 좋아한다. 가볍게 말이다~. 흔적도 없이 살다 흔적도 없이 훌훌 그렇게 털고 이곳저곳 다니고 싶다. 태어나면서부터 나에게 온전히 주어진 삶의 자유를 누리고 싶다. 이사를 하고 나서 짐정리를 궁금해하는데, 사실 살림살이와 물건이 많이 없다. 그래서 정리가 빨리 끝난 면도 있다.
라운지에서 단 음식과 음료 등으로 배를 채운 중학생은 비행기 안에서 영화 삼매경에 빠졌고, 난 배가 불렀음에도 불구하고 비빔밥 한 그릇을 먹어 치웠다. 그럼 그렇지... 어쩔 수 없이 브라훅을 풀고 엄지와 검지 사이를 꾹꾹 문질러 강제 소화를 시켰다. 나 역시 영화 한 편을 보았지만 영 집중을 못했다.
'트렁크 안에 약봉다리가 너무 많은데, 걸리면 어쩌지? (작년 여름 유럽 갈 때 약을 못 챙겨가서 정말 고생했다. 그래서 이번엔 많이 챙겼다)'
'편두통 약은 걸리면 안 되는데..'
'공진보는 뭐라고 하지?'
'에잇, 안 걸리겠지..'
'운전은 어떻게 하지?'
'사고 안 나겠지?'
'자동차 보험을 들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굳이 들 필요 없다던데...'
'인터뷰는 무사히 통과하겠지?'
등등...
.
걱정과 불안을 한 아름 안고 비행기를 탄 덕분에 한숨도 못 잤다. 이런저런 생각과 고민 끝에 결국 '난 왜 이 고생을 하면서 무엇을 위해 이토록 먼 나라 하와이 까지 가고 있지?', '난 욕망에 이끌리는 삶을 사는 사람인 거야? 아니면 '자유라는 탈을 쓴 욕망아래에서 착각하며 삶을 살고 있는 건가?'. '한국에서도 난 충분히 만족하며 지내고 있었는데.. ', '이리저리 어찌 살면 좀 어때?', ' 욕망이든 나발이든 생각 좀 그만하고 그냥 주어진 삶 하루하루 나답게 살아~ 그럼 돼.' '이 상황 자체도 얼마나 감사한 현실인가!'. '감사함을 잊지 마!, 그럼 돼'.
나에게 자유란 마음이 충만하고 단단해지면서 저절로 내면에 품어지는 기운 같은 것이다. 한참 쓸데없는 생각에 빠져있다가 마음대로 생각을 마무리 짓고 깜박 졸았다. 난 어느새 짐을 찾고 공항 렌트카회사에서 자동차 보험 설명을 듣고 있었다.
난 미국 하와이 땅에 두 발을 딛고 서 있었다.
오랜만에 학교 픽업 라이딩을 다시 시작한다.
아침에 강한 햇살을 받고, 호찌민과 비슷한 야자수를 보며, 더운 열기를 느끼고, 아이는 마치 원래 이곳에 살던 아이처럼 새카맣게 그을었다. 아이에게 제1의 고향은 호찌민이다. 아이는 호찌민을 많이 그리워했고 향수병 앓이를 한동안 했다. 다행히 하와이가 채워주고 있다.
아이도 나도 무사히 한국 가기 전까지 이곳에서 생활을 잘 마무리하고 싶다.
여행 온 듯 하지만,
짧은 단기 생활을 시작한 이곳에서 삶은,
크게 좋지도,
크게 나쁘지도 않다.
그래서
난
오늘도
진정으로
감사하다.
by cho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