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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주현 Jun 09. 2021

The New Vision

아트선재 <HOST MODDED 호스트모디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기존의 체제에 신물을 느끼고 새로운 세상으로의 변혁을 꿈꾸는 비트 세대가 등장하였다. 이를 다룬 존 크로키다스의 영화 <킬 유어 달링>은 그 시작을 <The New Vision>으로 표현하고자 했다. 세상은 변화와 변혁으로 나아간다. 시대는 변화하고, 그로 인해 현실을 감각하는 방식도 변화하며, 현실을 감각하는 주체 또한 변화한다. 그리고 그 기저에는 공간의 변화가 자리 잡고 있음이다.




공간(空間)



현재 아트선재센터에서는 세 가지 전시가 진행되고 있다. 이중에서도 시셀 마이네세 한센, 김지선, 레이철 로즈가 참여한 전시 <HOST MODDED 호스트 모디드>에서는 변화에 대해, 그리고 그것에 대한 또 다른 시각과 개념을 제시하며 관객으로 하여금 공감을 유도한다.


실제(實際), 실재(實在)


주인, 주체의 의미를 갖는 '호스트(host)'와 게임이나 자동차, 프로그램 등의 작동 메커니즘을 임의로 변형한 것을 의미하는 신조어 '모드(modded)'를 합성한 전시 <HOST MODDED>는 변화된 시대의 달라진 경험을 감각하는 주체를 '호스트'라 명명한다. 그리고 이전에는 감각의 오류와 정신 분열의 문제로 치부되었던 호스트의 다른 감각과 신체성에 대해 재고하며, 질문한다. 기술의 발달에 따라 다른 인지를 가진 인간이 된 것이 아닐까?


어제 먹은 레몬 마들렌 엄청 맛있었는데, 아 어제 날씨는 좀 흐렸네, 그래도 카페에 사람이 많이 없어서 좋았어, 그 카페는 통유리창이라 밖이 다 보여서 좋아.

  

이처럼 우리는 기억을 다시 떠올릴 때나 무언가를 생각할 때, 그 공간을 함께 상상한다. 누구에게나 있는 의식 속에서 공간을 인지하는 감각은 언어의 변화나 과거 경험의 차이로 시대에 따라 달라진다. 특히 전시는 스크린이나 모니터 등 화면 안의 공간에 익숙해진 세대가 대상을 인지하는 다른 감각을 갖게 된 것을 의식한다. 어렸을 때부터 비디오나 전자기기 속 화면을 쉽게 접하면서 화면 안의 공간감에 익숙해지거나, 게임을 하면서 평면적인 화면에 대한 경험에 지속적으로 노출되거나, 영화를 보면서 과거와 미래를 자유자재로 오가는 상상에 익숙해져 있거나, 가상세계에 익숙해지면서 실제를 인지하는 감각에서 벗어난 경험이 반복될 때 이러한 감각이 실제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시는 '정상적인' 감각이나 신체성에 대해 재고하고 있다.


변화된 시대 속에 변화된 실제(實際)라는 개념이 결국엔 실제가 되어, 그 세계 속 실재(實在)함이다.




Host(호스트)


전시는 신체를 둘러싼 세계의 물리적 조건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신체를 갖게 되었다는 말이기도 한다는 것을 전달한다. 본질적 존재의 다른 신체로서 '호스트'라는 이름을 제안하며, 공간이나 대상을 인지하는 특정한 신체성을 의식하고자 한다.


최근 이슈가 되고 있는 '부캐'에 이를 대입하면 이해하기가 훨씬 쉬울 것 같다. 사람들은 본질적 존재인 '나'의 여러 가지 면모 중 하나를 '부캐'에 대입한다. 본질적 존재인 '나'가 시대가 변함에 따라 달라진 경험을 다르게 감각하는 신체를 '호스트'에 대입하며, 신체를 둘러싼 세계의 물리적 조건이 변하지 않았음에도 이를 다르게 인식한다는 것은 결국 다른 신체를 갖게 된 것임을 뒷받침한다.


