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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ristina Jun 08. 2020

#8 여름 시편

초여름 저녁 산책길

2020.06.07


며칠째 하루종일 흐리고 오락가락 비가 내린다.

비, 비, 비, 비...

구노는 맘껏 못뛰어 놀아 풀이 죽었고, 그 와중에 진드기에 물려 피도 빨리고 상처가 났다.

병원에 다녀오느라 스트레스 받고, 날씨 탓에 마음껏 못 뛰어노는 구노가 마음쓰여 내내 창밖만 바라보고 있었다. 다행히 저녁 무렵 아주 잠깐 비가 멎어 서둘러 구노를 데리고 산책에 나섰다.


우다다다~ 잘 뛰어 노니 조금은 마음이 놓이고, 꽤 길어진 해와, 비에 촉촉히 젖은 산책길 들판이 눈에 들어온다. 독일에 살고 있는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면 바로 이 '여유'가 아닐까 싶다.

계절이 바뀌고, 하늘 색이 바뀌고, 풀이 자라고, 그림자의 길이가 짧아졌다 길어졌다 하는 그 소소한 풍경 변화들을 눈에 담을 '여유'가 있다는 것.

그 여유에 감사하며 느릿느릿 걸음을 옮겨 집으로 돌아온다.


6월.


2020년의 6월 여름도 여전히 푸르다.

어느 푸르른 6월에 지휘했던 곡 Sommarpsalm(여름시편)이 문득 떠올랐다. 사랑했던 프라이부르크의 풍경, 산책길, 드라이잠 강가, 우리집 창가, 합창단 단원들... 잊고 있었다 생각했던 아득한 기억들이 그 노래와 함께 다가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uK8GaeVKSPw&t=17s


Sommarpsalm은 '여름 시편'이라는 뜻이고 스웨덴에서는 굉장히 사랑받는 여름노래다.

스웨덴의 시인 Carl David af Wirsén(1842-1912)의 시를 가사로 Waldemar Åhlén이 합창곡으로 작곡했다. 2010년 6월 스웨덴 빅토리아 왕세녀의 결혼식때도 이 노래가 불려졌다.


개인적으로는 리얼그룹이 부른 버전이 이 곡의 느낌과 가장 잘 어울린다는 생각을 한다.

까슬까슬 기분좋은 촉감의 목소리가 전통악기 같이 느껴지기도 하고, 독일어보다 몽글몽글 한 스웨덴어의 발음도 초여름의 색감과 닿아있는듯 하기에...


https://www.youtube.com/watch?v=gryOWy8iImQ

Sommarpsalm 여름 시편
곡. Waldemar Åhlén

싱그럽게 푸르른 나무와 수풀, 산비탈 골짜기 수놓고
온화한 미풍 숨결에 나뭇잎 살랑이니
햇살 아래 대지와 숲 깨어나 바람결에 너울대고
여름이 제자리를 찾아가네
경쾌한 초원의 노래, 아득한 숲의 속삭임
경외심 가득 담아 가만히 귀 기울이니
지저귀는 새소리 가득하고
향긋한 꽃내음 흩뿌려져 날리네

오 선하신 주님, 여름빛 춤사위 세상에 가득하니
이 계절, 축복 가득 당신의 위대하심을 보여주십니다.
모든것은 다 지나가는 것,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들지라도 당신 말씀 영원히 머무릅니다

En vänlig grönskas rika dräkt har smyckat dal och ängar.
Nu smeker vindens ljumma fläkt de fagra örtes-ängar;
Och solens ljus och lundens sus och vågens sorl bland viden
förkunna sommartiden.

Sin lycka och sin sommar-ro de yra fåglar prisa;
Ur skogens snår, ur stilla bo framklingar deras visa.
En hymn går opp med fröjd och hopp från deras glada kväden
från blommorna och träden

Men Du, o Gud, som gör vår jord så skön i sommarns stunder,
Giv, att jag aktar främst ditt ord och dina nådesunder,
Allt kött är hö, och blomstren dö och tiden allt fördriver
blott Herrens ord förbliver.

빗방울 머금어 비스듬이 누운 풀이 아름다워 잠시 걸음을 멈췄다.

제 시간, 제 자리를 지키는 계절이 가져다 줄 6월의 나날도 하루하루 새로운 숨결로 다가오기를...

그 깊어질 여름을 준비하는 싱그러움이 조금만 더 머물러 주기를...


촉촉히 젖은 초여름 저녁 산책길은 붉게 물들어 저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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