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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금성 Mar 03. 2020

기로에 서있는 당신에게

인생의 기로에서,,


1989년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태어났다.

아버지 직장문제로 내가 태어남과 거의 동시에

거제도로 이주했기 때문에

태어난 지역에 대한 기억은 전혀 없다.


누군가,

인간도 연어와 은 회귀본능이 있다고 했던가?

나도 현재 그 본능에 몸을 맡긴 채

서울로 상경한지도 벌써 3년 차가 되었고,

이제 어느 정도 내 자리를 찾아가는 중이다.

언젠가 학생들의 장래희망을 조사한 통계자료에서

지방과 서울의 관점 차이를 다룬

논문을 본 적이 있었다.

20년 전쯤이라 정확한 기억은 아닐 수 있으나,

내용은 대략 이러했다.


지방권역에 사는 학생들이 적어낸 장래희망으론

소방관, 경찰관, 군인, 교사, 의사 등이 대체적이고

조금 신박했던 학생들은

과학자, 축구선수 등을 희망했다.


반면에 서울권역에 학생들은

컴퓨터 관련 프로그래머, 외교관, 변호사/판사,

가수/배우, 아나운서, 디자이너 등 업군이 다양했다.


이들은 여러 환경에 노출됨으로써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고,

이로 인해 더 넓은 시야를 장착하게 되었다.

동시대 같은 학년의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각기 다른 관점과 가치관을 가지게 된 배경에는

분명 주변 환경의 영향이 클 것이다.

서로 다른 환경에서 다른 것들을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란 학생들의 꿈이

어찌 같을 수 있겠는가.

말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서로 다른 꿈을

몇 년간 가슴에 품고 자란 학생들의 미래가,

막상 꿈을 이룰 나이가 되었을 때,

과연 어떤 결과를 가져올 수 있을까?


서울권 부동산 가격이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는 이유

다른데 있는 것이 아니다.

더군다나 현재 나의 생활권인

‘강남구 대치동’ 같은 경우

탄탄한 학군과 부모들의 높은 교육열로 인해

일반인들의 접근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가격대이다.

(저는 참고로 월세로 있습니다^^)

자녀들을 해외로 몇 년 씩이나

유학을 보내는 이유도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일 것이다.


이 같은 이유로 우리는

보다 넓은 시야를 스스로 장착하여

세상을 바라봐야 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점은 ‘스스로’라는 용어를 썼다는 점이다.


성인이 되기 전까지 대부분의 보통 사람들은

현실적인 문제에 부딪혀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본인이 만족하는 환경을 경험하기 힘들다.


만약 만족이 된다는 사람이 있다면

상위 1%의 특수계층이거나(친하게 지내요^^),

좁은 시야를 장착한 채

적당히 살아가는 사람들일 것이다.

본인 또한 그러했기 때문에 말할 수 있다.

본인도 불과 4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공무원’이란 직업이

나에게 맞는 최적이라 생각하며 살았었다.

20년이란 긴 세월 동안

이와 같은 사고를 품고 살아왔던 것이다.

그러니 내가 꿈을 이룰 나이가 되었을 때

어떤 일을 하고 있었겠는가?


답은 여러분이 생각하는 그대로다.

아무렇지 않은 듯 마치 공무원이라는 직업이

‘하늘이 내게 주신 천직’이라 생각하며,

매월 월급만 따박따박 받으며

로봇처럼 스스로를 합리화 해왔던 것이다.


할아버지가 초등학교 교사로 재직하셨고,

아버지 또한 공직에서 30년 넘게 근무하시다 보니

자연스레 나의 배경은

‘공무원은 좋은 직장이며,

매우 안전한 직업군이다’라는 것이

머릿속에 각인되어 있었고,

주변 환경 또한 그러했다.

항상 평범한 삶을 지향했고

‘나가면 개고생’이란 말을 심심찮게 듣다 보니

세뇌 아닌 세뇌로 굳어져 박혔던 것이다.

이것이 나쁘다거나 안 좋다는 것은 결코 아니지만,

우리는 한 번쯤은 강제로라도, 의식적으로

나 자신을 다른 환경으로 내몰 필요가 충분히 있다.

그렇게 함으로써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할 필요가 있다.

아니 반드시 그렇게 해야만 한다.


성인이 되면 혼자 결정하고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주변에 조언을 받을 수는 있겠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은 당사자 본인이다.

고기도 많이 먹어본 사람이 그 맛을 안다고

내 인생을 누구한테 맡긴단 말인가?

나 또한 안전한 공무원직에서 나와

서울로 상경하면서

개인 사업을 결단하게 된 배경에는 3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 번째, 월급을 받기만 하는 사람이 아닌,

주는 사람도 한번 되어보자 하는 결심에서였다.

자꾸 받는 것에만 익숙해지다 보니,

그 생활에 중독되어 안일해지고

나태에 젖어가는 내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즉 변화가 필요했다.


두 번째, 지금이 아니면 평생 못한다는 생각

지금은 혼자의 몸이니 나 혼자 결정하고 움직일 수 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나에게도 가정이 생기면

결정권자가 바뀔지도 모른다는 공포감?

그리고 차일피일 미루다 보면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오늘이 남은 인생 중 가장 젊은 날이다’

라는 말이 있지 않은가?

하루라도 젊을 때 시작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세 번째, 주변에서는 모두 반대했다.

누군가 하지 말라고 할 때는,

하기 가장 좋은 시기라 했다.

주식 격언에도 이런 말이 있지 않은가?

‘환희에 팔고 공포에 사라’

즉 남들이 하는 반대로 해야 성공할 수 있다는 말이다.

평소 독서를 통해 이러한 문구들이

가슴에 새겨져 있었고,

주변에서 반대하니 괜한 반항심에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이러한 생각과 판단에 대한 결과로

현재 서울에 상경하여

부동산 관련 개인 사업을 영위하고 있지만

사실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처음에 생각하고 마음먹었던 그 초심을

끝까지 유지하는 것이 정말 힘들다.

성공은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그것을 유지하는 것은 아무나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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