김지선, <슬픔의 집>, 2020, 게임, PC.


가장 흥미로웠던 작품은 관객이 직접 플레이어로 참여할 수 있었던 김지선의 <슬픔의 집>이다. 전시장 한편에 마련된 독립적 공간 속에서 관객은 작가가 개발한 게임 '슬픔의 집'의 플레이어가 되어 가상세계를 누린다. 이 게임은 작가가 페루의 아마존을 여행하던 중 만난 친구 '민'에게 받은 게임의 일부를 수정하여 완성되었다. 게임 '슬픔의 집'은 다른 게임들과는 다르게 이겨야 할 경쟁 상대가 없고, 제시된 가상 세계 속의 '슬픔의 집'을 산책하듯 진행된다.


김지선, <슬픔의 집>, 2020, 게임, PC.
김지선, <슬픔의 집>, 2020, 게임, PC.


또한, 플레이어가 된 관객은 직접 화면 속의 인물과 대화하며 가상세계 속 공간의 소실점은 더욱 깊어진다.


김지선, <슬픔의 집>, 2020, 게임, PC.
김지선, <슬픔의 집>, 2020, 게임, PC.


그 끝에는 '슬픔의 집'이 과연 존재했는지 질문하게 된다.


김지선, <슬픔의 집 - 집>, 2021,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71분 48초.


김지선은 이 전시에서 자신이 개발한 게임을 기반으로 진행되는 영상 <슬픔의 집 - 집>(2021)을 통해 관람자를 플레이어의 자리에 위치시키기도 한다.


이 외에도 작가들은 각자의 매체 속 다르게 감각하는 '호스트'의 신체성을 탐구한다.

레이첼 로즈, <1분 전>, 2014, HD 영상, 사운드, 10분 25초.


레이첼 로즈의 <1분 전>(2014)는 재빠르게 진행되는 시공간의 변화와 함께 이를 감각하는 신체가 암시된다. 여러 개의 공간과 시간이 만났다가 금세 미끄러지는 이 자리에서 단절을 감각하는 신체의 실존이 환기된다.

 

시셀 마이네세 한센, <최종 사용자의 도시 2077>, 2019, 조이스틱, PC, 영상, 사운드, 12분.


시셀 마이네세 한센의 <최종 사용자의 도시 2077>는 감시 기술의 전문가이자 최고경영자인 알렉스 카프의 목소리를 가지고, 키아누 리브스의 얼굴을 하고, 세계 감시 자본주의자들의 얼굴로 한 몸을 가진 이 존재를 통해 2077년 어느 '최종 사용자(End-user)'의 도시를 소개한다. 조이스틱을 조작하며 시작하는 세 가지 영상 안에는 섹스 로봇이 도시의 감시자로 등장한다. 이 로봇은 최종 사용자들의 도시에 인간들과 겉으로는 다를 바 없이 존재하여 감시체계를 통제한다. 전시의 작품 설명에 따르면, 마이네세 한센이 제시하는 유사 인간의 형태는 인공적이고, 반사회적이며, 임시적인 신체성을 가진다. 당연한 신체를 낯설게 만드는 형상들은 인간의 가장 내밀하고 원초적인 신체적 행위에 대한 감각의 변화뿐만 아니라 대상과의 애착관계/(사회적, 구조적) 거리감에 대해 변이 된 인지를 징후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다.


시셀 마이네세 한센, 무제(섹스 로봇), 2018, 종이에 컴퓨터 드로잉, 마커
시셀 마이네세 한센, <아버지 몰드(서울)>, 2021, 유리섬유, 레진, 바셀린, 연필로 만든 거푸집




변화 - 실제(實際) - 실재(實在)


공간의 사전적 의미는 이렇다.


    공간(空間)

    1. 아무것도 없는 빈 곳.

    2. 물리적으로나 심리적으로 널리 퍼져 있는 범위.

