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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현 Feb 17. 2021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뮤지엄헤드 <나메NAME>

 요즘 혈액형보다도 영향력이 있는 인간 분류법은 MBTI일 것이다. 이제 더 이상 사람들은 자신의 SNS 프로필이나 소개 글에 혈액형을 적어두지 않는다. 이제는 그 자리를 MBTI가 대신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MBTI가 자신을 대변하는 사회에서 살아간다. MBTI를 판별하기 위한 수십 가지의 물음 중 하나, “종종 인간 실존에 대한 이유를 생각합니다”.




완전 동의.



 종로에 위치한 갤러리 뮤지엄헤드의 오픈전 <나메NAME>에 다녀왔다. 곽이브, 류성실, 이유성, 이환희, 정수정, 최이다, 최하늘 총 7명의 작가가 참여한 전시 <나메NAME>는 이름으로부터 시작된 물음을 이름으로 끝맺는다. 이름은 단순한 문자 그 이상의 것들을 내포한다. 사람은 이름으로 태어나고 이름으로 죽는다. 전시 작가들은 실체가 없는 ‘이름’이라는 것을 연출하고 전시하며 가시적으로 드러낸다. 기획자의 말을 빌리자면 이 작가들은 이름을 통해 자신과 자신의 미술에 대해 생각하고 설명하며 각색한다. 또 그것을 거부하고 일어나 달라고 욕을 한다. 이는 곧 작가와 관객을 연결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이들이 전시하는 이름과 그 이름의 뒷면을 적극적으로 상상하도록 유도한다.






무(無)에서 유(有)로, 그리고 존재(存在)로의 귀결


최이다 <유제 Entitled>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21초, 2015

 

 내가 가장 인상적으로 본 작품은 바로 이 영상작업이다. 갤러리의 문을 열고 들어서면 바로 보이는 작품인 이것은 나를 적잖이 충격에 빠뜨렸다. 최이다는 이름 없는 창조물에게 편지를 보내고 이름이 필요한 목소리로부터 답장을 받는다. 이는 마치 영상을 바라보는 관객에게 말을 건네는 듯하기도 하고 스스로에게 건네는 독백 같기도 하다. 태어나면 당연하게 가져버리게 되는 ‘이름’을 소재로 원래는 무(無)의 것을 유(有)의 것으로, 나아가 의미를 가진 진정한 유(有), 존재(存在)로 나아감을 나타낸다.


최이다 <유제 Entitled>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21초, 2015
최이다 <유제 Entitled>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21초, 2015
최이다 <유제 Entitled>  싱글 채널 비디오, 8분 21초, 2015


 우선 당신에게는 이름이 없습니다

 더 중요한 건 언제나 이름을 가진 이가 무엇을 하느냐이다

存在 처음으로 이름을 가져보고 싶다


최이다 <부름 Calling>, 싱글채널 비디오, 12분 47초, 2020


 이 외에도 작가들은 각자가 가지고 있는 ‘이름’에 대한 생각과 해석을 전시하고 있다.

곽이브 <곽이브 KWAKeve>, 디지털 페인팅, 오프셋인쇄, 가변설치, 42x59.4cm, 4EA, 2020


 곽이브는 자신의 이름을 음소 단위로 나누어 그린 후 여러 장을 벽면에 채운 작업 <곽이브KWAKeve>를 통해 자신을 정의하는 ‘틀’과 ‘테’의 새로운 해석을 제시한다. 끊어진 형태들은 기존의 의미가 사라지고 새로운 의미를 품게 된다. “이름은 아는 사람에게 의미 있고” 형태는 관심 갖는 이에게 포착된다.(작가노트) 기존의 자신을 정의하던 이름이 새로운 테와 틀과 공간, 즉 형태를 마주하며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것이다.


최하늘 <형식을 창조하는 자 The Creator of Form: Standard>, 다양한 재료로 만들어진 조각과 형석이가 만들어준 47cap, 110x55x183cm, 2020
최하늘 <형식을 파괴하는 자 The Destroyer of Form: Bulky>, 무겁고 가벼운 다양한 재료, 110x45x196cm, 2020


 최하늘은 <형식을 창조하는 자>와 <형식을 파괴하는 자>를 통해 같은 이름에서부터 파생되었지만 결코 동일시될 수 없는 구상과 추상, 창조와 파괴, 형식과 내용, 이동과 정지, 왼쪽과 오른쪽처럼 완전히 일치될 수 없는 운명을 나타낸다.


정수정 <새가 지나갔다 Bird’s Eye-view>, 캔버스에 유화와 스프레이, 227.3x181.8cm, 2020


이환희 <임바머 Embalmer>, 캔버스에 유화, 164x260cm, 2020 <엑서터 Exeter>, 캔버스에 유화, 60x70cm, 2020

 

이유성 <슬로우 러브 Slow Love>, 2020  이유성 <잠자리 스피드 Dragonfly Speed>, 2020


류성실 <죽지 않는 가문 Never Ending Family>, 모바일 비디오, 2분 10초, 2020




존재(存在)의 이유


 존재의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왜 내가 이 이름을 가지게 되었는지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 이름이 마음에 드는지, 들지 않는지, 그리고 그 이유에 대하여 생각해 본 적이 있는가?


이창동 감독의 <버닝>에는 이러한 대사가 나온다. “마임을 잘하려면 여기에 귤이 있다고 믿는 게 아니라 없다는 것을 잊어버리면 돼.” 존재함을 위해서는 부재함을 잊으면 된다는 것이다.


우리는 살아가면서 ‘왜 존재하느냐’보다 ‘왜 부재하느냐’에 집착하며 살아가는 것 같다. 하지만 살아가면서 더 중요한 것은 ‘왜 존재하느냐’에 집중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왜 존재하느냐에 대하여 생각하다 보면 존재에 의미가 생기고, 나아가 실존(實存) 하게 된다. 존재의 이유는 결국 존재함에 있는 것이다. 이는 우리의 이름으로 이어진다고 볼 수도 있겠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인간은 이름으로 태어나서 이름으로 죽는다. 결국 자신을 칭하는 것은 결코 자신이 될 수 없지만,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칭해지면서 더욱 굳건히 존재한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의 시 <꽃>처럼 말이다.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요?


그리하여 나는 우선 여기에 짧은 글을 남겨둔다
나의 생은 미친 듯이 사랑을 찾아 헤매었으나
단 한 번도 스스로를 사랑하지 않았노라
기형도, <질투는 나의 힘> 중
 


그렇다면 생각해 보자. 당신의 이름은 무엇인가. 당신은 어떤 이름으로 태어나서 어떤 이름으로 죽을 것인가. 인간은 존재하며 사람은 살아가고 이름은 곧 당신의 삶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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