    3. 영역이나 세계를 이르는 말.


<HOST MODDED>에서 다루어진 '공간'이라는 개념은 두 번째와 세 번째 뜻과 같이 사건이 일어나는 범위나 영역, 세계이다. 변화하는 여러 공간들 속에서 본질적 존재는 다른 감각을 느끼며, 다른 인지를 가진 인간이 된다.


변화로 인해 이전에 실제(實際)하지 않았던 것들이 실제(實際)하며, 실재(實在)에 이른다. 이 모든 것들의 사이에는 공간(空間)이 존재한다. 이때의 '공간'은 그 첫 번째 의미, '아무것도 없는 빈 곳'이다.


비어있는 사이, 공간(空間)


변화가 생기기 위해서는 빈 틈이 필요하다. 그 공간과 공간들이 세상을 변화시킨다. 세상을 변화시킨 여러 '틈' 중 하나로 미국의 1950년대, 비트 세대의 출현을 들 수 있다.


'틈'을 비집고 나온 Beat Generation(비트 세대)


평론가 어빙 하우는 미국의 1950년대를 "순응의 시대(The Age of Conformity)"라고 비판했으며, 시인 로버트 로웰은 문학과 지성이 "진정제를 맞은 시대"라고 탄식했다.  


1950년대 미국은 물질적으로는 풍요로웠지만, 획일화, 동질화, 물질주의, 검열 등의 양상으로 개인은 사회의 부속품으로 전락하였다. 이러한 상황에서, 기존의 체제에 대항하며 기성세대의 주류 가치관을 거부한 세대가 바로 비트 세대(Beat Generation)이다. 이들은 체제에서 벗어나 시를 쓰고, 재즈에 맞추어 춤을 추는 등의 감각적 의식을 통한 개인적 해방을 주장했다.



영화 <킬 유어 달링>의 <The New Vision>이 바로 그 변화를 위한 틈이자, 공간인 것이다. 삶에는 변화가 필수 불가결하고, 그 필수 불가결한 무수한 변화들이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현재'를 만들었다. 수많이 벌어진 틈들을 결코 무시하고 살아갈 수 없는 이유이다. 비트 세대의 시작이었던 앨런 긴즈버그의 시의 일부로 글을 마무리하겠다.


Howl 


who poverty and tatters and hollow-eyed and high sat up smoking in the supernatural darkness of cold-water flats floating across the tops of cities contemplating jazz,


그들 가난하고 남루하며, 텅 빈-눈으로 약에 취해 냉수만 나오는 아파트의 초자연적 어둠 속에 앉아 담배를 피우고 도시 옥상을 떠돌며 재즈를 음미하던 자들,


who sang out of their windows in despair, fell out of the subway window, jumped in the filthy Passaic, leaped on negroes, cried all over the street, danced on broken wineglasses barefoot smashed phonograph records of nostalgic European 1930s German jazz finished the whiskey and threw up groaning into the bloody toilet, moans in their ears and the blast of colossal steamwhistles,


그들 창틀에서 절망의 노래를 부르다 지하철 창밖으로 추락해, 불결한 퍼세익 강으로 뛰어내린 다음, 흑인 구역으로 도약해 온 시내를 울고 돌아다니며, 깨진 와인 잔 위에서 맨발에 고주망태로 춤을 추다 향수 어린 유럽 1930년대의 독일 재즈 음반이 위스키 곡을 마치자 신음하며 지독한 화장실로 던져 올려져, 귀에서 신음과 엄청난 기적 소리의 폭발음을 들었던 자들,


and who therefore ran through the icy streets obsessed with a sudden flash of the alchemy of the use of the ellipsis catalogue a variable measure and the vibrating plane,


그래서 이제 그들이 얼음장 같은 거리로 뛰어나갔다. 생략과 나열과 운율 떨리는 평면을 활용한 연금술이 가져다 줄 갑작스런 섬광에 집착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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